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우리가 모르는 '나리타'

딸기21 2012. 12. 2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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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자 하나가 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들여다본다. 쇠울타리 쪽에서 남자가 큰 소리로 부른다. "여기 좀 봐, 비행기가 이렇게 가까이서 보여!" 하지만 여자는 듣지 못한다. 귀에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음악이라도 듣는 걸까? 알 수 없지만, 바깥의 소리가 듣기 싫어서인 것은 분명하다. "시끄러워서." 

 

여자는 또 말한다. "보고 싶지 않아, 조용한 시골에서 쉬고 싶어 왔는데 저 비행기 소리라니." 여기는 나리타, 일본 관동 지방의 관문인 나리타 공항 바로 옆이다. 옆이라고 하기엔 정말 너무 옆이다. 밭 울타리 뒤로 중국 남방항공, 전일공수(ANA), KLM의 비행기가 선명한 마크를 달고 지나다닌다. 활주로 곁에서 그들은 농사를 짓고 있는 걸까?

 

다큐멘터리같기도 하고 단편영화같기도 한 다큐필름의 제목은 <나리타 필드 트립>. 독일의 다큐 감독인 니나 피셔 & 마로안 엘 사니(Nina FISCHER & Maroan el SANI)가 2010년에 만든 작품이다. 

 

 

29분35초 동안 흘러가는 이 다큐에서 화면에 줄곧 등장하는 두 사람은 토미라는 여자와 츠쿤(君)이라는 남자다. 아마도 연인 사이인 둘은 도쿄에서 멀지 않은 나리타로 짧은 여행을 왔나보다. 편의상 농촌체험 여행이라고 해두자. 어차피 그런 세세한 사정은 나오지 않으니까 상상할 따름이다. 

 

그들을 기다린 것은 비행기 굉음에 종일 시달리는 그로테스크한 시골이었다. 한쪽엔 활주로와 유도로, 눈 앞엔 여객 터미널, 그 사이에 집들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밭이 있고 농사를 짓는다. 공항 측에선 새 활주로를 더 만들겠다 하고, 주민들은 반대하며 진압경찰들 사이로 데모 행진을 한다. 토미와 츠쿤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달린다. 그런데 양 옆은 온통 철판으로 된 가벽들이다. 활주로 반대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공항 측에서 여기저기를 막아버려서 시골길은 시야가 사방으로 막힌 미로로 변질되고 만다. 

 

그것이 1970년대 나리타 공항 개발이 시작된 이래로 이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풍경이다. 비행기가 나리타 아닌 다른 곳 사람들을 일본 안팎으로 실어나르는 사이, 흥분감과 기대에 부푼 여행객들 혹은 글로벌 비즈니스맨들이 도쿄와 세계를 오가는 사이, 그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 곁에선 등 떼밀려 떠나가야 했던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다. "많이, 아니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죽고 피를 흘렸던 거잖아." 토미가 말한다. 

 

나리타 공항으로 이미 수차례 뜨고내렸던 나같은 여행객은 전혀 몰랐던 나리타의 모습.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츠쿤과 토미는 동네 사람들이 '투쟁 모의'를 하는 곳에 동석하게 된다. 동네 청년에게 츠쿤이 묻는다. "나리타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알려야지요. 하지만 듣고도 듣지 않은 척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들은 우리의 적이라 생각해요." 그들의 사정을 모르던 나같은 여행객은 무의식 중에 그들의 삶터를 빼앗는 데에 보탬을 준 꼴이고, 그들의 적이 되고 있는 셈이다.

 

 

나리타에 이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하기사, 드넓은 땅에 새로운 무언가가 들어서기 전에, 사막도 아니고 황무지도 아닌 우리나라나 일본 같은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을 리 없다. 필시 누군가의 삶이 뿌리박혀 있는 곳일 터다. 그런 '개발'의 현장엔 반드시 뿌리를 뽑혀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빼앗기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고, 실 한오라기만큼의 희망이라도 붙잡고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오키나와도 있고, 홋카이도도 있고, 대추리도 있고, 강정도 있고. 나리타의 속사정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서도 늘 보아왔던 모습이니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필름을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도쿄 에비스의 가든플레이스에 도쿄도 사진미술관이 있는데, 늘 좋은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영화도 상영한다. 며칠 전 포스터를 보니 이번 기획전 제목이 <기록은 가능한가(記録は可能か)>였다. 어쩐지 마음에 끌려 오늘 오후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사진보다는 영상 위주로 된 전시회였고, 거기서 본 작품이 저 다큐였다. 

 

이 외에도 니나 피셔 & 엘 사니가 제작한 다른 작품들도 있었다. '군칸지마(軍艦島)'로 알려진 나가사키의 인공 섬 하시마를 두 화면으로 쪼개어 담은 영상. 이 섬은 과거 광물을 캐내던 곳이었는데 군함 모양이라 군칸지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0년대 이래로는 사람들이 모두 떠나 폐허가 되었는데 <배틀 로얄>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요즘 아이들에겐 새로운 '성지'처럼 되어버린 희한한 곳이다. 여고생들이 이리저리 움직여 여러 글자를 만드는 재미난 장면과 그 표정들이 나란히 상영되는데, 이 필름은 첫 장면을 놓쳐 얼핏 보고 지나갔다.

