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총선 앞두고 시험대 오른 파키스탄

딸기21 2013. 5. 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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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인’은 나이가 어려 총선에 출마할 자격이 없으며, 심지어 신변의 위협을 느껴 선거를 이틀 앞두고 국외로 떠났다. 돌풍을 일으킨 야당 정치인은 연설회장에서 엉성한 무대에 올랐다가 떨어져 병상에서 총선을 치르게 됐다. 정당명부 투표를 해야 하는데 글 모르는 유권자들이 많아 정당들은 번호 대신 ‘그림’으로 캠페인을 한다. 지방 곳곳에선 하루에도 몇차례씩 후보들과 정당 사무소를 노린 폭탄이 터진다.


11일 총선을 치르는 파키스탄 풍경이다. 핵무기 보유국에다 2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대국으로 한때는 인도와 경쟁하며 남아시아의 패권을 꿈꾸던 파키스탄이 지금 시험대에 올라 있다. 쿠데타와 암살과 정정불안이 거듭된데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협력하면서 온 나라가 더 아수라장이 된 탓이다. 

아프간 접경지에서는 테러조직이 기승을 부리고, 이슬람 극단주의가 퍼져 ‘여성들의 지옥’이 돼버렸다. 대테러전을 돕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원조를 받았지만 부패한 정치권이 모두 가로챘을 뿐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 모든 문제들이 총선을 계기로 터져나오고 있다.


dawn.com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하원의원 324명을 뽑는다. 2007년 암살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남편이자 ‘부패 정치인’의 상징 격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 대통령(58)이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을 이끌고 있다. 최대 경쟁자는 이미 총리를 두 차례 지낸 나와즈 샤리프(64)다. 

크리켓 선수 출신으로 정치인이 된 임란 칸(61)도 ‘테흐리크 이 인사프(정의행동)’라는 당을 만들어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그밖에 여러 정당들이 지역·부족세력을 기반으로 할거하고 있다. 파키스탄 내 정치분석가들은 샤리프가 이끄는 나와즈무슬림연맹(PML-N)이 30~35%를 득표해 최대정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과반 득표를 하는 정당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당은 자르다리가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와 베나지르의 아들인 빌라왈 자르다리-부토(24)를 내세워 선거운동을 해왔다. 줄피카르 알리 전총리와 베나지르, 그리고 빌라왈로 이어지는 ‘부토 3대’의 명성 외에는 내세울 게 없기 때문이다. 

정작 빌라왈은 총선에 출마할 수 있는 연령(25)이 아직 안 돼 의회진출을 다음으로 미뤘다. 선거 사흘 전에는 암살 공격을 우려해 아예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로 피신했다. 총선 때까지 외국에 머물며 아예 투표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파키스탄 언론들은 전했다.


정당 기호 그림들.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샤리프는 이번 선거에서 정부의 대테러전 협력을 문제삼았다. 그는 8일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테러전에서 파키스탄의 역할을 끝내겠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의 이슬람 세력들은 정부가 미국에 협력하면서 아프간의 ‘동지’들을 팔고 이슬람을 배반했다며 반발해왔다. 아프간에 면한 서부 접경지대는 대테러전 뒤 오히려 탈레반 세력의 본거지로 변했고, 사실상 정부 통제가 먹히지 않는 무법천지가 됐다. 샤리프가 집권하면 대테러전에 10년 넘게 휘둘린 파키스탄은 다시 미국과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이며, 미국의 아프간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부터 대테러전을 돕는 대가로 막대한 원조를 받았다지만 지금 파키스탄 경제는 엉망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구매력기준 2900달러로 세계 최빈국 수준이며 국민 5명 중 1명은 하루 1~2달러로 살아간다. 무샤라프가 물러난 뒤 선거로 집권한 자르다리는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실패했다. 

특히 국민들을 성나게 만든 것은 전력난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몇몇 도시는 하루 20시간씩 전력공급이 중단된다”고 전했다. 전력 부족때문에 공장을 못 돌리니 외국투자도 급감했다. 2008년 50억달러가 넘던 외국투자는 지난해 7억달러 수준으로 줄었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이겨 ‘무사히’ 집권에 성공하면, 이 나라에서 선거로 뽑힌 정부가 선거로 뽑힌 정부에 정권을 넘겨주는 첫 사례가 된다. 지금으로서는 선거가 큰 탈 없이 치러질지도 불투명하다. 지난 7일 두 곳에서 정치인들을 겨냥한 폭탄공격이 벌어져 13명이 숨지는 등, 이달 들어 선거와 관련된 유혈사태가 매일 두세건씩 일어나고 있다.  군부는 8일 수도 이슬라마바드에 병력을 배치했으며 국경지대에서도 경계를 강화했다. 

 

정권교체가 이뤄진들 모든 과제들이 술술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샤리프는 과거 집권기에 무능력과 부패로 지탄받은 바 있다. 10% 이상을 득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정의행동의 임란 칸은 7일 연단이 무너져 입원했는데, “국민들은 더 나은 삶을 누릴 가치가 있다”는 구호 외에는 아무 정책적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유력 신문인 돈(DAWN)은 “현 정부가 잘 한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것 외에는 야당이 인기있는 이유를 설명할 아무 요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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