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잠보! 아프리카

말리, 알제리, '식민 모국'

딸기21 2013. 1. 2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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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 국제뉴스는 고사하고 국내 뉴스에도 담 쌓고 지내니. 더군다나 요 며칠 바쁜 일도 있고 해서, 예전 같으면 관심 가졌을 일을 그냥 스쳐 지나가다가 이제야 몇줄 끄적인다. 말리-알제리 사태에 대해서. 이미 '알제리 인질극'은 상황종료라지만, 말리의 혼란과 알제리의 비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며 내일도 그런 상황이 계속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으니.  


통북투가 있는 나라, 늘 가보고 싶은 나라 말리. 얼마전 모로코 여행 때 사하라 사막 투어 갔다가 "통북투까지 낙타 타고 52일"이라는 또다른 투어 광고를 보고 다시금 말리에 대한 로망이 불타올랐다. 그런데 어릴적부터 내가 로망 삼아온 나라들은 다 아수라장이 되더라고. 아프가니스탄도 그렇고... (바미얀 석불을 탈레반이 부쉈을 때 나는 울었다)


아무도 관심 없던 나라, 말리의 과거와 현재가 뒤늦게 국제적인 관심사가 됐다. 말리에서 쿠데타가 일어나고 남북이 갈라질 지경이 됐다. 남쪽에선 쿠데타니 뭐니 해서 집권세력들이 갈라져 싸우고, 북쪽은 북대로 이슬람 극단세력들이 각축을 벌이며 싸웠다. 그다지 큰 이슈도 되지 않았던 말리의 상황은 뒤늦게 프랑스가 파병을 하면서 '국제적인 문제'로 부상한 모양이다. 이어 알제리에서는 말리 북부를 장악한 자들과 동류인 이슬람 극단세력이 인질극을 벌였다. 일련의 사태 속에서 가장 먼저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것은 말리와 알제리라는 두 나라다. 


말리와 알제리, 두 탈식민국가의 비극


말리의 오랜 독재와 종족 분열, 취약하고 이름 뿐인 민주정부 같은 것은 (아프리카) 탈식민 국가의 전형이다. 군사독재를 거쳐 형식적으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섰지만 전국을 통제할 능력도 없고 지지기반도 취약하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없다는 거겠지. 


말리 북부 상황과 관련해서 투아레그족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인데, 이들의 문제는 강도는 좀 약하지만 중동의 쿠르드 문제와 비슷하다. 현지의 민족(종족) 감정에 무관하게 국경을 정하는 바람에 어떤 민족은 국가를 형성할 기회를 얻지 못한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게 됐다는 것.


쿠르드가 분리 혹은 자치 운동을 강력하게 벌이면서 여러 나라로부터 어마어마한 탄압을 받았던 데 비하면 투아레그는 근대 이전부터도 주로 해당 지역 국가의 내부에서 이슬람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경제적으로는 변방의 지위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 현대에 들어와 그들은 몇 안 남은 유목민 집단, 용병의 인력풀이 됐다. 그들이 리비아 알제리 말리 등을 옮겨다니며 취약한 지역에서 힘을 키우고 샤리아(이슬람 성법)을 내세운 잔혹한 통치를 하며 이슬람 극단주의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들은 말리-알제리-리비아를 연결하는 고리로 투아레그를 지목한다. 투아레그족이라는 정체로 해석되는 그 이면에는? 가난과 실업과 좌절감이 존재하겠지, 테러가 일어나는 모든 곳에서 그렇듯이. 


French foreign legionnaires take position outside Marakala, central Mali, 

some 240kms (140 miles) from Bamako Tuesday, Jan. 22, 2013. (AP Photo/Jerome Delay)
자세히 보니 사진 속 저 병사는 명목은 프랑스군이지만 외인부대 소속이네. -_-



알제리의 군사쿠데타와 군부 중심 구조, 이슬람과 세속주의의 끝없는 싸움, 잔인한 폭력은 어떤가. 말리가 아프리카 탈식민 국가의 전형이라면 알제리의 현재는 중동 아랍 탈식민 국가의 전형이다. 알제리는 프랑스와 전쟁을 벌여 제3세계 민족해방투쟁의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독립을 했으나 군부가 비대해지고 경제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나마 땅덩이가 크고 석유가 좀 나와서 모로코 같은 나라들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국가들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이 위안이 될 지는 모르지만. (유럽이 어떻게 북아프리카에서 야만을 창조해냈는지를 보려면 스벤 린드크비스트의 <야만의 역사>를 참조하시오)


