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공감] 역사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

딸기21 2013. 6. 5.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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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인터넷에 바칼로레아(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의 철학 문제들을 소개한 글이 유행했다. 프랑스의 수준 높은 철학교육은 우리에게만 관심거리인 게 아닌 듯하다. 영국 BBC방송 기자가 프랑스에 살면서 그곳 교육을 보고 느낀 것들을 지난 주말 웹사이트에 올렸다. 제목이 “왜 프랑스는 학생들이 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걸까”다. 


기자가 소개한 프랑스의 철학시험 문제는 이런 것들이다. ‘진실은 평화에 도움이 되나’, ‘폭력 없이 권력이 존재할 수 있나’‘사실(facts)에 위배되면서도 옳은 입장에 설 수 있나’.철학 교과서의 주제들은 의식, 타자, 예술, 존재, 시간, 물질과 정신, 사회, 법, 의무, 행복 같은 것들이라고 한다.

 

고교 시절 나도 철학 과목을 배웠다. 주로 철학자들의 이름과 시대를 외우고 ‘인물과 철학 사조가 맞게 짝지어진 것은’ 따위의 문제를 풀었다. 영국 기자도 아마 나와 비슷한 철학 수업을 받았나보다. “다른 나라에서는 중·고교생들이 철학의 역사 정도만 배우는데 왜 프랑스는 유독 그걸 넘어 철학의 본류로 뛰어들라고 하는 거냐”고 묻는 걸 보면.

 

바칼로레아는 1809년 나폴레옹 때 생겼는데, 그 시절부터 철학이 핵심 과목이었단다. 신생 공화국(훗날 제국으로 바뀌지만)의 이념과 덕성을 받아들이고 구현할 시민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시험의 목표였단다. ‘교육’이 ‘생각하는 시민을 길러내기 위한 시스템’이라고 본다면 그 정점에 철학을 놓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역사를 모르고 역사관이 잘못된 아이들이 요즘 많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를 많이 가르치자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역사를 가르치되 ‘좌파 역사관’을 빼자고, ‘자학사관’을 고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얼마전 페이스북에서 재미난 글을 봤다.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느냐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꿀밤을 때린다. 왜 때려요 하니 다시 꿀밤. 이번에는 아이가 피했다. 선생님은 “네가 꿀밤맞은 걸 기억하지 못했다면 이번에 피할 수 있었을까” 묻는다. 그래서 역사교육이 필요한 거라고. 그런데 어딘가 개운치 않다.

 

아이돌 가수가 ‘민주화’를 폄훼하고, 일베충들이 5·18 광주항쟁을 모독하고, 뉴라이트가 국사 교과서를 뒤집으려 하고. 결코 ‘소동’이라고만 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은 나 스스로에게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는지 묻는 계기가 됐다. 국제부 기자로 일하면서 세계 여러 곳의 역사를 알려 애쓰고 아이에게도 역사 이야기책을 사주지만, 돌이켜보면 철저하게 기능적인 접근이었다. 


업무에 필요해서 역사책을 읽는 지금의 나는,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역사공부를 하던 학생 시절에서 한 치도 나아간 게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시험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역사공부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나, 기득권을 옹호하려 역사교육을 휘두르려는 자들의 태도와 무엇이 다를까.

 

역사를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것은 5·18을 헐뜯는 말종들이 많아서가 아니고, 식민지배의 아픔을 통탄하며 국력을 키우기 위해서도 아니다. 장차 싸워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화롭고 평등하게 잘 살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돌아본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인간은 어떻게 존재하며 왜 공존해야 하는지, 타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하며 살기 위해.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배려를 배우기 위해.


한일 우익들은 자학사관을 운운하지만 내 생각에 역사교육은 기본적으로 (그들식 표현을 빌면) ‘자학’이고 반성이어야 한다. 과거에 싸우고 죽인 일들, 착취하고 짓밟은 일들, 파괴하고 오염시킨 것들을 아는 것이 역사 공부다. 다음에는 그런 일들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게 이런 것이듯, 우리 스스로에게도 그런 공부를 요구해야 한다.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니 역사공부 이전에 생각하는 법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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