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힘없는 동티모르 자원 빼앗으려 도청한 호주  

딸기21 2013. 12. 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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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같은 큰 나라가 이웃에게, 친구인 나라에게 할만한 행동이 아니다. 충격적이다. 비생산적이고 비협조적인 짓이다.”

 

동티모르의 사나나 구스마오 총리가 ‘해도해도 너무한’ 힘센 이웃 호주에 분통을 터뜨렸다. 건물을 지어준다며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해저 개발을 함께 하자며 자원을 빼앗아가고, 국제법정에 제소하려 하자 증인을 가두고 변호인을 습격한 호주 정부의 행태 때문이다.

 

발단은 2004년의 협정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인도네시아에 점령당해 극도로 핍박받던 태평양 섬나라 동티모르가 독립한 지 겨우 2년이 됐을 때였다. 인도네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동티모르 입장에서는 가까운 경제대국인 호주의 원조와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동티모르 총리 사나나 구스마오. 사진 호주파이낸셜리뷰(afr.com)


호주는 동티모르 수도 딜리의 정부청사를 지어주고, 낡은 건물들을 고쳐줬다. 아시아에서도 가장 낙후돼있던 동티모르는 ‘그레이터 선라이즈 유전’이라 불리는 바다밑 석유·천연가스전을 개발하기 위해 호주와 손을 잡았다. 호주가 주로 나서서 개발하고, 수천억달러에 이를 수익을 나눠갖기로 했다.


그런데 호주 비밀정보부가 딜리의 청사 건물에 몰래 도청장비를 설치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동티모르 각료회의를 도청한 뒤 유전개발 협상을 호주에 유리하게 끌고간 것이었다. ABC방송 등 호주 언론들에 따르면 당시 존 하워드 총리 정부가 자국 석유회사인 우드사이드 석유를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언론들은 호주가 지어준 동티모르의 정부청사가 “트로이의 목마였다”고 보도했다.

 

동티모르 측은 이미 2006년 네덜란드 헤이그의 국제사법재판소에 유전개발 계약이 불공정하다며 중재를 요청했다. 하지만 호주가 중재안을 거절해 무산됐고, 동티모르는 제소 준비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 상황은 동티모르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듯했다. 호주 비밀정보부 전직 직원이 도청 관련 정보를 갖고나와 동티모르 측에 전한 것이다. 2004년 비밀정보부장이던 데이비드 어빈은 현재 호주 정보기관들을 총괄하는 정보국장이 돼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는 국가 중의 하나인 동티모르의 자원을 빼앗으려 불법을 자행한 것에 호주 내에서도 비난 여론이 일었다.



그러자 지난 3일 호주 검찰 수사관들이 도청 사실을 밝힌 비밀정보부 출신 내부고발자를 구금하고, 국제 재판에서 동티모르측 변호를 맡을 호주 변호사 버나드 콜라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재판 관련자료를 빼앗아갔다. 


구스마오 총리가 격앙된 것도 당연하다. 압델 구테레스 호주 주재 동티모르 대사도 호주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너무나도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토니 애벗 호주 총리는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동티모르 측은 5일 호주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했다.

 

호주가 주변 섬나라들을 상대로 횡포를 부린 사례는 이 뿐이 아니다. 나우루 등지에 재정지원을 해준다며 아시아 보트피플(난민)들을 떠넘기고, 투발루와 키리바시 등의 주민들이 해수면 상승으로 ‘기후난민’이 되자 입국을 외면했다. 최근에는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함께 인도네시아 정보를 도·감청한 사실이 드러나 인도네시아와 외교마찰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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