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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베스 이후, 베네수엘라는 어디로 갈까

딸기21 2013. 3. 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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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중이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58)이 5일(현지시간) 끝내 별세했다. 베네수엘라 전역에는 혼란과 충돌을 막기 위해 군대가 배치됐다.

일간 엘우니베르살 등 현지 언론들은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이 “슬픈 소식을 국민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이날 차베스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군 병원에 입원해있던 차베스는 이날 오후 4시 25분 숨을 거둔 것으로 발표됐다. 14년간 베네수엘라를 통치한 차베스는 2011년 암에 걸린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쿠바에 가서 4차례나 수술을 받으면서도 베네수엘라 국영방송 메시지와 전화연결, 트위터 같은 SNS를 이용한 발언으로 ‘원격 통치’를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대국민 메시지나 방송 출연도 전혀 없어지는 등 국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사망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었다. 



베네수엘라 남부 농촌마을 사바네타에서 태어난 차베스는 17세 때 군인이 된 뒤 남미 독립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추종자가 됐다. 한 차례 쿠데타 실패로 수감됐다가 1994년 사면과 함께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 1999년 44세의 나이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됐다. 집권 기간 석유 등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부의 재분배에 나서 가난한 국민들의 호응을 받았지만 기득권층의 거센 반발로 정국 혼란이 이어졌다. 쿠바, 볼리비아 등 중남미 좌파정권들과 연대하면서 강경한 반미노선을 걸었으며 거친 독설로 늘 논란을 빚었다. 차베스는 부통령은 마두로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해놨지만 당분간 베네수엘라 정국은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법에 따라 30일 내에 대선이 실시돼야 하는데, 현재로선 우파 야권이 우세한 상황이다.

차베스 사망 뒤 베네수엘라 곳곳에는 군대가 배치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과거 수차례 차베스와 관련된 쿠데타와 반쿠데타 등으로 유혈사태가 벌어진 전례가 있다. 


차베스 이후, 베네수엘라는 어디로 갈까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떠났다. 그의 집권기간 극으로 치달은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양극화는 어떤 불안정을 낳을 것이며, 다가올 대선은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까. 좌-우 진영 모두에서 화두는 ‘차베스, 차베스, 차베스’다. 그가 지난 14년간 만들어온 정치·경제·사회구조의 변화가 워낙 컸기 때문이다. 개혁노선을 계승하겠다는 부통령도, 가장 유력한 야권 주자도 모두 차베스의 이름을 내걸고 단합과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차베스 사망 사실이 발표된 뒤 정부 고위 인사들과 집권 통합사회주의당 지도부가 앞다퉈 국영방송에 나와 국민 단합을 촉구했다. 과거 차베스의 집권·국유화 과정에서 벌어진 혼란과 충돌의 악몽이 남아있는 탓이다. 차베스의 측근으로 부통령을 지냈던 엘리아스 하우아 외무장관은 국영 텔레수르 방송에 출연해 니콜라스 마두로 부통령(53)이 대선 전까지 임시대통령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차베스는 우리 베네수엘라인들이 마두로와 함께 볼리바르 혁명을 이어갈 것을 부탁했다”고 말했다.

