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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한 빈라덴 못알아본 파키스탄 경찰... '아보타바드 위원회 보고서'

딸기21 2013. 7. 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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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미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아보타바드에 숨어있던 오사마 빈라덴을 찾아내 사살했다. 전쟁터도 아닌 파키스탄에서, 미국의 대테러전 동맹이던 파키스탄 정부와 보안당국은 전혀 모르는 채 전격적으로 벌어진 작전이었다. 

파키스탄 정부는 ‘아보타바드 위원회’를 만들어 이 작전의 경위를 조사했고, 알자지라 방송이 8일 이 위원회 조사보고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조사결과 빈라덴이 9년이나 파키스탄에서 숨어지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보안당국의 무능과 게으름 때문이었던 것으로 드러나, 파키스탄은 다시한번 체면을 구기게 됐다.



위원회는 빈라덴의 가족들과 측근들, 파키스탄 관리들과 정보기구 책임자들을 조사해 빈라덴의 은신 기간 행적을 재구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빈라덴은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이듬해인 2002년 파키스탄으로 넘어왔으며, 그 후 줄곧 파키스탄 내 남와지리스탄과 바자우르, 스와트밸리 등에 숨어 지냈다. 

2003년에는 9·11 테러 총괄 기획자였던 할리드 샤이크 모함마드와 접선하기도 했다. 미-파키스탄 합동부대가 모함마드를 추적해 체포하자 빈라덴은 하리푸르라는 곳으로 도망쳐 집을 빌린 뒤 두 아내와 자식들, 손자들까지 불러들여 함께 지냈다. 스와트밸리에 살던 시절 빈라덴이 탄 차가 경찰에 속도위반으로 걸린 적 있지만 단속경찰은 말끔히 면도한 빈라덴을 알아보지 못했다.

 

2005년에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아보타바드에 요새 같은 ‘진지’를 구축했고, 사살될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그런데도 당국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 알자지라방송은 “사실상 200년 이후 파키스탄은 빈라덴 추적의 책장을 덮었다”고 보도했다. 아예 추적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빈라덴은 집을 구입할 때 불법 신분증을 제출했고, 군사시설처럼 집을 불법 개조했고, 심지어 재산세조차 내지 않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 보고서는 ‘정부 파열 증후군’이라는 말을 써가며 파키스탄의 “정치·군사·행정의 리더십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결론내렸다.

 


아보타바드에 있는 빈라덴의 은신처. 사진 bbc 웹사이트


파키스탄 군 정보국(ISI)은 미 중앙정보국(CIA)과 함께 1980년대 빈라덴을 비롯한 아프간 무자히딘(반소련 이슬람 전사들)을 키운 장본인이다. 그러나 한때 아프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했던 이 기구는 물론이고, 파키스탄 군 자체가 빈라덴 추적전에서 아무 역할을 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군사작전이라는 명백한 주권침해 앞에서도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위원회가 파키스탄 공군 책임자에게 미군의 빈라덴 사살작전을 왜 포착하지 못했는지 묻자 “파키스탄의 레이더는 전시가 아닌 평시 기준으로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나왔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 아보타바드 보고서 자체도 감추려 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같은 날 윌리엄 맥레이븐 미군 합동특수작전사령관도 빈라덴 사살작전 관련 자료를 국방부 컴퓨터에서 삭제하고 CIA에 이관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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