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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들... 세월호 계기로 '선장의 의무는 어디까지' 국제적 관심사로

딸기21 2014. 4. 22.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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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침몰하려 하자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을 버리고 사실상 도주한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내에서뿐 아니라, 이번 사건에서 승무원들이 보여준 모습은 세계에서도 논란거리다. 외신들은 이번 일이 ‘선장과 승무원의 도의적·법적 책임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전한다.


지금부터 160년도 더 전인 185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연안에서 침몰한 영국 선박 HMS 버켄헤드는 ‘선장의 책무’를 얘기할 때 종종 거론되는 사례다. 당시 선장은 배에 타고 있던 군인들 상당수와 함께 마지막까지 배를 지키며 여성과 어린이들이 구조될 수 있게 도왔다. 이들의 기사도와 희생정신은 두고두고 선박 종사자들이 갖춰야 할 존엄성의 기준으로 여겨졌다. 또 하나의 사례는 너무나도 유명한 타이태닉호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이다. 그는 떠내려온 빙산에 배가 침몰하는 사이 역시 아이들과 여성 등 승객들을 먼저 대피시켰다.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들

반면 세월호의 이모 선장이나, 재작년 이탈리아 앞바다에서 호화 여객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를 버리고 먼저 도주한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선장은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인물들이다. 스케티노는 본인의 실수 때문에 배가 티레니아해 질리오섬 부근에서 암초에 부딪치자 승객들은 내팽개친 채 도망을 쳤다. 이탈리아 검찰은 스케티노에게 대량살상 혐의를 적용했으며, 아직 재판이 진행중이다.

The grounded Costa Concordia cruise ship is framed by rocks off the tiny Tuscan island of Giglio, Italy, Friday, 2012년 1월 20일 이탈리아 연안에서 침몰한 대형 여객선 코스타 콩코르디아 주변에서 구조요원들이 수색과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http://cryptome.org/



이탈리아에서 선장의 행위가 문제된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1906년 시리오라는 증기선이 난파해 150명 이상이 숨졌는데 선장이 가장 먼저 배를 버리고 달아났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 선장은 형사책임을 지지는 않았지만 이듬해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비슷한 사례는 적지 않다. 1880년 7월 싱가포르 선사가 운항하고 영국에 선적을 뒀던 제다라는 배의 선장은 폭풍우에 배가 침몰할 것같자 먼저 도망쳤다. 승객들은 다행히 모두 무사한 채, 2주 뒤에 구출됐다. 1965년 미국 증기선 야머스 캐슬의 선장 바이런 부스티나스는 사고가 나서 구명정이 뜨자 맨 먼저 올라타고 도주했다. 탑승자 90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0년 4월 프랑스 페리선 스칸디나비아스타 호의 휘고 라르센 선장은 배에서 화재가 나자 먼저 도망쳐 158명이 죽음을 맞게 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선장이 먼저 피신한 사례’ 중에는 이 배들과 함께 천안함 침몰사건도 케이스로 올라와 있다.

선장의 직무상 책임은 어디까지?

도의적으로 비난하긴 쉽지만 선장의 직무상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국 CNN방송은 “배를 버리고 도망친 선장이 또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22일 웹사이트에 선박 승무원들의 직업윤리를 점검한 기사를 실었다. 제임스 스테이플스라는 해운 전문 컨설턴트는 CNN 인터뷰에서 “선장의 가장 큰 의무는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이라며 “모든 사람이 무사히 대피하기 전에는 배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구조작업이 제대로 되려면 실질적으로 선장의 지휘와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바다에서의 생명 안전에 관한 국제적인 해사 협약은 선장이 배에 탑승한 모든 사람의 안전에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선장이 위기 상황에서 배에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미군 특수부대 네이비실 출신으로 해상 구조기구 ‘실 서바이벌’을 만든 케이드 코틀리는 “선장이 불필요하게 배에서 죽어갈 이유는 없지만 배에 탄 다른 이들의 안전에는 책임이 있다”며 세월호 선장이 가장 먼저 탈출한 사람들 중에 끼어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코스타 콩코르디아의 선장에 비해 세월호 선장이 더 큰 비난을 받는 것은, 먼저 도피했다는 사실 외에도 승객들에게 “선실에 있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점이다. 미국 매서추세츠 해운아카데미의 강사이자 선장 출신인 윌리엄 도허티는 “선장은 탑승자 모두에게, 상황에 대해 정직하고 명확한 정보를 줘야 하며 자리에 앉아 기다리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선장의 무책임이 낱낱이 드러난 이탈리아와 한국은 위기시 선장이 먼저 배를 포기하는 행위를 해사범죄로 규정한 나라들이다. 상당수 나라들은 선장이 먼저 대피했다 해도 범죄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오랜 관행에 따라 승객들부터 대피시키는 것이 선장의 의무처럼 굳어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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