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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라의 요정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슬럼가 소녀들의 이색 성년식

딸기21 2014. 11. 2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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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는 화관을 쓴 마르셀레 후사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춤을 춘다. 후사를 비롯한 13명의 소녀들은 흰색, 파란색, 노란색 드레스들을 곱게 차려입었다. 모두 15살 동갑내기들이다. 정장을 차려 입은 신사가 무대로 나와 후사에게 왈츠를 청한다. 그러다가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일순간 브라질 펑크로 바뀌고, 색색의 드레스 차림을 한 소녀들은 열정적인 댄서로 변해 성년을 기념하는 축제의 밤을 맞는다.

 

이들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세후쿠라에 살고 있다. 통상 ‘파벨라’라 불리는 리우의 악명 높은 슬럼가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이날 밤만큼은 리우에서 가장 화려한 코파카바나 팰리스호텔의 볼룸이 소녀들의 무대가 됐다. 소녀들에게 춤을 청한 신사들은 파벨라의 갱조직원들과 폭도들을 진압하는 무장경찰들이다. 


Rosa, left, holds her daughter, Ana Alice. With her is her sister and fellow debutante Rayane Rosa and her baby. Mario Tama / Getty Images

The girls arrive at the event in a pink limousine. Mario Tama / Getty Images


지난 6일 파벨라의 치안을 담당하는 무장경찰대(UPP) 주최로 무도회가 열렸다. 브라질에서는 소녀들이 15세가 되면 어른이 된 것으로 보고 가족들이 축하파티를 열어주지만, 가난한 슬럼 소녀들에게 그런 호사는 없다. 이날의 파티는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소녀들을 위해 경찰대가 특별히 준비한 성년식 잔치였다.

 

파티 음식은 케이터링업체가 무료로 준비해줬고, 드레스는 현지 패션디자이너에게서 협찬을 받았다. 행사를 기획한 경찰관 다니엘라 차가스는 24일 알자지라방송에 “소녀들은 자원봉사자로 나선 안무가의 도움을 받아 두 달 가까이 춤을 연습했다”고 말했다. 하룻밤만이라도 이들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주기 위해 리무진 회사에서는 차량을 빌려줬으며, 소녀들은 난생 처음 리무진을 타고 과나바라 해안의 일랴피스카우 성으로 향했다. 신고딕 양식의 이 성은 19세기 말 잠시 브라질로 이전해왔던 포르투갈 왕실이 무도회를 열었던 곳이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슬럼의 치안유지를 맡고 있는 무장경찰대(UPP)는 슬럼 소녀들에게 하루 만이라도 신데렐라가 되어볼 기회를 주겠다면서 지난 6일 성년 축하 무도회를 마련했다. /AFP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슬럼가 소녀들이 지난 6일 무장경찰대가 지역 주민, 기업들의 도움을 받아 준비한 15살 성년 축하 파티에서 드레스를 차려입고 건배를 하고 있다./AFP


리우에는 38곳에 이르는 슬럼이 있다. 시 당국은 2008년 UPP를 조직해 슬럼을 장악한 마약조직들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하지만 강도높은 갱 소탕작전과 노동자당 정부의 빈곤대책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파벨라를 찾아가 세계의 이목이 쏠리기도 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지난 6월 월드컵 때에도 폭동진압경찰이 대거 동원돼 파벨라의 폭도들을 진압했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도 늘 도마에 오른다. 알자지라는 브라질공공안전포럼 자료를 인용, 지난해 한 해에만 슬럼가에서 416명이 경찰과의 총격전 등으로 사살됐다고 전했다. 마약조직과의 결탁 등 부패혐의로 체포된 경찰관도 수십명에 이른다. 


Rosa, in yellow, and Gabriela Andrade, in the Cerro Corá favela. Rafael Fabres /Al Jazeera


이번 ‘성년의 밤’ 행사는 주민들과의 간격을 좁히고 소녀들에게 인생의 희망을 꿈꿔볼 시간을 주기 위해 마련됐다. 후사는 “이 밤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밤은 끝났고, 파벨라에서의 현실이 다시 그를 맞았다. 핑크빛 드레스 대신 노란 티셔츠와 청바지로 갈아입은 후사는 7가구가 함께 사는 비좁은 아파트로 돌아왔다. 빗물이 아파트 바닥까지 넘쳐흘렀다. 


후사는 지난해 딸을 낳은 미혼모다. 이번 무도회에 함께 참여한 여동생 하야네 역시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후사는 “이번 파티 전까지 내겐 친구도 별로 없었는데 이제 경찰들을 비롯해 수많은 친구가 생겼다”며 딸과 함께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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