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숙제하고, 청소하고, 방향제 뿌리고... '홍콩스타일' 시위

딸기21 2014. 10. 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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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를 하고,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고. 이것이 ‘홍콩스타일’이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홍콩의 시민들이 며칠 째 센트럴 등 도심을 점령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 분노한 시민들은 진압경찰을 피해 달아난다. 시위대가 경찰의 최루액에 맞서 우산을 펼쳐들고 ‘항거’하는 모습은 이번 시위의 상징이 돼버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홍콩의 시위에는 그들만의 독특한 특성이 녹아 있다. 외신들이 전한 홍콩 시위의 특징들은 무엇일까.


집회에 나와서도 숙제를 하는 홍콩 학생들.  트위터(@frostyhk)

미국 블룸버그 통신의 리처드 프로스트 기자는 트위터에 홍콩 시위 현장의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중고생으로 보이는 학생들이 길바닥에 앉아 숙제를 하는 모습이다. 이번 시위에는 중국 귀속 이후에 태어난 세대인 10대 학생들이 대거 참여했다. 학생들은 현장에서 시위대에 생수병을 건네고, 시민들에게 노란 리본을 달아주며 큰 몫을 하고 있다. 홍콩 섬 서부 등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들이 휴교를 했지만, 수업을 마치고 저녁에 시위 현장으로 ‘하교’하는 학생들도 많다. 광장에서 숙제하는 학생 시위대는 보기 드문 풍경이다.

홍콩섬의 코즈웨이베이 지하철역은 시위대의 바리케이드로 봉쇄됐다. 도심 복판에 있는 이 곳은 평소에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오가는 번잡한 역이다. 시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이 곳이 봉쇄된 데에 불만을 느낄 법하다. 이 곳 바리케이드에는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Sorry for the inconvenience)”라는 정중한 사과가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 홍콩에 거주하는 콜리어 노게스는 이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며 “모두가 온화하고 점잖다”고 시위대를 칭찬했다.



지하철역 입구나 길을 막고 있는 바리케이드에는 시위대가 ‘사과글’을 붙여놓기도 한다.  bbc

홍콩에서 활동하는 저널리스트 톰 그런디는 트위터(@tomgrundy)에 방향제를 뿌려주며 다니는 여성 시위대의 사진을 올렸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무더위에서 수천~수만명이 집회를 하면 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 때문에 셔츠에 뿌리는 방향제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위해 방향제를 뿌려주는 시민들까지 생겨났다는 것이다.


청량감을 주는 스프레이를 들고 다니며 ‘봉사’하는 시위 참가자.  트위터(@tomgrundy)

시위는 ‘시민 불복종’의 적극적인 표현이지만, 홍콩의 시위대는 공중질서에 한해서라면 기꺼이 ‘복종’을 한다. 아스팔트 위에는 사람들이 몰려나와 있으나 바로 옆 잔디밭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않는 모습도 부각됐다.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한 시위대의 질서있는 풍경이다. 이 신문은 이번 시위에서 시민들이 들고 나온 우산들을 대량살상무기(WMD)에 빗대 ‘대량차단무기(weapons of mass obstruction)’라 명명하기도 했다.



시위대는 1일 새벽까지 벌써 사흘째 밤샘 집회를 했다. 아침마다 광장에서 잠을 깬 시민들에게 청소는 기본이다. 한쪽에선 담배꽁초를 줍고, 플라스틱 병을 모으고, 병뚜껑들을 분리수거한다. 옆에서는 아침식사로 먹을 빵을 서로에게 나눠준다. 


물론 시위 현장의 모습이 아름답기만할 수는 없다. 30일 코즈웨이베이 부근에서 한 남성이 시위대에게 썩은 계란을 던지면서 “길 막지 말고 학교로 돌아가라”고 고함을 질렀다. 시위대의 대응은, 조용히 계란으로 더럽혀진 현장을 치우는 것이었다고 SCM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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