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여행을 떠나다

[노는 엄마, 노는 딸] 스페인에서의 첫날

딸기21 2013. 4. 1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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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한 2012 스페인-모로코 여행.

일명 '노는 엄마와 노는 딸, 놀러다니다'.

엄마는 다니던 직장을 1년간 휴직했고, 딸은 다니던 학교를 1년간 휴학(?)했다. 바쁘고 치열하게 홈스쿨링을 하던 중... 두 사람은 여행을 떠났다. 여행지는 스페인과 모로코. 일단 유럽 중 가보고 싶었던 곳이 스페인이었고, 모험심 강한 딸(당시 초등 5학년)이 사하라 사막을 꼭! 여행하고 싶다고 해서.
그리하여 시작된 우리의 여행. 알흠다운 모녀의 추억을 여기에 정리해둔다. 다만 한 가지 독자들의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이... 사하라 사막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렸어요 -_- 그래서 사진이라곤 아이폰으로 찍은 것들 밖에 없음. 흑흑...


여행 첫 날, 마드리드.

마드리드 도착했더니 아침 7시 반인데 대략 이 분위기. 공항에 도착해 메트로를 갈아타고 힘겹게 숙소를 찾아 이동했는데 지하철 내려 올라와보니 이런 풍경이다. 아침이 아니야, 이건....


이래 보여도 여기가 마드리드 관광객들이 모이는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즉 태양의 문 광장이다. 마드리드는 8시나 돼야 동튼다는 놀라운 사실. 지하철에서 나와서 깜짝 놀랐다.

새벽을 아침인 양 일어나서 일하다가 점심을 오래도록 먹고, 낮잠 한번 자고, 오후에 좀 일하다가 늦도록 먹고 늦게 잠자는 생활리듬은 아무래도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같지 않아서, 스페인에서도 이런 리듬을 바꾸자는 얘기가 나온다고 들었다. 사실 경도로 따지면 스페인 서부는 그리니치 기준시인 영국보다 더 서쪽인데 시간상으로는 영국 시간을 같이 쓰고 있어서 이런 일이 생기는 거라고.

우리의 숙소는 프린시페 거리의 호스탈 레지오날. 암만 봐도 민박집이다. 아줌마가 애기 유치원 보내고 온다며 친정엄마한테 욕실이랑 부엌 등등 안내를 맡겼는데 할머니는 오로지 “노 잉글리쉬”만을 외칠 뿐. 샤워실이니 화장실이니 부엌이니 그냥 우리가 알아서 찾아내긴 했음.

우리는 여행객이지만 다른 방 묵는 사람은 그냥 싼 값에 장기간 투숙하는 주민으로 보인다. 부엌도 그냥 지저분한 살림집 부엌처럼 보이고. 와이파이 비번이 20 글자도 넘는 집은 첨 봤음. 뒤에 보니 스페인에선 숙소에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 비번이 대략 그렇게 길더군요.


오른쪽 아래는 느무느무 좁다란 우리 방 발코니에서 바라본 풍경. 4층이지만 실제론 5층. (새벽까지 떠들고 노는 저 사람들 매우 미웠음.)

겹겹이 철문 열고 나무문 열고 타는 엘리베이터 보고 요니는 뿅 갔다.

오전에 터미널 가서 바르셀로나 가는 버스표 사놓고, 오후에 팔라시오 레알(왕궁) 구경하고, 플라사 마요르 지나 아토차까지 걸어가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구경.


<게르니카>를 보았다. 사진은 못 찍게 해서 없지만. 그 거대한 작품이 자리하고 있는 방에 들어선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피카소와 달리와 후안 미로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 온 기분이다. 이날 들른 곳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프라도가 고야와 벨라스케스와 보슈(스페인 식으로는 엘 보스코)의 집이라면, 바로 그 근방에 있는 레이나 소피아는 피카소와 달리와 미로의 집이다

만 레이의 무서운 눈(요니는 이 작품을 '지켜보고 있다'라 불렀다)과 오스카 도밍게스의 끔찍한 그림들도 보았다. 전시의 주제는 1930년대, 다분히 게르니카의 전당이라는 위상에 맞춘 전시다. 컨템포러리 쪽은 다리가 아파 돌아보지도 못했다.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을 훑고 싶었다. 프라도는 다음날 갔고 티센은 떠나기 직전 되도록이면 들러볼까 했으나... 결국 못 갔음.


이건 달리가 그린 '창가의 소녀'라는 작품이다. 레이나 소피아에서 찍은 사진.
달리에게 이런 작품도 있었구나, 싶었다.
툴루즈 로트랙의 '세탁부'와는 다르지만 어쩐지 서글퍼지는, 비슷한 느낌.


(이번 여행과는 전혀 상관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툴루즈 로트랙의 '세탁부'는 이것.
난 사실 이걸 오래전에 화집에서 흑백;;으로 봤다.
실물을 보지 않았으니, 이 그림의 색감이 정말로 어떤지는 잘 모른다...)


달리와 피카소는 어쩐지 동시대라는 느낌이 안 드는데… 달리가 더 오래 살아서 그런가. 이 미술관에는 달리가 피카소와 비슷한 시기에 그린 큐비즘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달리는 어떻게 시간이 흐르면서 초현실주의로 변해간 걸까.

미술은 미술이고.

아침 여덟시에야 날 밝는 마드리드에 사는 분들아, 오후 여덟시가 되면 저녁들을 먹으란 말이다!

론리플래닛에 스페인 식당들 저녁 타임이 pm 9~11시라 나온다. 정말이었다. 그래도 첫날이니 스페인 대표 음식이라는 빠에야 한번 먹어보려 했는데 여덟시에 식당 가보니 음료 메뉴판만 준다. 둘러보니 여러 노천 식당에 모두 음료수 마시는 사람들 뿐, 밥을 안 먹네? 물론 패스트푸드점이나 피자집은 있지만 아침에 동트기도 전부터 피자 먹었단 말씀. 점심도 또띠야랑 감자칩 먹었는데 ㅠㅠ


결국 요니가 좋아하는 케밥 먹었다.
케밥을 잡아먹고 있는 요니의 포스...



길 귀신에 지도 귀신인 딸기, 걷기 신동인 요니. 구시가지 곳곳을 누비고 다녔더니 하루 만에 대략 골목길 감이 잡힌다. 이번 여행에선 요니가 모든 걸 공책에 적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 첫 날인데 너무 많이 걸었나보다. 낮 동안에는 틈틈이 짬 내어 꼼꼼하게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노트 정리했는데 정작 호스탈 들어오자마자 나가떨어진 요니. "게르니카를 보았어요" 페북에 한줄 올리고 잠들어버렸다.


요건 요니가 낮에 적은 것들.



스페인에서의 첫날, 가장 놀랐던 것은-

첫째, 너무나도 맑고 크고 높은 하늘. 그동안 내 평생 봐왔던 것은 하늘이 아니었더이다. 두번째, 이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밤 시간대'와 내가 생각하는 시간대가 다르더라는 것.

새벽 세시- 바깥이 하도 시끄러워서 난 만 명쯤 모여 있는 줄 알았다(울 호스탈은 방음이 전혀 안 된다).
새벽 네시-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밖에 전쟁 난 듯 시끄러워서 베란다 나가봤다. 그 시간에 그토록 시끄럽다는 게 놀랍고, 대규모 시위도 아닌데 기껏 스물 남짓한 사람들이 그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생일파티를 하나 본데, 생일을 어떻게 저렇게 시끄럽게 축하할 수가 있지? 놀라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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