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

딸기21 2010. 2. 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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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  In Praise of Barbarians 
마이크 데이비스 저
| 유나영 역 | 이후



마이크 데이비스의 책은 되도록이면 나오는 대로 읽어보려 하고 있다. 국내에 출간된 것들 중에서는 <엘니뇨와 제국주의로 본 빈곤의 역사>, <슬럼, 지구를 뒤덮다>, <조류독감>을 읽었는데 시의적절하게 주제를 잘 잡아서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는 저술가다. 잘은 모르지만, 우석훈 같은 사람이라 하려나? 물론 데이비스가 우석훈보다는 훨씬 세계적으로 유명한 좌파 역사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이고 글쟁이라 해야겠지만.


이 책은 데이비스가 진보적인 매체에 썼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미국 진보주의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맨 뒤편에 실린 ‘60년대 거리의 추억’ 같은 것들이 재미나게 다가올 것이고, 미국 정치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면 (번번이 실패하지만 맥이 끊어지지 않는) 미국 진보파의 정치적 노력과 그 실패의 과정에 눈이 갈 것이다. 데이비스가 캘리포니아 출신이다보니 터미네이터 주지사 집권 전후의 캘리포니아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미국 정치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하다. 


내 경우는 미국 정치를 바라보는 진보파의 속내와 21세기 ‘도시형 전쟁’에 대한 통찰들이 눈길을 끌었다. 도시-슬럼-빈민의 문제는 데이비스의 <슬럼>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지만, 인구·탄소 문제와 함께 21세기의 지구적 역할을 좌우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밖에도 재미있는 이슈들을 두루두루 다루고 있다. 


▶ 민족적·종교적·언어적 정체성이 단순한 허위의식의 유령인 경우는 드물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특권 및 자격 체계에 대한 확신 또는 방어와 상응할 때가 더 많다. 정체성 정치는 거의 언제나 물질적 이익의 거대하고도 주된 기반이다.
‘프로테스탄트’와 ‘백인’은 시장에서, 노동 과정의 위계에서, 그리고 정치적 후원이나 경제적 온정의 혜택을 받는데 특권적 위치에 있음을 의미하는 약호다. 남부 민족주의는 백인됨의 상징적이고 현실적인 특권의 표현이(었)다. 나는 상징적 보상과 상상의 악마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문화적 전쟁은 그것이 아무리 무지하고 근시안적이더라도, 물질적 이익을 동원할 수 있을 때 가장 사나워진다. (64~65쪽)

▶ 이제는 이 나라 선거인단의 대다수가 교외 지역에 거주하는 현실에서, 선거 전략과 투표 분석에서 “교외 지역”이라는 단순 범주는 예전보다 유효성이 떨어진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노령화가 진행되면서 일자리와 재정을 소모해가고 있는 교외 내부 지역과, 똑같은 일자리와 판매세를 거꾸로 거두어들이고 있는 교외 외곽 지역(외곽 도시 또는 일명 ‘붐버브’ bumburb, 즉 신흥 위성도시)의 대비다. 이제 미국의 주된 분배 갈등은 도심과 교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및 구 교외 지역과 외곽도시 사이에 존재 한다. 이곳은 또한 공화당과 민주당 정치가 재규정되고 있는 주된 무대이기도 하다. 
공화당은 캘리포니아 북부의 콜루사와 남부의 리버사이드를 비롯하여 고성장하는 내륙 카운티에서 줄곧 압도적 기반을 얻어 냈다. 특히 두 카운티로 이루어진 인랜드 엠파이어가 중요한 데, 이 지역의 공화당 표(604,000표)가 머지않아 오렌지카운티의 공화당 표(674,000표)를 능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81~82쪽)

▶ 1953년 신형 나이키 미사일 배터리를 저장할 땅을 확보하기 위해, 미군 지휘관은 그린란드 북서부 툴레 사람들에게 나흘의 시간을 주면서 고향을 떠나라고 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새로운 마을(몇몇 사람의 의견에 비추면 ‘즉석 슬럼’)로 강제로 추방되었다. 덴마크와 미국 정부의 관료들은 이것이 ‘자발적인’ 이주였다고 전 세계에 거짓말을 했다. 이제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지금, 다수가 사회주의 성향의 이누이트 형제당(IA) 소속인 그 손자들은, 전 지구적인 전지전능의 군사력을 꿈꾸는 미국 청부의 ‘스타워즈’ 판타지를 실현하는 데 최대 건림돌이 되고 있다. 2002년 12월 역사적인 선거에서 대다수의 그린란드인은 반(反)NMD 연합을 표방한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전진당 Siumut Party’과 급진 성향의 ‘이누이트 형제당’에 표를 던졌다. 두 정당 후보들은 덴마크 정부가 툴레를 놓고 일방적인 거래를 하는 데 반대하고, 완전한 독립을 위한 전진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약속했다. (136~137쪽)

