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호주의 '도둑맞은 아이들'과 케빈 러드 총리의 사과

딸기21 2012. 4. 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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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우파 보수당이 정권을 잡고 있던 호주... 그러다가 2007년에 젊은 정치인 케빈 러드 (Kevin Rudd. 1957-)가 노동당을 이끌고 총선에서 승리, 정권교체를 이뤘지요. 그 뒤에 여러모로 신선한 뉴스들이 많이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중의 하나는 2008년 2월 13일 러드가 "집권 전에 했던 약속을 실천에 옮기겠다"고 발표했던 일입니다.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s)’라 불리는 호주 원주민들에 대한 사과가 그 약속이었습니다.

‘도둑맞은 세대’는 원주민 피가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을 잃고 강제 위탁 속에 자라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호주 정부는 원주민들을 백인 문화 속에서 키워야 한다며 이들을 가족과 부족사회로부터 억지로 떼어내 위탁시설이나 백인 위탁가정에 맡겼습니다. 

백인 정부가 격리시킨 것은 토착민인 애버리지니(Aborigine) 자녀들과 토레스 해협 원주민(Torres Strait Islanders) 자녀들이었습니다. 애버리지는 호주 본토에 살고 있던 원주민인데, 20세기 이전까지 진행된 백인 식민정부의 절멸정책과 이후로 지속된 ‘백인문화 동화정책’으로 숫자가 크게 줄었습니다. 지금은 호주 전체 인구의 2%도 채 못 되는 46만 명에 그치고 있습니다. 

애버리지니는 크게 태즈메이니안 애버리지니와 빅토리안 애버리지니로 나뉩니다만 이만 생략하고.... 토레스 해협 원주민은 호주 대륙과 뉴기니섬 사이의 해협에 있는 섬 거주민들을 말하는데, 애버리지니와는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구별해 부릅니다.


애버리지니들이 신성시하는 울루루(Uluru)에 있는 벽화.


영국과 호주 정부는 1970년대까지 100년 넘게 애버리지니와 토레스 해협 원주민 아이들을 전통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조직적으로 떼어놓았습니다. 이른바 ‘문명화 정책’이라는 미명 하에 수천 명의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떼어냈고, 부모들은 영문도 모른 채 아이들과 생이별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한 민족의 뿌리를 잘라내는 무자비한 제국주의 프로젝트였던 동시에, 한 인간을 혈육에게서 잘라내는 극악한 인권침해였습니다. 이 정책은 원주민의 번식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훗날의 조사들에서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원주민들은 세대가 거듭되도록 이 무자비한 정책의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고, 그 비극적인 경험은 뼈에 사무친 아픔이 됐습니다.


애버리지니의 성소인 울루루. 사진 http://class34w.edublogs.org/


1995년이 되어서야 폴 키팅(Paul Keating. 1944-) 총리의 노동당 정부가 원주민 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분리정책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습니다. 청문회는 ‘도둑맞은 세대’의 범위를 결정하고 피해사례와 청원들을 수집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1997년 ‘그들을 집으로 데려오며(Bringing Them Home)’라는 보고서가 만들어졌습니다.


연방의회에 제출된 700쪽 분량의 보고서는 1910년에서 1970년 사이 전체 원주민 아동의 10~30% 가량이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강제 수용된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개별 주와 자치령에서는 이 보고서의 권고에 따라 ‘도둑맞은 세대’에 대해 공식 사과를 했으며, 일부 주는 배상기금을 만들었습니다. 2007년에는 법원이 원주민 배상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파인 자유당 정권의 거부 때문에 ‘정부의 공식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1996년부터 무려 11년을 집권한 자유당의 존 하워드(John Howard. 1939-) 총리는 ‘사과(apology)’ 대신에 ‘유감(regret)’만을 표명습니다. 자유당 정부는 막대한 보상금 요구에 부딪칠까 두려워했고, ‘도둑맞은 세대’ 문제를 알지 못하는 젊은 백인 중산층에게 이 문제를 꺼내길 꺼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워드는 유럽 이주자들이 호주 대륙에 유입되면서 빚어진 역사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해석에 반대하면서 ‘과거의 부정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을 것’이라 고집했습니다. 