1990년대 이후 10여년 간 알제리는 다시 혼란에 빠졌다. 이슬람 세력이 총선에서 승리하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선거를 무효로 돌린 뒤 무력으로 권력을 쥐었다. '총선 무효화-군부 쿠데타-군사독재'라는 과정은 버마와 똑같다. 그런데 버마의 아웅산 수치와 민주화 운동 세력이 세계의 응원을 받은 데 반해, 알제리의 총선에서 정당하게 승리한 이슬람 진영은 국제적인 비호를 받지 못했다. 왜? 이슬람이기 때문에! 뒤에 다시 얘기하겠지만, 중동-북아프리카에서 군사정권 혹은 군복만 벗은 권위주의 정권은 이슬람 세력을 억누르는 세속주의의 버팀목이었고, 다분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결탁할 수 있었다. 알제리에서도 그랬다. 


특히 알제리 이슬람 세력이 지지를 못 받은 것에는 '잔혹한 테러리즘'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이슬람과 이슬람주의는 분명 다르다.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가진 세속 정치인과 정치진영이 있는가 하면, 이슬람주의를 내세우거나 심지어 샤리아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이른바 극단주의 세력이 있다. 알제리 이슬람 정치세력과 군부 간 싸움은 격렬한 내전으로 비화했고, 여기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끼어들었다. 납치와 테러를 저지르고 납치한 이들의 신체를 훼손하는 식의 잔혹함이 부각되면서 알제리 이슬람진영 전체가 큰 상처를 입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즘과의 싸움'은 알제리에서 어느 정도 지지를 받았다. 비록 군부의 '이슬람 탄압' 또한 잔혹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에 인질극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알제리 정부(군부?)가 보여준 '단호함'(그 이면의 냉혹함)은 이런 역사적 과정의 결과물이다.


아무튼 곡절 끝에 알제리에서는 내전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상이 이뤄졌다. 내전과 극단주의의 시기를 거쳐 민주정치의 복원이라는 절차를 밟았다. 아랍 민주화의 봄 때에도 알제리 정부는 '이미 민주화 과정을 거쳤기에' 격랑을 피할 수 있었다. 권위주의 독재정권의 냄새를 폴폴 풍기기는 하지만. 


부연설명하자면 알제리의 압둘아지즈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군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1999년 대선에서 높은 지지율로 승리, 집권했다. 그런데 그 대선은 부정과 사기가 만연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2004년 부테플리카는 재선했고, 2008년에는 헌법을 고쳐 대통령 임기 제한을 없앴다. 그리고 2009년 3선에 성공했다. 이 정도면 민주정부가 아니라 알제리의 박정희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외부에서 대충 인정받았지만 실상은 저렇다. 국민의 자존심은 강하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나라가 알제리다. 


사하라의 이슬람과 살라피스트, 또 하나의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라는 끔찍한 재난에 세계의 시선이 쏠려있는 사이, 북아프리카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의 유령이 사헬을 떠돌고 있었다. 이집트, 리비아와 마그레브 국가들(알제리 모로코 튀니지)에선 권위주의 정권이 이슬람 세력을 억누르며 그나마 세속주의를 지탱해왔지만 이집트와 튀니지 혁명 그리고 리비아 카다피의 몰락에서 보이듯 독재체제 자체의 쌓이고 쌓인 문제 때문에 스스로 붕괴해버렸고 더이상 이 일대에서 이슬람 세력을 힘으로 누를 수 있는 국가는 없게 돼버렸다. 있다면 알제리 정도? 


왜 이 지역에서 극단주의가 판치게 된 걸까. 근래 사하라의 남진(확대)이라는 기후환경 변화와 맞물려 아랍계 혹은 아프리카계 무슬림 세계가 확대되고 있다. 아프리카 이슬람의 역사는 복잡하니 생략(정 궁금하신 분들은 아이라 라피두스의 <이슬람의 세계사> 아프리카 부분을 펼쳐보시오). 암튼 최근에 사하라 사막이 커지면서, 즉 남쪽으로 넓어지면서 북아프리카계 유목민(무슬림)들이 아프리카계 지역으로 퍼져가는 양상인 것은 분명하다. 말리도, 모리타니도, 수단도 모두 아랍화-이슬람화가 진행되는 나라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모리타니는 과거엔 아프리카 나라로 분류됐지만 이젠 아랍권의 일원으로 분류되곤 한다. 소말리아 얘기는 더이상 꺼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A French soldier secures a perimeter on the outskirt of Diabaly, Mali,
some 460kms (320 miles) north of the capital Bamako Monday Jan. 21, 2013. (AP Photo/Jerome Delay)