▶ 21세기의 대테러 전쟁

민족주의 성향을 띤 이라크군 내부의 비밀 파벌 및 공군 장교들로 구성된 ‘골든 스퀘어’파는 이슬람주의자인 라시드 알리 엘 가일라니를 총리로 추대하였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때마침 아프리카에 상륙한 에르빈 롬멜 장군의 ‘아프리카 군단’이 리비아에서 영국의 입지를 괴멸시키자, 이라크 석유로부터 차단될 위협을 느낀 처칠은 2개 군대와 2백기가 넘는 군용기를 이라크로 보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승인한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소속의) 의원 대부분은 아마도 이런 역사에 무지할 테지만, 당연히 이는 모든 이라크인에게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무슬림 세계의 일반인들은 유럽 식민 세력이 1911~12년의 리비아를 시발로 하여 자신들을 먼저 실험용 쥐로 삼아 민간인을 상대로 한 테러 폭격 기술을 완성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게르니카, 바르샤바, 드레스덴, 그리고 히로시마로 통하는 길은 티그리스 강변과 아틀라스 산맥 중턱에서 시작된 것이다.
1993년 모가디슈의 굴욕적인 참패를 계기로, 미국 전략가들은 펜타곤에서 ‘무트(Military Operation in Urban Terrain, MOUT)’ 라고 부르는 것, 즉 ‘시가지 전투’에 대해 재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 결과네 개 육군사단은 현실적인 제3세계적 조건에서의 시가전에 숙달하기 위한 단기 속성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육군대학에서 발간한 한 저널은 “전투의 미래는 전 세계의 파탄난 도시를 이루는 거리, 하수도, 고층빌딩, 난개발된 주택가에 놓여 있다”고 선언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에서 너무나도 무자비하게 활용했던 최신 전법(특히 저격수와 중무장한 파괴 부대와 압도적인 공군력의 정교한 협력)을 해병대와 특수부대와 네이비실에 가르치기 위해, 미군에서는 이스라엘인 자문관들을 조용히 초빙했다.
팔루자에 들어가 있는 해병대원 중 다수는 이런 ‘어번 워리어’ 훈련을 수료하거나 ‘요다빌(Yodaville, 애리조나 유마에 있는 시가전 훈련 시설)’에서 모의 전투를 경험했다. 이 같은 미군 전투 교의의 전술적 ‘이스라엘화’는 펜타곤 세계관의 ‘샤론화’와 궤를 함께 하고 있다. 
군사 이론가들은 이렇게 진화하는 첨단 전투 능력을 가지고, 날로 커지는 거대 슬럼의 절망에 뿌리를 둔 고질적 ‘테러리스트’ 반란을 (분쇄하지는 못 하더라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랜드 연구소에서 1990년대 초부터 착수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는 ‘인구 변화가 미래의 전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에 관한 연구다. 랜드 연구소에서 찾아낸 결론은, 전 세계적인 빈곤의 도시화와 더불어 ‘반란의 도시화’(그들이 펴낸 보고서 제목이기도 하다)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트로이 토머스 Troy Thomas 대위는 “개발도상국이 급속히 도시화되면 무계획성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에 전장 환경은 점점 예상하기 힘들어진다”고 썼다. 토머스는 카라치를 둘러싼 ‘누추한 판자촌의 바다’를 사례로 들어 ‘마디도 없고 위계도 없는’ 도시공간에서 ‘절망과 분노’를 추진력으로 ‘파벌에 기반하여 형성된’ 민병대를 상대로 ‘비대칭전’을 벌이는 어마어마한 도전을 묘사하고 있다. 토머스는 악몽의 전투 현장이 될 수 있는 곳으로 라고스와 킨샤사의 팽창하는 슬럼을 들고 있다. (177~179쪽) 

