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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따프롬, 나무에 덮인 사원

딸기21 2009. 9. 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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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에서 온 여행객들이 캄보디아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앙코르와트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8~12세기 캄보디아 중부 앙코르에 거대한 사원들을 남긴 앙코르 왕국은 사라졌지만 신비스런 유적들은 남아 있다. 관광도시 시엠리아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앙코르의 유적지들은 규모가 방대해서 여러 날을 봐야 한다.

앙코르 유적의 핵심은 가장 유명하고 규모도 큰 앙코르 와트(‘사원 도시’라는 뜻)다. 하지만 이번 ‘착한여행-메콩강 시리즈’를 함께 한 여행단에게는 앙코르 와트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더 깊은 인상을 남긴 곳이 있었다. 타프롬 사원. 앙코르의 숱한 유적들 중에서 대표 격인 와트처럼 보존 상태가 좋지도 않고 화려한 조각들이 손님을 반기는 것도, 크기가 큰 것도 아닌 이 사원은 앙코르 관광코스 중 빠지지 않는다. 이유는 역설적이지만 이 곳이 너무나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나무 뿌리로 지붕을 얹은 듯한 타프롬 사원.

  

나무에 덮인 사원

12세기 이후 800여년을 밀림에 버려졌던 타프롬은 사람이 아닌 나무들의 사원으로 변했다. 사원의 주인은 나무였다. 반얀트리라 흔히 불리는 벵갈보리수의 거대한 뿌리들이 사원을 감싸고 이끼 낀 돌 사이를 파고 들었다. 나무 뿌리 때문에 사원이 갈라지고 부서졌지만 동시에 그 뿌리들 때문에 그나마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형태나마 유지하고 있다. 다섯 개의 첨탑이 우뚝 솟은 와트의 전경과, 나무 뿌리에 잡아먹히다시피 한 타프롬의 처참한 모습은 앙코르 유적을 담은 관광엽서에서 빠지지 않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앨런 와이즈먼은 저서 <인간없는 세상>에서 “인간이 사라지면 자연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놀라운 회복력을 보일 것”이라 예측한 바 있다.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타프롬의 거대한 나무들이다.


실제로 가서 본 사원의 모습은 여행안내 책자에서 본 것들보다 훨씬 충격적이었다. 사원의 4개 출입문 중에 서쪽 문만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나무에 허물어져 있었다. 나무와 사원 건물이 모두 뒤섞여 한 몸의 괴물처럼 변해 있었다. 자를 수도, 놓아둘 수도 없는 나무들은 이제는 사원의 본질이 되어버렸다. 관광객들은 모두 사원을 깔고앉은 나무 뿌리 밑에서 셔터를 눌렀다. 나무의 잔뿌리들 사이에 간신히 구멍만 남아 있는 문, 무너져내린 부조들 사이사이에 위험 표지판과 출입금지 팻말들이 놓여 있었다. 



나무 뿌리에 덮여 그나마 선 채로 남아있는 사원 벽 일부분.



이번 앙코르 방문에서 여행단은 타프롬의 무너진 모습을 구경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유적 복원을 맡고 있는 총책임자로부터 복원 과정과 현황, 타프롬 유적의 ‘비포 앤드 애프터’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타프롬 복원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은 인도-캄보디아 협력프로그램에 따라 파견된 인도 기술진이었다. 총책임을 맡은 인도 공학기술자 수드 박사를 비롯한 인도인 4명이 캄보디아인 복원 기술자 175명과 함께 힘겹게 유적을 되살리고 있다.


앙코르 유적은 라테라이트라고 부르는 홍토(紅土)와 사암으로 이뤄져 있다. 사암은 습기를 머금고 있는 동안에는 괜찮지만 물기가 빠져 건조해지면 약해진다. 재질이 무른 홍토와 사암으로 만들어진 탓에 유적의 훼손 정도가 중·근동의 고대 유적들에 비해 훨씬 심하다. 특히 앙코르는 14세기 캄보디아 왕국의 수도가 프놈펜 지역으로 옮겨간 뒤 사실상 방치됐던 지역이어서 사원들 상당수가 무너져 있다.

