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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군사 원조, "해도 욕먹고 끊어도 욕먹는" 미국의 딜레마

딸기21 2013. 8. 2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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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을 주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30년 넘게 이어져온 관계입니다. 일방적인 도움도 아닌, 서로 주고받는 사이였습니다. 민선 정부를 뒤엎고 반대세력 1300여명을 학살한 이집트 군부를 미국이 어떻게 ‘응징’할 수 있을까요. 


CNN방송의 보도대로 미국은 이집트 원조를 두고 “해도 욕 먹고 안 해도 욕 먹는” 처지('Damned if you do, damned if you don't')가 돼버렸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일 백악관 참모들과 존 케리 국무장관들을 불러 ‘각료급 긴급회의’를 열고 원조를 중단할지 말지 검토했지만 아직 이렇다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올해 책정된 미국의 이집트 원조 예산은 총 14억8000만달러(약1조6500억원) 규모로, 그 중 13억달러가 군사부문에 몰려 있습니다. 그 중 5억8500만달러가 아직 집행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미국 언론들은 오바마 정부의 이집트 원조 딜레마를 전하며 “선택지가 별로 없이 선택에 내몰린 상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Policemen stand guard inside a room of Al-Fateh mosque as supporters of Morsy exchange gunfire 

with security forces inside the mosque in Cairo on Saturday, August 17. /CNN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이 이집트 군부에 대한 지원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압델 파타 엘시시 국방장관이 이끄는 이집트 군부는 ‘이집트에서 자랐지만 미국이 먹여 키운 자식’입니다. 냉전시기 이집트 군사독재정권은 아랍권이 소련 쪽에 기울지 않게 해주는 버팀목이었으며, 이스라엘이 아랍국들 사이에서 최악의 고립과 갈등으로 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울타리였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이집트 원조가 본격화된 것은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 국교가 수립된 이후입니다. 호스니 무바라크 시절까지 이집트 군부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을 포함해 아랍권의 과격 행동주의자들을 눌러주는 대리인 노릇도 했습니다.



다른 중동국들과 달리 자원도, 미군기지도 없지만 이집트는 미국과 중동 사이의 교량이었습니다. 중동을 관할하는 앤서니 지니 전 미군 중부사령관은 “이집트를 통해 내 관할지역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원조는 이 틀안에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존적 관계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미국이 내주는 전투기와 헬기와 무기들은 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을 아우르는 지역 방위의 기반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대계 로비단체들이 이집트 원조를 계속해야 한다며 미 정부와 의회를 상대로 개발에 땀나도록 뛰고 있다는 데, 모두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또 원조의 대가로 미국은 수에즈 운하 통과의 우선권을 누려왔습니다. 유럽과 걸프(페르시아만) 간 미군 이동로를 확보하는 것은 미군에게는 절대적인 문제입니다.


이집트 국민들은, 미국이 돈 들여 자기네 정치 개입하는 걸 원치 않아요... 
그래픽 www.gallup.com


그래픽 www.yalibnan.com


재정난에 관광수입도 줄어든 이집트는 어찌 됐든 돈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원조를 줄이면 그 공백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아랍 부국들이 메우게 됩니다. 


이미 아랍 군주국들은 이집트 군부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사우디의 사우드 알파이살 외무장관은 “아랍과 무슬림 국가들은 부유하며 이집트에 도움의 손을 내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으로선 자칫 원조를 줄이다가 이집트에 대한 영향력만 잃을 수 있습니다. 이를 아는 이집트 군부와 과도정부는 오히려 미국을 상대로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하젬 엘 베블라위 총리는 미 ABC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이 군사원조를 끊는다면 실수가 될 것”이라면서 “이집트는 미국 원조 없이도 생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은 20일 이집트와의 군사협력에서 “모든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오바마 정부는 이집트군과 미군의 합동군사훈련을 일단 연기시켰습니다. 


의회와 전문가들은 양분돼 있습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앨터먼은 CNN에 “미국이 얻고자 하는게 무엇이냐”며 “이집트 군부의 정책결정과정을 바꾸고 싶겠지만, 지금 군부는 존재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압박의 효과가 없을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반면 외교관계협의회(CFR)의 이소벨 콜먼은 “군사원조 중단은 미국이 가진 단 하나의 카드이며, 폭력을 중단시키고 민간통치를 복구하기 위해 이 카드를 써야할 시점”이라 말했습니다. 최근 이집트를 방문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영향력이 있는데도 쓰지 않는다면 곧 영향력을 잃게 되는 것”이라며 군사원조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President Barack Obama tours the Egypt's Great Sphinx of Giza (left) and the Pyramid of Khafre, June 4, 2009. 

(Official White House photo by Pete Souza)

피라밋 앞에서 폼만 잡으면 머하나... 


현재로선 미국이 비 군사부문 원조는 예전처럼 진행하되 군사부문 원조는 사안별로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이달말까지 이집트에 넘길 예정이던 아파치헬기 10대와 M1A1 에이브럼스 탱크 등의 인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면서, 오바마 정부가 군사원조를 전면 중단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달 3일 군부쿠데타 뒤 이미 미국은 F16 전투기 인도를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이집트 군부는 유혈진압을 감행했지요. 군부는 F16보다도 아파치헬기 도입을 몹시 기다리고 있던 상황이어서, 아파치 인도를 보류하면 압력의 표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오는 10월 새 회계연도가 시작될 때까지 오바마 정부에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고요. 일부 강경론자들은 이집트군 무기 구매의 80%가 미국산임을 들며 “미국의 부품공급이 없으면 이집트군의 전투기는 날지 못하고 탱크는 움직이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원조를 일시 멈출수는 있어도 미국이 아랍에서 갖고 있는 이해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한 이집트 군부와의 관계에서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제럴드 세이브 워싱턴 본부장은 “수니파 대 시아파의 싸움이라면 모르지만, 지금 중동 전역에서는 이슬람주의 대 세속주의 정부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며 미국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것이 미국이 안고 있는, 국제사회가 아랍-이슬람권을 바라보며 느끼는 고민의 '본질'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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