정치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들에서 사회의 변화가 일어나면서 불안정이 누적되는 건 당연하다. 모리타니는 상습 쿠데타 국가가 됐고, 말리에선 테러공격이 빈발했다. 대서양에 면한 이웃 세네갈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안정되고 산뜻한 나라로 꼽히는데, 세네갈 하면 가장 유명한 게 자동차 경주인 다카르 랠리였다. 이 랠리가 하필이면 불안정한 사하라 지역을 지나야 해서, 2008년에 주최측이 다카르를 떠나 남미로 개최지를 바꾸는 일도 있었다. 


수단 북부의 아랍계가 남하해 남부의 아프리카계 주민들을 상대로 인종청소를 벌이고 있는 것처럼, 사하라 남쪽에 걸쳐진 나라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새로운 아지트가 되고 있다. 아프간과 예멘 이집트 등지에서와 비슷하게 사우디 돈이 극단세력에게로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많다. 극단주의, 특히 변방의 극단주의는 무섭다. 샤리아를 내세우지만 물리적 힘이 모든 걸 압도하는 피와 폭력의 끔찍한 세계다. 절단형, 공개처형, 인신매매, 민병대와 군벌, 일상화된 폭력. 아프간의 데자뷔 같다. 


지금은 모두가 아는 비밀이 되어버렸지만, 극단주의를 배양한 것은 미국이고 싹틔운 곳은 아프간과 북아프리카다. 아프간과 북아프리카의 극단주의 및 테러리즘은 뗄 수없는 동전의 양면이다. 1980년대 미국의 돈과 공작으로 꾸려진 아프간 반소련 무자헤딘(이슬람전사) 이름하여 '아프가니스'들의 인력 풀이 북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알제리 리비아 이집트 등이었다. 그 지역에 일자리 없는 가난한 청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알제리 내부의 유혈 내전은 이렇게 미국의 공작과 접점을 만든다. 미국이 키운 아프간 용병들이 다시 돌아와 이집트 알제리 등등 자기네 나라에서 테러공격을 저질렀다(알제리 인질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모크타르 벨모크타르가 딱 이런 경로로 자라난 인물이다). 그 나라 군부가 힘겹게 이를 억누르는 사이, 미국은 다시 아프간 전쟁을 일으켜 극단주의 세력에 오히려 명분을 만들어주고 결집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식민 모국'과 '개입'

인도적 개입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것은 돈 있고 잘 사는 나라의 의무다. 극단적인 상황(이를테면 최근의 리비아나 시리아 같은)에서는 군사개입 즉 군사공격이라는 형태까지도 나올수밖에 없다. 


하지만 인도적 개입이 아프리카같은 곳에선 '옛 식민 모국의 귀환'이 되곤 한다. 이것이 개입의 불편한 진실이다. 시에라리온 내전 때에 영국이 그나마 효과적으로 대응(그 끔찍한 사태를 생각하면 과연 효과적이란 말을 쓸수 있는지 모르겠지만)했다 하는데 영국은 그 나라를 지배했었다. 아프리카에서 남의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힘이 있는 유일한 국가인 나이지리아(그러나 이 나라는 스스로 지역패권국가를 꿈꾸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고, 이 나라가 주변국들에 보내는 평화유지군은 성폭행과 폭력과 부패의 상징이다)를 제외하면 언제나 개입은 유럽의 옛 식민 통치국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옛 지배국가를 가리키는 '식민 모국'이란 말은 참 모욕적인 용어다. 누군가 일본을 우리의 '모국'이라 표현했다면 우린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제3세계를 억누르고 착취하면서 어린이 취급하고 점령통치국과 피지배국의 관계를 부모자식 관계인 양 표현하는 것은 인종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논법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선 유독 이런 관계가 지금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옛 식민지에 대한 유럽 '모국'의 개입은 과거의 빚에 대한 응당한 책무로까지 여겨진다. 르완다가 초토화됐을 때 세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벨기에를 욕했다. 코트디부아르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여전히 현지에 주둔하고 있으면서 나 몰라라 하는 프랑스군의 행태에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프랑스군이 왜 주둔하느냐 따져 묻는 게 아니라, 왜 코트디부아르 상황에 개입하지 않느냐는 비난이었다.


