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바그다드와 카이로

딸기21 2005. 1. 15.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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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집트가 싫지는 않았다. 이집트가 어떤 나라인데 그 곳을 싫어하리. 유적이 너무 좋고, 그 압도적인 유적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시간의 무게도 너무 좋고, 나일강도 좋고, 제대로 구경 못하고 돌아온 사막도 너무 좋고, 그곳의 날씨도 너무 좋다. (사실 카이로 쪽은 그렇게 덥지는 않았다. 40도까지는 안 올라가는데, 건조하니까 참고 견딜만 했다. 나는 더위에 굉장히 강한...이라기보다는 더위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기후 꽤 맘에 들었다. 나중에 룩소르/아스완 갔을 때에는 좀 힘들긴 했다. 45도는 아무래도 무리...)

이집트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인종은 경찰이다. 경찰이 진짜진짜 많다. 문화재가 많기 때문에, 문화재 담당 경찰(피라밋 앞 흰 옷입은 인간들)이 따로 있기도 하고, 워낙에 경찰국가인 탓도 있다. 경찰이 정말 느무느무 많은데, 관광객의 편의를 봐주기 보다는 돈을 뜯는 역할을 한다. 운전기사/가이드에게 푼돈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욕하려니 찜찜하긴 하다. 울나라에서도 불과 몇년 전까진 이랬으니까)
앞서 말했듯이 피라밋 앞에서는 관광객들이 자기네 옆에서 사진 찍으면 돈을 받는다. 말도 안 되는 경찰... 그래서 이집트가 싫다는 거다. 이집트에서는 이집트 사람들만 빼면 딱 좋은데 말이지...

사실 저 놈들, 그저 조상 잘 둔 댓가로 먹고 사는 넘들 아닌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게 자기네 조상이기나 하냔 말이다. 고대 이집트를 만들었던 훌륭한 인간들은 다 어디가고... ㅠ.ㅠ (그들은 이미 기원전 3세기 알렉산더한테 먹힌 이후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피라밋이 만들어진 것이 3~6왕조(피라밋 시대) 시절이니깐 정말 오랜 옛날이다. 수천년전에 이집트인들은 피라밋을 만들었다. 그런데 21세기의 이집트인들은 그 개판 꼬락서니 집을 만들고 있다. 한심하다. (또하나 이렇게 한심한 것이 그리스민족이란 얘길 들었지만 가보지 않았으니 확인은 못했다)

바가지도 말이지... 500원짜리를 관광객한테 700원 받거나 1000원 받으면 바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500원 짜리를 관광객한테 어케 5000원을 받냐? 바가지도 정도껏 해야지, 이건 순 도둑넘들이다.
기차표가 전산화되어있질 않기 때문에, 언놈한테 걸리느냐에 따라 구하고 못 구하고가 결정된다. 우리는 연합뉴스 선배랑 이집트인 운전기사가 대신 구해줬기 때문에 상관 없었지만, 룩소 올라가는 기차표 구해주느라고 선배가 쌩쑈를 했던 모양이다. 

자동차하고는 참... 택시들 쥑인다. 젤 젊은 차들이 한 20년 정도 된 것 같고, 기본 30년은 된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나는 바그다드에도 가봤다. 바그다드는 어떤가? 바그다드는 물론 카이로(아랍어로는 엘 까히라)보다 역사의 무게가 더 무거운 곳이고, 거기다가 독재의 압박감까지 감당 못할 정도로 느껴졌었다. (아마 지금은 아수라장이겠지만). 자동차만 놓고 보자면, 바그다드에도 택시들 참으로 가관이었다. 의자가 벤치처럼 된 것도 타봤고, 후시경 없는 것도 타봤다. 그런데 그때 나는 불만이 없었다. 왜? 어째서 바그다드는 용서가 되는데 카이로는 용서가 안 되는 것일까?

첫째, 후줄근한 이유가 다르다
바그다드는 10년간의 경제 제재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상태였다. 옛날 오일붐 때 지어놓은 거창한 건물들, 잘만 다듬었으면 뽀다구 깨나 났을 터인데, 유지보수가 안되니깐 지저분해졌다. 10년간의 경제 제재는, 울나라같은 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북한 사람들은 직접 체험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바그다드에 가면 '바그다드는 역시 바그다드'라는 생각이 든다. 기분이 좀 좋다. 난 바그다드가 좋았다.
반면 카이로는... 카이로가 드럽고 가난스러워 보이는 것은 부패, 부의 불균형, 그지 근성 때문이다.

둘째, 사람들이 다르다. 
이라크 사람들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우리가 역사가 읎냐 자원이 읎냐 땅이 좁냐, 우리가 이렇게 살 사람들이 아닌데 미국넘들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우리가 석유 갖고 있으니깐 저넘들이 우리를 괴롭히는데, 우리는 이집트나 요르단 같은 거지들하고는 다르다...
오랫동안 폐쇄된 사회주의적 경제에 익숙해있던 사람들이어서 순박하고, 셈 빠르지가 못했다. 지금은 바뀌었을 거다. 미국이 몽땅 개판으로 만들고 있을테니깐(부시가 내걸었던 것이 중동의 민주화/자본주의화였으니 이라크도 끝장 났다).
이집트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관광산업에 매진해온 결과...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돈으로 연명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혹은 미국의 원조 찌꺼기로 먹고 산다. 정확히 말하면 '찌꺼기'도 아니다. 이집트 국가 재정의 30% 가량이 미국 원조금이다. 그러면서도 거기 상류층들은 자기네가 유럽인들이라고 착각하고 산다는 얘길 들었다. 

거리의 택시가 똑같이 후줄근하지만 바그다드랑 카이로는 이유가 다르고,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가 더더욱 한심해보였던 것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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