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여행을 떠나다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

딸기21 2006. 1. 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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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그 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해서 상상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역사와 문화, '삶'이 새겨져 있지 않은 땅이 어디 있겠냐마는. 하지만 상상한다는 것은 참 즐거운 동시에 힘든 일이기도 하다. 어떤 때에는 스쳐가는 한 장면 속에서 퍼뜩 머리 속에 무언가가 밀려들어오면서 '이 사람들, 이러저러 했나보다' 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 상상하기 위해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난 독일에 대해서 잘 모르고, 독일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은 나의 지나온 35년을 아무리 뒤져봐도 정녕 한번도 없다. 그러니 이 나라에 대해서 '애정' 따위를 갖고 있었을 리도 없고, 이 사람들에 대해 상상해보려 해봤자 상상 같은 것이 도대체 되지를 않았다. 그러니 나의 '독일 여행'은 꽝이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겠다. 

당초의 목적이 내년 월드컵이 열리는 곳들을 탐방한다, 뭐 그런 것에 있었다보니-- 그렇다면 목적은 달성한 것인가? 어쨌든 이 경기장 저 경기장, 본의 아니게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하듯이 들러보긴 했다. 하지만 축구의 생명은 경기에 있다! 우스꽝스러운 말이지만, 경기가 열리지 않고 있는 썰렁한 경기장은, 그 썰렁함에서 '연극이 끝난 후'의 텅 빈 소극장 혹은 불 들어온 영화관과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많이 가보진 못했지만 경기가 열리기 직전 축구장의 환호성과 웅성거림, 그 환상적인 두근거림을 경험해본 사람에게 텅 빈 축구장은 썰렁함 이상의 서글픔 같은 것을 안겨준다. 

그래도 소득이라면 뮌헨의 알리안츠 아레나를 방문한 일. 내 살아생전에 이 곳에 다시 가볼 일이 있으려나? 독일에 가기 바로 며칠 전에 영화 '레알'을 봤었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누캄프, 올드 트래포드, 알리안츠 아레나. 이런 경기장들을 찾아다니며 '정말로' 경기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의 (로얄석은 아니더라도 경기가 꽤 잘 보이는) 관중석에 앉아 레알과 유벤, 혹은 레알과 맨유 정도의 챔스 결승전을 관람할 수 있다면! 혹은 바르셀로나와의 더비라도 좋다! 

어쨌든 알리안츠를 방문한 것만해도 감지덕지이긴 하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지난 7일, 2006년 독일 올림픽 개막전이 열리는 남부 뮌헨의 주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를 미리 찾았다. 아직 월드컵이 열리기까지는 반년 가까이 남았지만, 독특한 외양으로 독일인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알리안츠 아레나는 이미 축구팬들의 `성지(聖地)'가 되어 있었다.

이 경기장은 뮌헨을 연고로 한 두 프로팀 `바이에른 뮌헨'과 `TSV1860' 두 팀의 홈구장으로, 이 두 팀과 알리안츠 생명이 공동소유하고 있다. 두 팀은 뮌헨 올림픽 때 쓰였던 올림피아 슈타디온을 쓰다가 월드컵을 앞두고 지난 5월 알리안츠 아레나가 개장하면서 이 곳으로 옮겼다. 새 경기장이 문을 연지는 반년 남짓 지났지만, 유서 깊은 도시 뮌헨에서 이 곳은 어느새 새로운 관광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개장 이래 지금까지 경기장 투어에 온 사람이 25만명이 넘는다고 구장 측은 설명했
다.


어스름녘에 바라본 알리안츠 아레나. 계절이 계절인지라 꽤 추웠고, 밤에는 진눈깨비까지.

축구장은 단순한 운동장이 아니라 하나의 산업 시설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알리안츠 아레나였다. 우리나라처럼 월드컵 경기장에 할인점과 찜질방까지 몰아넣지 않아도, 명문 클럽 바이에른뮌헨의 인기에 힘입어 이 경기장은 자체적으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관광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빨간 불, 파란 불, 하얀 불이 들어온 모습.



8유로를 내고 경기장 투어에 들어갔다. 추운 날씨임에도 15~20명씩 그룹을 지어 차례로 투어를 기다리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독일은 물론, 이탈리아 등지에서 온 관광객과 함께 경기장을 돌아봤다. 
독일이 세계에 월드컵의 상징으로 새롭게 내세운 회심의 역작답게, 6만6000석 규모의 경기장은 위용이 대단했다. 월드컵을 반년 남짓 앞두고 구장측은 잔디가 덜 자란 부분에 불을 밝혀 잔디가 빨리 자라게 하는 시설을 시험하고 있었다. 구장측은 내년 봄이 되면 월드컵에 맞춰 잔디를 모두 다시 깔아 최상의 상태를 선보일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라운드 외곽 중앙에는 바닥이 열리면서 선수들이 등장할 수 있게 해놨다. 안내원은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들이 등장하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설명했다. 




바이에른뮌헨 선수들이 쓰는 연습장과 운동실, 의무실 등 내부 시설을 돌아보는 동안 해가 기울었다. 오후 5시가 되자 알리안츠 아레나의 외벽에 불이 켜졌다. 눈에 띄는 타이어 모양의 외벽은 반투명 강화플라스틱으로 제작돼 파란색, 빨간색, 흰색의 불이 교차해 들어오게 돼 있다. 바이에른뮌헨의 경기 때는 파란색, TSV1860의 경기 때는 빨간색이 들어오고 두 팀이 맞붙을 때에는 두 가지 색깔이 나뉘어 켜진다. 


운전자들을 현혹시킬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조명은 법규로 엄격히 규제된다. 외벽을 구성하는 수만 개의 플라스틱 조각에 5초 안에 모두 불이 들어와야 하며, 색깔의 변화는 30분 이상의 간격을 두고 이뤄져야만 한다. 화려한 외양과 달리 경기장 내부는 온통 회색이었다. 안내원은 "이 곳에서는 모든 이들이 오직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화려한 색깔을 피했다"고 설명했다. 


이 경기장의 건설에는 3억4000만유로(약 4150억원)가 소요됐다. TSV뮌헨의 구단주가 시공사인 알파인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곡절을 겪은 뒤 지난 5월30일 공식 개장했으며 6월1일 바이에른뮌헨과 독일 대표팀의 친선경기로 알리안츠 아레나의 역사가 시작됐다. 


구장 주변의 인프라는 독일연방 16개 주 가운데 가장 부유한 바이에른 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재정비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도심에서 경기장까지의 거리는 자동차로 30분 정도. 주정부는 뮌헨을 둘러싼 A99 순환도로를 재포장하고 도심에서 경기장으로 이어지는 지하철 6호선 연장 공사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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