 

2011.3.11 동일본 대지진을 테마로 한 영상도 있었는데 이미 <나리타 필드 트립>에 30분 이상을 소모한 지라 못 보고 나왔다. 니나 피셔 & 엘 사니 외에도 일본 작가들이나 노동단체에서 일본의 전후 모습을 담은 슬라이드쇼 방식의 다큐필름과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고, 작고 낡은 소니 브라운관에선 미나마타 병 피해자들의 하루하루를 담은 화면이 지직거리며 돌아갔다. 

 

<나리타 필드 트립>은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장소에 뜻밖의 이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알려준다. 모르고 지나가면 얼마든지 지나칠 수 있는, 하지만 알고 나면 가슴 한켠이 뜨끈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세상엔 너무 많다. 2년여 전 중앙아시아 키르기스스탄의 오슈라는 도시에서 여러 민족 간 싸움이 붙었고 학살이 벌어졌다. 어디 먼 나라 못들어본 도시 이야기다 생각하며 지나칠 수도 있지만 여기가 고대로부터 실크로드가 이어지고 갈라지는 옛도시였다는 역사를 알고 나면 오늘날의 분쟁이 새삼 기이하면서 슬프게 느껴지고, 오늘의 한 순간이 역사의 한 장면으로 새겨지는 느낌을 받는다. 

 

요즘 읽고 있는 존 필저의 <프리덤 넥스트 타임 Freedom Next Time>에는 미군 기지가 되어버린 인도양의 영국령 섬 디에고 가르시아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인들의 노예로 끌려와 이 섬의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다가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지 몇 세대, 영어 한 마디 못하지만 영국 국민으로서 평화로운 농민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 곳에 있었다. 그들은 영국이 1970년대 섬을 미군 기지로 내주기로 결정하면서 한순간에 버림받고 아프리카의 모리셔스로 내동댕이쳐진다. 

 

아마도 한번도 국제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었을 이 디에고 가르시아라는 섬은 2000년대 들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군 중부사령부의 전투기들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폭격하기 위해 이륙한 곳이 이 섬의 기지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사를 읽고 또 때론 기사를 쓰면서도 나는 '미군 기지가 있는 인도양의 영국령 섬 디에고 가르시아'라는 곳의 역사를 몰랐다. 존 필저의 책을 통해 두번 세번 버려지고 짓밟힌 '검은 영국인'들의 피눈물을 보게 되기 전까지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여기서도 통한다. 한꺼풀만 벗기면 누군가가 알리고 싶어하는, 또 누군가는 덮어버리고 싶어하는 진실들이 고개를 내민다. 

 


츠쿤은 풀밭 위에서 '43년이나 계속된' 나리타 사람들의 투쟁을 담은 사진집을 보고 있다. 토미는 늦은 밤 현관 앞에 나와 앉아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하늘과 망루를 그린다. '앎'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기록이다. 기록은 가능한가. 오늘의 전시회는 그런 질문을 던진다. 

 

나리타 공항이 문 열기 전, 1970년대부터 시작된 나리타 사람들의 싸움은 지금은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잊혀졌다고 한다. 나같은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토미와 츠쿤같은 일본의 젊은이들 중엔 아마도 나리타의 뒷모습을 아는 이들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나리타의 숨겨진 모습을 전해주는 것은 낯선 이방인의 손을 빌려 제작된 이 다큐라는 기록이다. 이 기록이 있기 전에는, 독일의 다큐작가들에게 모티브가 되어줬을 투사들의 또다른 기록들이 있었을 것이고.

 

한 시대는 고사하고, 한 장소를, 한 시기를 사실 혹은 진실에 100% 가깝게 기록하는 것은 가능한가. 거창하게 말하면 역사의, 사회의 한 단면이라도 기록하는 것은 가능한가. 전시를 기획한 사람들은 흔들리는 그림자를 보며 형상을 구할 수 있는지 선문답을 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분명한 것은, 기록이 진실에 몇 %나 가까울지는 몰라도 어쨌든 기록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어렴풋이라도 새겨넣는 그런 기록이 없으면 진실을 가리기도 쉽고 역사를 조작하기도 쉽다. 가리고 덮는 사회, 역사 아닌 역사가 얼마나 많았던가. 우린 그걸 매일 보고 있지 않은가. 정치적인 사건의 고비고비마다 역사와 그 기록을 놓고 진위를 따져야 하지 않는가. 좀더 치열하게 기록했어야 했을 과거와 현재의 조각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끄럽지만 나는 '기록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그걸로 먹고 사는데, 과연 나는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나리타 사람들은 '절대 반대' 티켓을 들고 행진을 한다. "나리타 공항이 문을 닫을 때까지 싸우겠다"면서. 그들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아마도 운동권 학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메가폰을 잡고 말한다. "일본의 경제가 침체되면서 항공화물 수송량은 점점 줄고 있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면서 여행객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 무엇을 실어나르려고 공항을 확대한다는 것입니까?" 

 

다큐가 끝나갈 무렵, 토미와 츠쿤의 고민은 그들 자신에게로 향한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여기 사람들과 좀더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이삼 주만 있으면 토마토가 익을 거라고도 하고." 나리타는 그냥 남겨둔 채 나그네답게 떠날 것인가, 나리타 사람들과 함께 남을 것인가. 앞으로의 나리타는 누가 기록하게 될까. 

 

물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저 다큐에 나오지 않는다. 단답형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여러가지 물음이 비행기 소리와 함께 내 머리 속으로도 쏟아져 들어왔다. 앞으로 나리타 공항은 가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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