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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피플]“사람 죽이는 정책 그만둬라” 외로운 싸움 나선 피자배달부

딸기21 2014. 10. 15.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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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시리아에서, 가자지구에서, 퍼거슨(흑인 소요가 일어났던 미국 미주리주 도시)에서, 사람들을 죽인다.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 그것이 정부 정책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더럼에 사는 한 남성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이다. 온라인 상의 청중들을 향해 “사람을 죽이는 건 나쁜 일이다, 살인을 그만두자”고 호소한다. 미국 정부가 중동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미국 내에서 무고한 이들의 죽음을 양산하면서 국가안보니 국방정책이니 하고 주장하지만 이런 정책으로는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지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고 역설한다. 이 남성이 열변을 토하고 있는 곳은 어느 주택의 주방처럼 보인다. 



안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된 대규모 살상정책에 맞서 ‘생각의 전환’을 촉구하고 나선 2분57초 짜리 동영상의 주인공은 올해 53세의 피자배달부인 션 호(53)다. 호는 다음달 치러질 미국 중간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에 출마했다. 


자유당은 1971년 창당됐으나 연방 상하원은 물론이고 주 상하원에도 의석 한 자리 차지하지 못한 군소정당이다. 그래서 호의 선거운동은 막대한 돈을 퍼붓는 민주·공화 양당의 캠페인과는 전혀 다르다. 선거캠프는 와플하우스라는 커피숍과 지인의 집 지하실이다. 동영상도 이 지하실에서 찍었다.


낮에는 선거운동을 하지만 밤에는 생업인 피자 배달을 한다. 정장을 차려입은 후보들과 달리 유행 지난 안경에 티셔츠 차림으로 유권자들을 만나고, 도넛을 함께 먹으며 정치를 논하는 타운홀 미팅을 한다. 선거차량으로 몰고 다니는 승용차는 한국산 기아자동차다. 그는 “나는 밤마다 20여 가구에 기쁨을 전해주는 배달부”라며 “요리를 하는 건 좋아하지 않고 배달만 한다. 피곤한 몸으로 일터에서 돌아와 피자를 주문한 사람들은 누구든 피자배달부를 반기는 법”이라고 말한다.


지난 9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후보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케이 헤이건, 자유당의 션 호, 공화당의 톰 틸스(왼쪽부터)가 토론을 하고 있다. AP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보다도 힘들 것 같은 이 도전에서 호는 주변의 예상을 뒤엎고 전국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빼앗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나선 이 피자배달부의 목소리에 유권자들이 호응한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사이트 리얼클리어폴리틱스닷컴에 따르면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의 지지율은 4~8%다. 지난 5월에는 무려 11%를 기록하기도 했다. 양당 구조가 확고한 미국에서 제3당 후보로서 매우 선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그의 지지율이 관심을 끄는 것은, 그가 출마한 지역구에서 민주-공화 양당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현직 상원의원 케이 헤이건이 우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공화당 톰 틸스 후보와의 지지율 차이가 0~2% 사이를 오갈 정도로 작다. 호의 득표율이 승패를 가를 변수가 되고 있는 셈이다.


노스캐롤라이나주 상원의원 선거 여론조사 추이. realclearpolitics.com


이런 상황과 맞물려, 피자배달부 호 아저씨의 도전은 미국 언론들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일례로 지난 8일 그는 하루 동안 폭스뉴스, ABC방송, 미국의소리(VOA)과 연달아 인터뷰를 했다. MSNBC방송은 “피자 가이(pizza guy)가 노스캐롤라이나 상원 선거를 결정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9일의 TV토론에서 유력 후보들인 헤이건과 틸스는 서로의 정책을 공격하며 난타전을 벌였으나, 호는 “더이상 전쟁에다 우리 돈을 쓰지 말자”며 ‘자기만의 토론’을 펼쳤다. 

 

호는 1980년대 대학 재학시절 자유당 대선후보 에드 클라크의 선거운동원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졸업 뒤에는 한동안 그린피스에서 기념품을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후 이 일 저 일을 전전하다가 지난해부터 피자를 배달하고 있다. 선거 출마 결심을 굳힌 것은 “더 이상 살인을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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