러드 총리는 달랐습니다. 외교관 출신인 러드 총리는 의정 활동을 시작한지 불과 10년도 안 돼 노동당 대표 자리에 오른 인물로, 참신한 이미지를 내세워 급성장했지요. 그는 2007년 11월 선거에서 하워드 총리의 장기집권을 끝내고 노동당의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호주 정부가 오랜 시간 부인하고 미뤄온 ‘과거와의 화해’를 시도했습니다. 선거 승리 뒤 새 정부 출범 이전부터 “도둑맞은 세대들에게 사과하겠다”고 밝혔던 그는, 총리 자리에 오르자마자 약속을 지킨 겁니다. 


2월 13일 오전 9시 반, 하원 회의장에서 러드는 화해의 메시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학대한 과거를 반성합니다. 우리는 특히 도둑맞은 세대였던 분들에 대한 학대,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오점으로 기록될 과거를 반성합니다. 


이제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호주 역사의 새 장을 열고,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갈 때가 왔습니다. 우리 동료 호주인들에게 깊은 슬픔과 고통, 상실감을 안겨주었던 이전 정부․의회의 법과 정책에 대해 사과합니다. 


특히 애버리지니와 토레스 해협 원주민 아이들을 가족과 지역사회, 국가에서부터 떼어낸 것을 사과합니다. 이 ‘도둑맞은 세대’와 그 후손들이 겪었을 고통과 상처에 대해, 그들과 남겨진 가족들에게 사과합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운 종족과 자랑스러운 문화에 모욕과 멸시를 가했던 것을 우리는 사과합니다.


러드는 국가 화해를 향한 첫 번째 발걸음을 내딛으면서 호주 역사의 중요한 장을 넘긴 총리가 됐습니다. 그의 공식 사과와 28분에 걸친 연설을 들은 원주민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시드니 부근의 애버리지니 마을에서는 폭우 속에서 수백 명이 모여 러드가 3번 “죄송하다(sorry)”고 외칠 때마다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러드는 사과를 하긴 했지만 ‘도둑맞은 세대’에게 정부 차원의 보상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사과를 거부했던 보수당의 찬성을 이끌어 내기 위한 타협안이었다고 합니다. 그 대신 원주민의 생활수준과 건강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러드는 또 1901년 연방 출범 이후 최초로 연방의회 개원식에 느거나왈(Ngunnawal) 원주민 부족을 초청했습니다. 느거나왈 부족은 ‘캄버라’ 즉 오늘날의 호주 행정수도 캔버라에 원래부터 살고 있던 주민들이었습니다. 과거 이 일대에 살았던 또 다른 원주민 느감부리 부족은 러드에게 원주민들의 의사소통 수단이었던 나무 막대를 선물했습니다.

물론 호주의 과거사 청산과 원주민들의 처우 개선은 아직까지 상징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애버리지니 출신 육상선수 캐시 프리먼(Cathy Freeman)이 최종 성화 봉송주자로 나서고 400m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반짝 관심이 쏟아졌지만, 정작 그 올림픽을 앞두고 호주 당국은 가난한 애버리지니 빈민들을 시드니 등 대도시에서 쫓아내는 ‘도시 미화’를 강행해 물의를 빚었지요.


'캡틴 쿡'과 선원들을 바라보는 원주민들을 묘사한 그림. /위키피디아


러드 총리의 사과를 지켜보는 멜버른 시민들. 사진/위키피디아


론 버니의 동화 <독수리의 눈(Eye of the Eagle)>은 호주 원주민 사촌남매의 여행을 이야기합니다. 호주에 도착한 백인 ‘문명인’은 ‘마법을 부리는 막대기’ 즉 총으로 원주민들을 살해합니다. 두 어린이는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피난처를 향한 그들의 여정에는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도망을 거듭한 끝에 결국 자신들의 종족을 만나게 됩니다. 


얼핏 보면 해피엔딩인 이 동화는 그러나 아이들의 눈이 이미 ‘독수리의 눈’이 된 이후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매서운 독수리의 눈으로 보면 과연 누가 문명인이고, 누가 야만인일까요. 


오랜 절멸․차별 정책 때문에 애버리지니들은 형편없이 열악한 수준에서 살고 있습니다. 문맹률과 실업률도 높고 최하층 빈민이 대부분인데다, 평균기대수명이 백인 주민들보다 17년이나 짧습니다. ‘선진국’을 자처하는 호주의 어두운 그늘인 셈입니다. 유엔인권기구는 2011년 5월 호주의 원주민 차별정책이 인종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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