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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반도 사태와 타타르의 비극  

딸기21 2014. 3. 25.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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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문제로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우크라이나 ‘마이단(광장)’ 시위와 유혈진압, 친러시아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도주와 정권 교체등의 사건이 2월말 이후 순식간에 진행됐습니다.

하지만 급반전은 그 뒤에 일어났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에 면한 크림반도를 조직적이고도 치밀하게 장악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선거도 없이 갑작스레 구성된 정체 불명의 크림반도 ‘자치 의회’는 러시아로의 귀속을 바란다며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투표 결과에 따라 러시아와 지난 18일 합병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서방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러시아 제재론과 ‘신냉전’ 우려가 터져나왔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사실상 소외되고 목소리를 잃은 채, ‘최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은 따로 있습니다. 크림반도의 타타르인들입니다.


크림 타타르의 정신적 지주 격인 주마 자미(자미는 투르크어 계통에서 '모스크'를 가리키는 말). 사진 www.panoramio.com


크림반도의 친러시아계에 맞선 타타르계

 

우크라이나 내 자치공화국이던 크림반도는 원래 친러시아 색채가 강했습니다. 크림 주민 230만명 중 58%는 러시아어를 쓰는 러시아계, 24%는 우크라이나계, 그리고 12%는 대부분이 무슬림인 타타르계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2010년의 대선에서 80%가 야누코비치를 찍었을 정도로 친러시아 성향이 강했습니다. 그러니 키예프의 정권교체 뒤 현 친서방 임시정부에 반대하는 친러시아 시위가 크림반도에서 일어난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그런데 이 곳에서 반러시아 선봉에 선 것은, 친서방 성향의 우크라이나계가 아닌 타타르 무슬림들이었습니다.

 

2월 26일 크림자치공화국 수도 심페로폴에서는 쫓겨난 야누코비치를 지지하는 러시아계의 시위가 잇따랐습니다. 친러시아계 ‘괴한’ 50여명이 자치공화국 의회와 정부 청사를 점거했고, 세르게이 악쇼노프라는 폭력조직 출신 43세의 자치공화국 총리가 갑자기 취임했습니다. 그러자 친러시아계와 반러시아계, 즉 자치공화국의 미심쩍은 새 정부·의회 지지자들과 타타르 무슬림들의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으로 2월 말에 2명이 숨졌습니다. 


타타르계는 “분리주의자들은 대체 누구인가”라 외치며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인구구성에서 열세인 타타르계의 목소리는 이내 억눌렸습니다. 크림반도의 세바스토폴항은 러시아 흑해함대 기지가 있는 곳이며 크림반도 곳곳에 러시아군이 주둔해왔습니다. 이들이 곧바로 크림반도를 장악했고 우크라이나군을 사실상 무장해제 해버렸으니, 러시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힘을 발휘할 리는 만무했지요. 


크림 자치의회는 러시아로의 귀속을 결정할 주민투표를 3월 16일 실시했고, 80% 이상의 투표율에 90%가 넘는 지지로 ‘러시아 귀속’이 결정됐습니다.


초원에서 온 유목민들, 그리고 비운의 역사

 

타타르는 원래 유라시아 내륙 초원지대에 살던 아시아계 주민들입니다. 이들은 한국어와 비슷한 투르크계 언어를 쓰며 이슬람을 믿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옛소련권 전역에 흩어져 사는 타타르족 인구는 현재 550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그 중 300만명은 러시아내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과 바슈코르토스탄 자치공화국에 살고 있습니다. 러시아 밖에서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지에 타타르족 공동체가 있습니다.


16세기 오스만투르크 군대의 선봉에 선 크림 타타르를 묘사한 세밀화. 위키피디아


크림반도에는 18세기만 해도 65만명 이상의 타타르족이 ‘타타르 칸국’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1787년 러시아의 한 주로 병합된 뒤 1917년 독립했지만 1921년 다시 옛 소련에 편입됐습니다. 1944년 스탈린은 타타르인들이 2차 대전 기간 나치 독일에 협력했다는 이유를 붙여 크림 타타르인들을 우랄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켰습니다. 


강제이주 와중에 20만명이 굶주림과 질병에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후 크림반도의 타타르인은 갈수록 줄었고, 지금은 7만3000명 정도만 남았습니다. 이런 아픔을 안고 있으니, 타타르인들이 소련과 현 러시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심페로폴의 반러시아 시위에 참가한 네비 사들라예프라는 60세 타타르 남성은 블룸버그통신에 “우크라이나 국민은 피를 흘리며 독재자를 제거했다는데, 또 다른 독재자가 복귀하는 건 원치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푸틴은 크림을 물리적으로 장악하면서, 러시아계가 우크라이나계의 핍박을 받을 수있기 때문에 ‘러시아인의 보호를 위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크림반도의 러시아계는 자신들이 우크라이나의 소수민족이라고 주장합니다. 문자 그대로의 '소수'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러시아계가 이렇게 우기는 건 좀.... 우크라이나계는 크림의 러시아계가 핍박을 받았다는 건 터무니없다며 반박하지요. (얼마 전 회사에 온 우크라이나 출신의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러시아계가 우크라이나 내에서 핍박받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펄쩍 뛰더군요 ㅎㅎ)


설혹 러시아계가 우크라이나 내의 ‘소수’임을 인정하더라도, 그렇다면 크림의 타타르야말로 소수 속의 소수, 이중의 마이너리티입니다. 타타르는 크림반도가 러시아로 넘어가면 러시아계의 탄압이 재연될 것이라 우려하고 있습니다.

 

기우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미 ‘타타르 탄압’은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WR)가 크림반도의 친러-반러 시위대 충돌 과정에서 러시아계가 타타르 주민을 탄압한 의혹이 있다면서 진상조사를 촉구했습니다. 지난 3일에는 심페로폴에서 시위를 하던 타타르족 운동가 레샤트 아메토프가 군복을 입은 남성들에게 납치됐다가 13일만에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는 “크림반도에서 소수계 주민에 대한 납치와 살인 등 무법행위가 퍼지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크림자치공화국, 타타르 ‘강제이주’ 시사

 

비운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일까요. 하필 올해는 타타르 강제이주가 시작된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루스탐 테르미갈라예프 크림자치공 부총리는 지난 19일 “타타르족에게 현 거주지를 비워줄 것을 요청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불법으로 점유한 지역을 돌려받는 대신에 합법적으로 살 곳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고 러시아 리아노보스티통신이 보도했습니다. 집 내놓고 땅 내놓고 다른 데로 옮겨가라, 이 뜻입니다. 타타르계의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라고 볼수밖에 없습니다. 


크림자치공 측이 주장한 ‘타타르의 불법 점유’는 과거의 강제이주 때문에 생겨난 문제입니다. 옛소련 곳곳으로 흩어진 타타르계가 크림반도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 이후였습니다. 하지만 조상들의 집과 땅은 이미 오래 전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타타르계는 빈 건물이나 농장에 터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20여년이 흘렀는데 이제 와서 당국이 ‘불법 점거’라며 내몰겠다고 하는 것이죠. 

 

최악의 경우 크림반도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타타르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타르계는 다시 크림에서 등떼밀려 나가지는 않겠다고 말합니다. 무스타파 아사브(58)라는 타타르계 주민은 강제이주당한 부모 밑에,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났으나 타타르로 옮겨온 사람입니다. 그는 로이터통신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우리를 추방하는 것”이라며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고,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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