마두로는 지난해 12월 차베스가 후계자로 지명한 인물이다. 버스 운전기사 출신에 노조활동가로 유명했던 그는 국회의장과 외무장관을 지내면서 차베스의 생각을 충실히 옹호해 신임을 받았고, 부통령이 된 뒤에도 차베스의 입 역할을 했다. 차베스가 투병하는 동안 늘 곁에 있었던 것도 그였다. 집권당 후보로 대선에 나선다면 차베스의 계승자임을 최대한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최대 라이벌은 중도우파 정의제일당의 엔리케 카프릴레스(51)다. 정치·경제 중심지인 북부 미란다 주의 주지사로, 지난해 10월 대선에서 한 차례 차베스와 맞붙었다. 브라질의 룰라 다 실바 전 대통령을 좋아하고, 룰라와 차베스에게서 정치적 영감을 받아왔다고 밝혀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대통령이 될 경우 차베스의 복지·재분배 정책은 상당 부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중도우파이지만 베네수엘라의 옛 기득권층과 달리 룰라식 ‘친시장 복지 노선’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프릴레스는 사분오열됐던 우파를 이끄는 지도자로 인기를 얻고 있으나 유대계라는 점이 반감을 사기도 한다.  지난해 2월 국영방송은 그를 가리켜 “ 유대계를 결집해 시오니즘을 대변하려 하는 인물”이라 공격하기도 했다. 카프릴레스는 경제정책에선 중도에 속하지만 외교노선에서는 친미·반이란 쪽이다. 2002년 쿠바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다가 넉달간 투옥됐고, 지난해 대선 때에는 “이란 같은 나라와는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 매체인 베네수엘라어낼리시스에 따르면 차베스가 위독했던 지난 4일 카프릴레스는 미국에 체류하고 있었다. 미묘한 시점에 미국에 간 이유는 불확실하다. 카프릴레스는 차베스 사망이 발표되자 “그의 가족과 지지자들에게 나의 연대가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트위터에 “지금이 차베스를 향한 깊은 사랑과 존경을 국민들이 보여줄 때”라는 메시지를 올렸다. 그러면서도 “헌법에 따라 마두로 부통령이 아닌 국회의장이 임시 대통령이 돼야 한다”며 여권을 견제했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 사후 30일 안에 선거를 치러야 하는 데, 마두로와 카프릴레스가 맞붙을 경우 누가 이길지는 알 수 없다. 마두로는 차베스에 비해 카리스마가 없고 대중적 지지가 낮은 편이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차베스 애도 분위기도 여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카프릴레스는 지난 대선에서 야권 단일후보로 나와 돌풍을 일으켰지만 차베스라는 큰 적이 사라진 지금은 야권이 다시 분열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차베스 사망 뒤 베네수엘라 곳곳에 군대가 배치됐으나 군부의 별다른 동향은 눈에 띄지 않는다. 디에고 몰레로 국방장관은 “차베스의 뜻과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현지 일간 엘우니베르살이 보도했다. 그는 또 “마두로 부통령과 디오스카도 카베요 국회의장은 군을 믿고 의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집권당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복지정책은 이어지고, 변혁정책은 뒤집힐 가능성"


우고 차베스 집권기의 베네수엘라는 ‘21세기 사회주의’의 새로운 실험으로 전세계 진보진영의 주목을 받았다. 반면 우파 쪽에선 과격한 국유화와 반미 노선, 돌출적인 언행 등을 들며 차베스를 격렬히 비난했다. 브라질·베네수엘라 좌파정권의 경제정책을 연구해온 가톨릭대 사회학과 조돈문 교수로부터 ‘차베스 노선’의 의미와 한계, 향후 전망 등을 들어봤다.

 

-논란이 많았던 차베스 경제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첫째, 소득 재분배 정책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평생교육, 식품지원 등의 복지정책을 적극 펼치고 부를 재분배함으로써 불평등 완화에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 국유화에서 공동경영으로 이어진 사회주의 변혁 정책이다. 브라질 룰라의 노동자당 정권도 적극적인 복지와 재분배에 나서긴 했지만 자본주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 차베스는 기간산업을 국유화한 뒤 상당수를 공동경영 즉 노동자 자주관리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했다.”

 

-하지만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았고, 정치적 양극화를 극단적으로 키웠다는 지적도 많다.

 

“서민들을 위한 복지에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다. 야당이 집권하더라도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은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공동경영에 대해선 국민들의 관심이 높지 않다. 여러 기간산업체에서 노동자 자주관리가 이상적으로 이뤄지지도 않았고, 부작용도 많았다. 차베스는 이에 대해 ‘아미고 에네미고(친구가 아니면 적이다)’라는 식으로 대응, 반대세력을 지나치게 적대시했다. 정권이 바뀐다면 차베스의 ‘국유화-공동경영 정책’은 되돌려질 가능성이 크다.

 

-중남미 좌파국가들에겐 차베스의 사망이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차베스식 변혁 실험은 타격이 불가피하겠지만 남미 국가들에 미치는 파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각각 좌파가 집권한 구조적 요인이 있기 때문에 이 나라들이 하루아침에 우파로 돌아서지는 않는다. 정책적·재정적으로 차베스에 기대고 있던 볼리비아나, 베네수엘라의 석유수입으로 연명해온 쿠바 같은 카리브해 소국들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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