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로그인] 주윤발의 수난시대  

딸기21 2014. 10. 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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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키찬과 초우윤팟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외신을 훑다보니 이런 글들이 보인다. 여전히 내겐 ‘청룽’이나 ‘저우룬파’보다는 성룡, 주윤발 같은 한국식 한자이름이 익숙하다. 두 액션배우가 만나서 싸움을 한다면 누가 이길까? 두 스타가 길거리에서 한판 붙을 리는 없겠지만 지금 홍콩에서 대결을 벌인다면 응원전에서는 초우윤팟이 이길 것 같다.

 

나이가 들고 살이 쪘어도, 이제는 내가 그의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해도 그는 내겐 영원한 스타다. 언젠가부터 매스컴은 중국 ‘본토식’으로 그의 이름을 저우룬파라 쓰지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중국에서 그의 영화들이 금지작이 돼버린 마당에, 열심히 그를 중국식으로 불러주는 것은 좀 우습지 않은가. 그는 홍콩 편이었고, 홍콩 시민들 편이었고, 홍콩의 민주화를 위해 거리에 나온 우산혁명 시위대를 응원했다는 이유로 ‘금지된 배우’가 됐다. 시종일관 중국 중앙정부를 옹호해왔고 이번 시위에서도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비난한 청룽과는 행보가 확연히 달랐다. 그러니 앞으론 그를 홍콩식으로 초우윤팟이라 부르기로 했다.

 

 


중국에서 자기가 나온 영화 상영이 금지됐다는 얘기를 듣자 초우윤팟은 “그럼 돈을 덜 벌면 되지, 뭐”라고 했다고 한다. 이달 초 현지 언론 빈과일보에 실린 얘기다. 이야말로 ‘영웅본색’이다. 초우윤팟 말고도 중국 당국에 찍힌 유명인은 여럿이다. 한 장면 한 장면 잊혀지지 않는, <지존무상>의 앤디라우(유덕화)도 홍콩 시내 센트럴을 점령한 시위대와 함께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올라갔다고 하는 이런 스타 47명의 이름이 소셜미디어에 돌기도 했다.

 

그런 리스트가 정말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놓고 중국 정부에 맞선 이들은 앞으로 꽤나 핍박을 받을 것 같다. 지난 22일 신화통신은 시위대를 지지하고 나선 홍콩 스타들에게 “우리가 차린 음식을 먹으면서 동시에 그릇을 깨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글을 실었다. 중국에서 돈 벌면서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세상은 늘 여러 갈래로 갈린다. 당연한 이치다. 세상 일은 늘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복잡하니까. 하지만 여러 갈래가 아닌 달랑 두 갈래 길을 놓고 선택을 강요받을 때도 많다. 좌냐 우냐, 진보냐 보수냐, 야당 지지자냐 여당 지지자냐. 정치적 지향이나 판단은 각자의 자유지만 그것을 입 밖에 내는 데는 때론 용기가 필요하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극히 상식적인 일일 때조차도 말이다.

 

초우윤팟의 경우가 딱 그렇다. 출마할 후보를 권력기구가 미리 걸러서, 입맛에 맞는 이들을 추려낸 뒤 사람들 앞에 세워놓고 뽑으라 하는 것은 민주선거가 아니다. 초우윤팟이 홍콩 언론들 앞에 얘기한 내용은 딱히 시비를 걸 것도 없어 보일 만큼 평범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용감해 보였다. 학생들은 합리적이더라. 정부가 해법을 내놓으면 위기는 끝날 것이다.” 

 

덧붙여 그는 “누구나 무엇이든 자기 생각을 말할 자유가 있다”고 했다. 평화로운 시위였고 폭력이나 최루탄을 동원할 필요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로 그에게는 반중파, ‘친민주파’ 딱지가 붙었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의 표현을 빌리면 초우윤팟은 ‘쿨하게’ 말했지만 세상은 그렇게 쿨하지 않다. 어디 홍콩에서뿐일까.

 

이제 와서 초우윤팟의 말들을 곱씹고 있는 것은 소신 꽉 찬 발언을 쏟아냈던 가수 신해철의 모습이 겹쳐져서다. 초우윤팟, 앤디라우와 함께 10대 시절의 추억처럼 남아 있는 신해철. 한 사람이 마지막 순간을 힘겹게 보낼 때조차 ‘색깔’을 운운하며 네 편 내 편을 가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씁쓸하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조차도 짓밟힘과 공격과 모욕의 대상이 돼 버렸다. 그런 세상에서 민주주의를 이야기한 초우윤팟에게 응원을, 신해철에게 애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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