식민지 도시가 봉기의 무대가 된 시기는 일시적이고도 짧았다. 실제로 카이로, 아바나, 봄베이, 마닐라, 더블린 같은 식민지 대도시를 통제하는 데 억압적 자원(특히 유럽의 군대)이 거의 필요치 않았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이는 식민 통치자의 매개역을 하는 중산 계급의 보수주의적 영향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중산 계급의 민족주의는(만일 그런 것이 존재했다면) 주로 조심스럽고 점진적이며 비폭력적인 형태를 띠었다. 
반식민 저항이 지속 가능했던 곳은 시골, 그중에서도 특히 수출 농업이 소농 및 전통적 농촌 공동체의 생존과 날카롭게 대립했던 지역이었다. 게다가 도시의 혁명 전위들이 튼튼히 뿌리박은 봉기의 전통을 지닌 농촌의 보루로 도주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18세기 후반 북아메리카와 아일랜드 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대 민족주의 해방 운동에서 반복되는 유형이었다. (182~183쪽) 

(현재는 15억 명이고 2030년까지 25억 명으로 불어날) 이 추방된 프롤레타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나이가 어리고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사회 계급이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도시 비공식 노동계급은 (호황기 때는 파업에 대비한 예비 인력 구실을 했다가 불황기 때 다시 쫓겨나고, 다음 경기 팽창 때 재흡수되는) 19세기적 의미의 노동 예비군과 다르다. 이들은 구조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나, 전 지구적 축적 및 기업 매트릭스에 대한 잉여 인간 집단이다. 
도시 비공식 노동계급은 비록 주변으로 밀려나 방치되어 있다는 면에서 같은 처지를 공유하기는 하지만, 정체성, 신념, 운동에서 서로 놀라울 정도로 상이한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다. 첫째, 빈민 중에서도 밑바닥 빈민은 언어적·민족적·종교적 소수자다. 둘째, 대규모 노동자 집단에 소속되지 못한 비공식 노동 계급은 전략적·사회적 힘은 물론 구심력을 지닌 조직 원리가 없다. 셋째, 슬럼 주민들은 중독과 폭력의 파괴적 영향 때문에 사회적으로 아노미 상태에 처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가장 빈곤한 슬럼 공동체도, 맥이 끊긴 공장 및 광산 노동자 문화 등 옛 농촌이나 도시의 연대를 유지하고 전달할 수 있다. 도시 빈민들이 만든 가장 높은 수준의 시민 조직은 아마도 무슬림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슬람 시민사회의 복잡한 교육 및 자선 네트워크는, 슬럼의 삶에 다른 문화권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윤리적 규제를 부여한다. 카이로가 그 모범적인 예다. 이들이 압도적인 점령 세력에 대항하여 대단히 힘든 장기간의 저항을 지탱할 수 있는 것 역시 이 같은 제도의 힘이 크다. 세계 도처에 있는 무슬림 슬럼은 고도로 단련된 절망의 저수지다. ‘테러와의 전쟁’의 요지가 적을 추격하여 그들의 사회학적·문화적 미로 속으로 쫓아 들어가는 것이라면, 개발도상국 도시들의 빈곤한 주변부야말로 21세기의 영구적인 전장이 될 것이다. (195쪽) 