타프롬 복원 10년 계획 


타프롬 복원팀은 사원을 5개 지구 9개 구역으로 나눠 단계별로 작업을 진행중이다. 첫 단계는 구조 조사다. 복원팀은 유적의 60%가 무너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두번째 단계는 구조분석 및 임시봉합. 무너져 떨어진 돌조각들을 모두 사원 옆 작업장에 가져와 컴퓨터에 입력, 복원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프로그램 상에서 복원도를 만들고, 이에 따라 조각들을 잇는다. 기둥의 중심부에는 철심을 넣고 시멘트로 조각 하나하나를 붙인다. 여행단이 들렀을 때에도 엔지니어들이 부지런히 무너진 돌더미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수드 박사는 “조립장에서 부서진 돌들을 90% 정도 짜맞춘 뒤 사원에 들고 와 원래 모습대로 조립하면 95% 작업이 끝난 것”이라며 “나머지 5%는 조립 뒤 세밀 작업으로 끝마친다”고 설명했다. 복원팀은 현장에 습도·풍향·기온 등 기본적인 기후 조건을 측정할 수 있도록 자동 기상측정장치를 설치했다. 또 무선 균열측정기와 경도측정기도 부착해 유적에 금이 가는 정도와 기울어지는 정도를 계량화하고 있다. 



여행단이 수드 박사(맨 왼쪽)에게서 복원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복원이 진행되고 있는 부분. 점선 왼쪽처럼 쌓여 있던 돌더미를 정리, 복원해 오른쪽 부분처럼 형태를 갖춘 사원으로 재건하는 것이다.


복원팀은 2004년부터 10개년 계획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복원으로 타프롬의 원래 모습을 완전히 되살리기는 힘들다는 힘들다는 것이다. 현재 복원이 진행중인 9개 부분은 사원의 중심 구조물이 아닌 외곽 부분이다. 나무 뿌리에 깔린 사원의 중심부에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수드 박사는 지금 진행중인 부분 외에 5개 지구를 추가로 복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캄보디아 정부와 협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관광객들에 개방을 해놓고 복원을 해야하는 것이라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는 모든 기술을 캄보디아에 이전해, 캄보디아 기술진이 스스로 복원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수드 박사는 “10년짜리 프로젝트에 인도 정부가 지원한 예산은 500만달러”라며 “사실 유적 복원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 일은 아닌 만큼 여러 나라가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1986-88년에도 캄보디아에 파견돼 유적 복구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인도 외에 프랑스, 일본이 앙코르 유적 복원을 지원하고 있다. 


중학생 우성준군은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하면 유물을 모두 갖게 되는 것이냐”, “이런 유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알고 발굴을 시작하느냐”며 고고학 발굴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관광객 이승희씨는 “복원과정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유적 관광 못잖게 흥미롭고 소중한 기회였다”며 “흔한 패키지 관광에서는 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환경 보호, 캄보디아 관광의 또다른 숙제 


앙코르 유적들을 둘러본 여행단은 시엠리아프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끄발스펀 부근의 생물종다양성 보호센터(ACCB)를 방문했다. 열대몬순 기후인 캄보디아는 사시사철 여름이다. 열대성 기후인 나라들이 다 그렇듯 이 나라도 한때는 생물 종다양성의 보고였다. 하지만 급격한 개발과 관광붐 때문에 환경 파괴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ACCB는 희귀동물을 보호하려는 삼 베스나라는 환경운동가의 노력에서 시작됐다. 베스나가 안타깝게도 99년 말라리아에 걸려 숨지자 그를 돕던 독일 환경단체들이 기금을 모아 2003년 ACCB를 만들었다. 지금은 독일 뮌스터 동물원 동물연구팀과 독일 동물보호학회와 함께 캄보디아의 멸종위기 야생동물 보호활동을 펼치고 있다. 


여행단이 ACCB에서 멸종위기종인 보넷긴팔원숭이를 보고 있다.


ACCB에서 가장 먼저 일행을 맞은 것은 독수리의 일종인 관수리와 뿔매였다. 날 수 없게 된 새들을 데려다 부상을 치료하거나, 어려서부터 인간의 손에 자란 새에게 사냥기술을 가르쳐 자연으로 내보낸다. 한쪽 옆에서는 보넷긴팔원숭이가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몇 ㎞ 밖에서도 들리는 특이한 노래소리로 유명한 이 원숭이는 암컷과 수컷의 털색이 은회색과 검은색으로 다르다. 태국, 캄보디아의 열대우림에 서식하지만 밀림이 사라지면서 멸종위기를 맞았다. 국제보호동물임에도 프놈펜의 시장 등지에서는 관상용이나 애완용으로 팔리고 있다. ACCB 스태프인 폭섬은 “호랑이뼈처럼 이 원숭이 뼈를 약재로 사고팔기도 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전역에서 야생동물 남획과 서식지 파괴가 벌어지고 있다. 개발과 환경보전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캄보디아가 안고 있는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고, 관광을 하면서 현지 환경을 보호하고 ‘탄소 발자국’(여행자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을 줄이는 것은 이 나라를 찾는 여행객들이 풀어야 할 숙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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