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물의 미래 - 말 좀 꼬지 말란 말이다

딸기21 2010. 3. 2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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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미래 : 인류 문명과 역사를 뒤바꿀 최후의 자원
에릭 오르세나 저
| 양영란 역 | 김영사 | 원서 : L'AVENIR DE L'EAU



역시 프랑스 책은 내 취향은 아니다. 뭐, 그럭저럭 읽을 만은 했다. 재미도 있다.

책의 소재는 물이지만 다루는 영역은 여러 가지다. 오르세나는 세계를 돌며 물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본다. 호주에서는 물 남용으로 인한 ‘가뭄의 시대’를, 싱가포르에서는 ‘물 독립’의 문제를, 인도의 캘커타(요새 이름은 콜카타인데 번역자는 아직도 식민시대의 이름인 캘커타를 고집하고 있다)에서는 물과 보건·빈곤 문제를, 방글라데시에서는 기후변화와 기후 난민을, 중국에서는 댐 건설과 치수(治水)의 방식을,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는 물의 재활용과 물 분쟁을 다룬다.

알제리와 모로코에서는 물과 거버넌스의 문제를 제기하고, 세네갈에서는 비와의 사투 현장을 (별로 현장감 없게) 전한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에서는 물 민영화를 이슈로 다루는데, 어째 민영화 예찬이다. 프랑스 브르타뉴와 미국의 네바다는 물의 공유와 물의 이권이 지역별로 한 나라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언급한다.

책 표지와 역자의 말에서 “오르세나가 돌아왔다”고 큰소리를 쳐놨는데, 솔직히 나는 오르세나 스타일의 글쓰기 참 별로다. 프랑스엔 ‘미테랑의 연설문 작성자’였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오랜 세월 집권했으니 하기야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테랑의 연설이 얼마나 미문에 명문이었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으며, 오르세나가 한국의 독자들이 대략 알만한 유명 저술가인가?

전작인 <코튼 로드>를 읽으면서도 솔직히 짜증 좀 났었다. 특유의 프랑스식 화법, 난삽하고 산만하기 그지없는 글쓰기. 설명문도 아니고 기행문도 아니고. 현장에 갔다는데 현장감은 없다. 왜냐? 상황 묘사보다는 자기 감상, 자기 얘기가 주를 이루니까.

뒤퐁(미국 듀퐁사 창업주)이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부인을 좋아했었다는 것, 인간의 몸은 70%가 물로 이뤄졌다지만 연령과 성별에 따라 비중이 다르다는 것(성인 남성의 몸은 55%, 여성은 50%가 물이라고 한다), 잦은 가뭄으로 인한 경영난과 비관 때문에 호주 농부들은 4일에 한 명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줄 몰랐다), 세계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곳은 방글라데시의 체라푼지라는 것.

책 앞뒤 표지의 선전문구는 지나친 과장으로 덕지덕지다. 게다가 내용 중에서도, 뜬금없는 프랑스 예찬에 포도주 예찬, 프랑스 물 관리 기업 칭찬이 왜 들어가는지. 저자는 돌아다니며 ‘썰’을 풀 뿐, “그래서 지구의 물을 어떻게 잘, 깨끗하고 평화롭게 나눠 쓰고 미래 세대에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별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시니컬하고 어이없는 풍자를 자꾸 끼워 넣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단점이 큰 장점을 가리는 책이다.

물에 대해, 지구촌 물 전쟁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보다는 다소 도식적이긴 해도 반다나 시바의 <물 전쟁>(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빌헬름 자거라는 독일 저널리스트가 쓴 같은 이름의 책도 한 권 더 번역출간돼 있다)을 먼저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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