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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지도부 '국제재판 회부' 논의 계기로 본 국제형사재판소(ICC)

딸기21 2014. 11. 1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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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에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권고가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민간인 대량살상과 제노사이드(종족말살) 등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반인도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국제법정인 IC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로 설립 16년이 된 ICC는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인도주의 국제법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와 ‘제3세계 지도자들만 단죄하는 재판소’라는 평가가 엇갈려왔다.


'반인도 범죄는 언제 어디서나 단죄' … 유엔 산하기구, 소장은 송상현 판사


CNN방송 등은 9일 북한이 미국인 억류자들을 전격 석방한 배경에 ICC 회부를 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ICC의 설립근거인 ‘로마조약’에 가입해 있지 않으며, 설혹 유엔 인권 결의안에 ICC 회부 권고가 들어간다 해도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북측이 이를 피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본부. /위키피디아


ICC는 르완다 내전과 옛 유고연방의 제노사이드(종족말살)가 일어난 뒤 반인도 범죄에 대한 국제적인 심판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1998년 로마조약을 통해 설립됐으며 2002년 본격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 조약에 한국을 포함해 122개국이 서명했으며 한국의 송상현 판사가 2009년부터 재판소장을 맡고 있다. 


이 법정의 모태는 2차 세계대전 뒤 일본 도쿄와 독일 뉘른베르크에 만들어진 국제전범재판소다. ICC는 특정 지역·사안을 넘어 상시적으로 반인도 범죄를 단죄할 수 있도록 한 기구라는 점에서 기대를 모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과거 ICC에 대해 “국제법의 새로운 틀을 세운 거대한 이정표”라는 찬사를 보낸 바 있다.


ICC 로고


ICC에 사건이 접수되면 검사실에서 사전 검토를 한 뒤 ‘공식 수사착수’ 단계에 들어간다. 이 단계부터 사실상 ICC에 회부된 것으로 본다. 검사가 기소를 하면 ICC 법정으로 넘어간다. 사전심판부에서 정식 재판에 부칠지 검토하고, 결정이 되면 1심 재판부에서 재판을 맡는다. 지금까지 ICC는 정부 혹은 무장세력에 의해 저질러진 반인도 범죄 9건에 대해 공식 조사를 벌였거나 진행 중이고, 9건에 대해 사전검토를 해왔다. 



ICC 조사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계에 반인도 범죄자로 낙인 찍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재판소의 조사와 기소를 놓고 늘 논란이 벌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제3세계에만 심판의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이다. ICC는 우간다 반군지도자 조지프 코니, 수단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 케냐 대통령 우후루 케냐타, 리비아 옛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 등을 기소했다. 지금까지 회부된 9건이 모두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 국가들은 “국제재판소가 아닌 ‘아프리카 재판소’냐”며 반발하고 있다. 아프리카연합은 아프리카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ICC의 출두명령을 공식 거부한다는 성명을 수차례 냈다.


케냐타 기소를 둘러싸고 최근 벌어진 일들은 ICC에 대한 아프리카의 반감을 그대로 보여준다. 케냐타는 2007년 대선 때 상대 후보측 지지자들을 조직적으로 공격했다는 이유 등으로 기소됐다. 케냐타는 출두 요구를 계속 거부하다가 지난달 네덜란드 헤이그의 법정에 나왔다. 현직 국가원수가 ICC에 출두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달 9일 케냐타가 재판 전 심리를 마치고 돌아오자 시민 수천명이 나이로비 국제공항에 나와 열렬히 환영했다고 현지 일간 데일리네이션 등이 전했다. 




최근 ICC는 이스라엘이 2009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로 가는 구호선박을 공격해 터키인 등 9명을 숨지게 한 사건을 사전 검토한 뒤 “반인도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 또한 이슬람권의 반발을 샀다.


미국도 중국도 가입 안 해... '아프리카 재판소'라는 비판도


명백한 반인도 범죄라도 당사국이 국제재판을 선호하지 않으면 ICC에 회부되지 않는다. 캄보디아 ‘킬링필드’ 학살, 르완다 내전,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 내전, 옛유고연방 반인도 범죄는 모두 각각의 특별법정에서 재판했다. 리비아에서는 내전 뒤 세워진 민주정부가 카다피 ICC 회부에 반대했다. 카다피를 ‘서방 재판소’에 내줄 경우 국민들의 반발을 살 게 뻔하고, 자칫 잔당들의 준동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ICC가 유엔 산하기구이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는다는 것도 각국이 꺼리는 요인 중 하나다. 미국의 지원 속에 세워진 이라크 정부는 사담 후세인을 자국 내 특별법정에 세운 뒤 사형시켰다.


근본적인 문제는 로마조약에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이 가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해외 주둔 미군이 민간인 살상 등의 책임을 추궁받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ICC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ICC 예산 4분의3을 유럽연합(EU)과 일본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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