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한국 사회, 안과 밖

신(新) 검열의 시대... 사이버 '통제'를 추구하는 국가와 웹 사용자들의 싸움

딸기21 2014. 10. 15.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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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홍콩 도심에서 중국의 통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 측이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 접속을 막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 정부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이전부터 차단해왔지만 최근 인기를 끌기 시작한 인스타그램은 막지 않고 있었다. 홍콩 시위 모습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퍼지자 이 서비스마저 막은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여름 터키에서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당시 총리의 권위주의 통치에 반발하며 이스탄불 등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은 자신을 둘러싼 스캔들이 터지거나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페이스북·유튜브 같은 사이트 접속을 차단해 빈축을 샀다. 

 

웹 검색·사이트 차단 넘어 인터넷 연결 끊기도


국내에서도 ‘온라인 검열’이 큰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 검찰이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을 막는다며 카카오톡같은 메신저서비스를 ‘검열’했다는 주장이 나와 러시아제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이 줄을 이었고, 급기야 텔레그램 국내 가입자가 200만명을 넘어섰다. 


발등의 불이 떨어진 다음카카오톡 경영자가 사용자들에게 사과하고 “검찰의 감청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최근 세계 각국에선 창과 방패의 전쟁처럼 정부기관의 정보통제·검열과 그에 맞선 방어전이 벌어지고 있다. ‘신(新) 검열의 시대’를 맞아 웹에서의 언론 자유가 민주주의의 새로운 척도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국가기구와 연결돼 웹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는 크게 ‘정치적 차단·검열’과 ‘정부기관에 의한 정보수집·도감청’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기술적 통제는 대개 차단(블로킹)과 검열(필터링)로 이뤄진다. 특정 서버를 차단하는 방식, 특정 도메인 이름을 넣으면 다른 사이트로 이동시키거나 연결을 아예 끊어버리는 방식, 특정 URL 연결을 막는 방식 등이다. 중국의 경우 외국계 소셜미디어는 대부분 막혀 있고, ‘톈안먼(천안문)’이나 ‘달라이라마’ 같은 민감한 주제어는 검색되지 않는다. 독일과 프랑스의 구글에서는 두 나라 현행법에 따라 네오나치 관련 사이트 연결이나 검색이 제한돼 있다. 한국 정부가 북한 관련 사이트 접속을 막고 있는 것도 비슷한 예다.


미국 메릴랜드 주에 있는 국가안보국(NSA) 본부. /AP


아예 특정 시간대에 인터넷 연결 전체를 끊기도 한다. 2011년 ‘아랍의 봄’ 때 이집트 군부정권은 유럽·아시아대륙과 연결되는 광케이블망을 차단하는 ‘풀 블록(전면 차단)’을 했다. 미얀마, 리비아, 시리아도 이런 조치를 취한 적 있다. 통제 가능한 자신들만의 웹을 만들려 시도하는 나라도 있었다. 2009년 이란에서는 대선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후 2011년 이란 정부는 ‘할랄(허용된)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자신들만의 웹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구상에 그쳤다.

 

이에 맞서 ‘사이버 망명’ 등 움직임 있지만 역부족


스파이웨어를 차단하기 위해 만든 민간 소프트웨어를 검열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미얀마, 예멘,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 수단 등은 ‘스마트필터’라는 보안도구를 검열에 이용했다. 지난해 3월 국경없는기자회는 프랑스 아메시스, 미국 코트시스템스 등을 ‘통제용 소프트웨어를 생산하는 5적(敵)’으로 지목했다. 미국 시스코는 중국의 검열에 쓰이는 ‘골든 쉴드’라는 방화벽을 만들었다가 2011년 미 법원에 제소됐다.

 

정부기관에 의한 개인 감시는 지난해 미 국가안보국(NSA) 정보수집 사실이 폭로되면서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어 영국·호주·캐나다 등 영어권 5개국이 ‘파이브 아이즈’라 불리는 정보감시 커넥션을 만들어 곳곳에서 정보수집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거리가 됐다. 독재국가에서나 벌어지는 줄 알았던 감시가 전 세계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구글플레이스토어 '텔레그램' 소개 화면 캡처.


검열과 통제를 피하기 위한 인터넷 사용자들의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나 아직은 역부족이다. 조세피난처를 본떠 ‘프리넷’ 같은 ‘데이터피난처’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정부에 가로막힌 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한 우회 수법도 있긴 하지만 이런 기술을 쓸 수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적다. 2009년 미 하버드대 버크먼센터는 “우회로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검열 당하는 사람의 2%에 불과할 것”이라는 추정치를 내놨다. 우회접속이 독재국가에서 접속자들의 안전을 보장해주지도 않는다.

 

국내에서 ‘사이버 망명’으로 화제 된 텔레그람은 지난해 러시아의 니콜라이 두로프, 파벨 두로프 형제가 만든 모바일용 앱(응용프로그램)이다. 현재는 독일에 본사를 두고 디지털포트리스라는 기금의 지원을 받는 비영리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만들어졌을 때 일일 사용자가 10만명이었으나 지금은 다운로드 횟수가 1000만건이 넘는다. 암호깨기 현상금 이벤트를 했을 정도로 보안성을 내세운 프로그램이어서 NSA 사태 뒤 상징적인 망명처로 부상했다. 국내에서는 2008년 광우병 촛불 뒤 ‘사이버망명자 프로젝트’ 같은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적인 사이버 망명 움직임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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