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칼럼

[공감] 보라매병원과 진주의료원-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딸기21 2013. 4. 23.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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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사건이 하나 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위탁운영하던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한 환자가 숨졌다. 정확히 말하면 ‘퇴원 직후’에 숨졌는데 상황이 간단치 않았다. 환자는 위중했고, 인공호흡기를 떼는 순간 곧바로 사망하리라는 걸 의사들은 알았다.

시립 보라매병원은 돈 없는 이들이 많이 가는 곳이었다. 숨진 사람은 50대 남성으로 기억한다. 첫부인과의 사이에 아이가 있었지만 젊었을 때에 이혼했다. 재혼한 부인이 만삭이었을 때에도 폭행을 한 나쁜 남편이었다. 수사기록만 보면 그렇다. 그는 더 이상 입원해있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고, 먹고살 길이 막막한 부인은 호흡기를 떼어달라고 의사들에게 부탁했다. 의사들은 처음엔 말리며 거절하다가 부인의 요청에 못 이겨 퇴원을 시켰다. 수련의가 환자의 집에 동행한 뒤 집에서 호흡기를 뗐다. 그리고 환자는 숨졌다.



돈 없어 치료를 못 받고 숨지는 사람은 많다. 흔한 죽음의 하나로 묻힐 수 있었던 이 사건이 부각된 것은 한 검사가 용감하게 의사들을 기소했기 때문이다. 검사는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숨질 걸 알면서도 치료를 중단한 것은 살인과 같다며 사망자의 아내와 의사 4명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사망자의 첫 부인이 낳은 딸은 재판부에 편지를 보내 “새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과 무관심 속에서도 나를 키우셨다”며 어머니를 용서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모저모로 눈길 끄는 재판이었다.

재판 결과 의사 3명과 부인은 유죄, 상급자들의 지시에 따라 호흡기를 직접 뗀 수련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돈 없는 환자 가족이 치료를 그만하자 한다고 해서 퇴원시켜 죽게 했으니 살인이라는 것, 의사들은 반발했을지 몰라도 재판을 지켜보던 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돈만 있으면 고칠 수 있는 병을 못 고쳐서, 혹은 고치지는 못하더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데 그 놈의 돈 때문에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 전화 ARS 모금 한번 해주면서 마음을 달래던 나같은 사람들에게 이 검사의 기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라매병원을 떠올린 것은 진주의료원 때문이다. 진주의료원에서 쫓겨난 환자들이 줄줄이 사망했다. 뇌출혈로 입원해 있던 왕일순 할머니(80)는 퇴원해 주변 노인병원으로 간 지 하루 반만인 지난 18일 숨졌다. 신문 기사에 따르면 할머니는 폐렴을 앓고 있었고 병원을 옮기면 안 되는 위중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진주의료원 급성기병동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는데 경상남도가 퇴원을 종용해 병원을 옮겼다가 숨졌다는 것이다. 왕 할머니 외에도 환자 네 명이 병원을 옮긴 뒤 사망했다.

기사가 실리자 포털사이트에는 “살 만큼 사신 분들 아니냐”는 댓글들도 달렸다. 살 만큼 산 이들에게 돈 퍼붓느라 젊은 납세자들 부담이 커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합리적이다. 그런 여론이 적잖은 게 우리 사회 분위기이니 진주의료원 사태가 일어난 것 아닌가 싶다. 하지만 살 만큼 산 사람의 목숨을 내놓으라기보다는 가질 만큼 가진 사람의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지방정부 살림과 병원 적자 모두 중요하지만 그래봤자 ‘돈’ 문제다. 생명이 위중하시다는 여든 살 할머니에게 나가라고 했다는 건 너무 비인간적이다. 보라매병원 재판으로 미뤄보면 홍준표 경남도지사와 퇴원을 지시한 관리들, 병원 직원들은 살인죄로 기소돼야 할 것 같다. 보라매병원 의사들을 기소한 검사는 지금 청와대에 있는 이중희 민정비서관이고, 당시 수사를 지휘한 분은 정홍원 국무총리다. 진주의료원에 대해 두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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