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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 학살자 찰스 테일러, “인도적 배려로 감옥 옮겨달라”  

딸기21 2014. 6. 19.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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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 내전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도살자’ 찰스 테일러(66·사진)가 ‘인도적 배려’를 요구하며 감옥을 옮겨달라는 소송을 냈다고 dpa통신이 19일 보도했다.

 

"가족들 면회올 수 있게 아프리카 감옥으로 옮겨달라"


테일러는 유엔이 설치한 특별전범재판소에서 징역 50년형을 선고받고 영국 더럼의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당초 그는 시에라리온의 전범재판소 관내 수감시설에 갇혀 있었으나 그의 처리를 둘러싼 내분과 보안문제 등을 우려한 시에라리온 측의 요구로 네덜란드로 옮겨갔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영국과의 협의 끝에 잉글랜드 북동부 더럼의 교도소에 수감됐다.


internationalcrimesdatabase.org



테일러는 영국 정부에 “르완다로 감옥을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아프리카 중부의 르완다는 1994년 종족분쟁 내전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국제전범재판을 실시했고, 전범들을 수감하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라이베리아·시에라리온과 상관없는 곳이지만 이런 시설이 있으니 자신을 그리로 옮겨달라는 것이다. 런던 법원에 낸 소장에서 테일러는 “아프리카 안에 있어야 내 가족이 찾아오기가 수월하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테일러의 가족들 중에는 전쟁범죄에 연루돼 영국 입국이 금지돼 있는 사람들이 많아 면회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나의 고향 대륙인 아프리카에서 복역하게 해주는 것은 나뿐 아니라 내 가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인도주의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또 그는 “내 이름이 잔혹행위와 결부돼 있는 탓에 다른 수감자들이 자신들의 정의감을 보여주기 위해 나를 공격하려 한다”며 감옥에서 심각한 부상이나 죽음의 위험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피의 다이아몬드' 쟁탈전 벌인 서아프리카의 도살자


테일러는 라이베리아 무장군벌 출신으로 자신의 나라와 이웃한 시에라리온 모두를 참혹한 내전으로 몰아넣은 주범이다. 그는 원주민 어머니와 미국 해방노예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70년대 미국에 유학해 경제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범죄를 저질러 미국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탈옥해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지원 아래 게릴라 훈련을 받았다. 1989년 라이베리아로 돌아와서는 ‘라이베리아 국민애국전선(NPFL)을 결성해 내전을 일으켜 새뮤얼 도(Samuel Doe) 정권 전복을 시도했다. 

 

동시에 그는 인접한 시에라리온의 반군을 지원함으로써 두 나라를 내전의 소용돌이로 빠뜨렸다. 철광, 다이아몬드, 목재, 고무 등 천연자원의 통제를 놓고 군벌들 간 치열한 싸움으로 20만 명 이상이 희생되고 1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테일러를 비롯한 군벌들은 이른바 ’피의 다이아몬드‘를 밀매, 무기를 사들여 중부 아프리카를 피로 물들였다. 이 과정에서 숱한 소년병들과 용병들이 동원돼 마약 중독 상태에서 민간인들의 신체절단과 대량학살을 저지르는 참극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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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는 1996년 다른 군벌들을 제압하는데 성공했으며 이듬해 대선에서 75%가 넘는 지지율로 당선돼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취임했다. 당시 테일러의 선거 구호는 “그(테일러)가 내 부모를 죽였지만 나는 그에게 투표한다”였다. 


그러나 총으로 집권한 테일러는 1999년부터 또 다른 반군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기니의 지원을 받은 반군이 북부에서 봉기를 했으며, 뒤이어 코트디부아르 계열의 반군이 남부에서 밀고 들어왔다. 

 

2003년 유엔은 라이베리아 내전 국제전범재판소를 설치하고 테일러를 기소했으나 반군의 포위와 국제사회의 추적 속에 테일러는 나이지리아로 망명했다. 그러다가 2006년 결국 체포돼 법정에 섰고 11가지 혐의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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