한국 문제에 일본이 나서지 않는다고 욕하는 사람은 없으며, 베트남에서 무슨일이 벌어진들 지금까지 프랑스 탓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남미에 어떤 변고가 와도 스페인 군이 나서지는 않는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선 식민 통치국의 존재가 여전히 강력하다. 서아프리카 프랑코폰(프랑스어권) 국가들은 이미 프랑스에선 사라진 화폐 '프랑'을 쓴다. 리비아의 옛 지도부는 이탈리아와 친한 사이였다. 


돈이 없으면 우선 식민 통치국에 손 벌려야 하고, 수탈이 됐든 투자가 됐든 경제적으로도 식민 통치국에 결합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옛 식민 통치국 출신들이 대거 거주하는 커뮤니티가 있고, 옛 식민 통치국의 언어가 공식 언어이자 상층부 권력집단의 언어로 기능한다. 왜 아프리카에선 그러냐고? 이건 너무나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이니 '식민지가 되기 전에 강력한 국가체제를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만 일단 해 두자. 어쨌든 아프리카 국가들에겐 탈식민은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정이다. 


프랑스군이 말리에 갔던 것 역시 옛 어머니 나라의 의무를 앞세운 개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대한 프랑스의 태도는 항상 이중적이었다. 프랑스가 미국과 친할 때엔 미국이 맘대로 드나들도록 내버려둔다. 프랑스의 힘을 좀 보여주자 할 때엔 꼭 아프리카 프랑코폰 국가들을 규합하려 하는, 되도 않는 시늉을 한다. 프랑스에 10여년만에 들어선 좌파 정부도 그걸 하고 싶었나보다. 아, 물론 이렇게 개입하는 '식민 모국'들의 의도가 항상 악의적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실상 그런 개입을 전혀 원치 않는데도 '과거의 죄' 때문에 등 떼밀려 군대를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는 개입을 했고, 말리의 상황을 진정시킬 힘은 없어 보인다. 알제리는 인질극 강경진압으로 득이 됐으면 됐지 아무 손해도 보지 않을 것이다. 이슬람 테러리즘에 강력 대응했다 해서 미국과 유럽이 알제리를 욕하거나 미워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테니까. 북아프리카 아랍권 극단주의자들은 더욱더 남쪽으로, 사하라 이남 블랙아프리카로 계속 침투해 갈 것이다. 말리와 모리타니, 수단 등 사하라 남쪽 이슬람 국가들에선 끔찍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 


아마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가장 무시무시한 악몽일 법한 일은 나이지리아가 아수라장이 되는 것일 게다. 나이지리아는 그 자체의 작동메카니즘을 가진 대국이고 이미 잠재력을 넘어 힘을 가진 나라가 되어가고 있으나 연방 안에서 각 주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고 특히 남북 갈등과 종족갈등, 자원분배 갈등이 몹시 심하다. 여기에 이슬람-기독교 종교갈등이 기름을 붓고 있다. 프랑스가 말리에 파병할 때에 아프리카의 옛 피지배국들이 은근 환영했던 것은,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어떤 나라도(지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파병 운운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뭐 이 나라도;;) 말리 문제, 혹은 확장시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관련된 문제'를 놓고 국경 너머의 일까지 참견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지정학이나 그 나라 안의 권력관계 따위가 아니다. 당장 말리에선 정부군도 주민들을 죽이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이슬람 극단세력과 연결돼 있다는 이유로 처형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방에선 이슬람 세력을 욕하지만, 그들을 뒤에 업은 현지의 권위주의 정권들도 잔인함에서는 늘 더했으면 더했지 덜한 법이 없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이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의 삶, 특히 가장 취약한 이들(주로 여성과 어린이들)의 삶이 이미 악몽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아프간에 민주정부가 들어섰다고 조지 W 부시가 주장했지만 그 나라 지금은 탈레반 시절보다 더 가혹하게 돼버렸다. 그나마 관심 쏠렸던 아프간이 그 모양일진대, 아프리카 사막 변경에 있는 말리는 또 어떻게 두번 세번 버려질까. 이슬람이고 프랑스고 나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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