▶ ‘듀로빌’이란 캘리포니아를 방문하는 외지인들은 절대 보지 못하고, 세계 제6위 경제권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는 전문가들은 무시하는 곳이다. 코첼라 밸리 내에 위치한 이 다 쓰러져 가는 황량한 동네는 4천 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곳은, 카후일라 인디언 부족의 일원인 하비 듀료 Harvey Duro의 사유지에 집 없는 농장 노동자들이 모여 세운 빈민촌이다.
코첼라 밸리는 캘리포니아의 보수주의자들이 주 전역에 세우기를 꿈꾸는(비버리힐스와 티후아나가 만나는) 미래의 견본 같은 곳이다. 밸리 서쪽, 그러니까 팜스프링스부터 라퀸타까지는 완벽한 냉방시설 이 갖춰진 낙원이다. 이 밸리의 동쪽, 그러니까 인디오에서 메카까지는 리조트잡역부, 접시닦이, 풀장 청소부, 농장 노동자들이 사는 곳이다. 
듀로빌이 통렬하게 상징하고 있는 이런 캘리포니아의 제3세계화는 우연한 현상이 아니다. 1970년대 후반의 그 유명한 조세 저항은 경제적 대중주의로 코드화된 인종주의 정치였다. 라틴계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우익 선동가들의 부추김에 넘어간 백인 유권자들이 공공 부문에 대한 지원을 철회한 것이다. (209쪽)
남캘리포니아의 교통 체증은 미국 최악이고, 날로 길어지는 출퇴근 시간은 막연한 분노를 끊임없이 부추기는 원천이다. 지역라디오 방송국인 ‘코고 KOGO 600’에서 “샌디에이고의 라디오 시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로저 헤지콕 Roger Hedgecock 은 고속도로 오후 정체가 이어지는 오후 3시부터 6시까지의 시간을 지배한다. 지난 20년 동안 로저가 주로 집중한 문제는 캘리포니아에 “멕시코인들이 침공”한다는, 소위 ‘갈색 공포’였다. (228쪽) 
오늘날의 자경단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소위 ‘민병대 Minutemen’ 다. 그들은 (적절하게도) 지난 만우절에 애리조나의 멕시코 국경에서 무장경비를 개시했다. 애리조나의 민병조직인 ‘툼스톤Tombstone’ 은 국정 인근 지역에 십 년 넘게 유행하고 있는 반反이민 경비대 중 가장 최근에 출현한 집단이다. 이 수상쩍은 준군사 조직들은 우익 라디오 자키들의 선동 하에 인종주의 성향의 목장주들과 자칭 ‘아리안 전사들’이 이끌고 있으며,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의 가마솥 같은 사막을 건너는 이민자들을 괴롭히고 불법으로 구금하고 때리고 살해하고 있다. ‘민병대 프로젝트’는 어처구니없는 행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경단의 주의주장을 보수 정치의 주류로 올려놓으려는 용의주도한 기도이기도 하다. 

▶ 미 국무부의 추정에 따르면, 지난 십 년 동안 멕시코에 거주하는 미국인의 수는 20만 명에서 1백만 명(해외 체류 미국인의 4분의 1)으로 늘어났으며, 멕시코 부동산업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인은 멕시코에 무려 150만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멕시코로 가는 송금액이 불과 2년 동안 90억 달러에서 145억 달러로 대폭 증가한 현상은 처음에는 불법 노동자의 수가 대폭 늘어난 현상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었지만, 이는 주로 미국인들이 멕시코에 집과 별장을 사기 위해 자기 계좌로 부친 돈인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미국 선벨트 지대의 부동산 가치가 비정상적으로 뛰어 오른 덕분에 미국인들은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누리게 되었다. 기민한 베이비 붐 세대들은 그저 다가올 은퇴에 대비하여 저축만 하는 것이 아니라, 멕시코 휴양지에 투기하여 부동산 가격을 한껏 올려놓는 바람에 현지인들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늘었다. 
하지만 그링고들의 침입이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진 곳은 (그리고 가장 의미심장한 지정학적 결과를 초래한 곳은) 바로 바하 캘리포니아다. 이곳은 캘리포니아에 딸린 1,600킬로미터 길이의 사막이다.
요컨대 ‘알타 캘리포니아‘는 바하로 넘쳐 흘러들어가고 있다. 이 전대미문의 과정이 제대로 통제되지 않을 경우, 멕시코의 마지막 남은 이 미개척지는 용납하기 힘든 사회적 주변화와 생태적 참화를 겪을 것이다. 미국인들이 이 멋지고 “텅 빈” 남쪽 반도로 침입하면서 후기 산업화에 들어선 캘리포니아의 온갖 모순들(해안 지역의 끝없는 땅값 폭등, 내륙 밸리와 사막 교외 지역의 난개발, 고속도로 정체와 대중교통의 결핍, 자동차를 이용한 여가 생활의 천문학적 성장 등등)도 고스란히 따라 들어간다. 
실제로 비공식적 합병의 첫 두 단계까지는 이미 진행되었다. 나프타의 깃발 아래 수백 개의 노동착취 공장과 유해산업이 남캘리포니아에서 티후아나와 멕시칼리의 마킬라도라로 이전 되었다. 한편 바하의 남쪽 끝 열대 지역에는 카보 산 루카스와 산호세 데 차보 사이에 놓인 32킬로미터 길이의 좁고 긴 땅에 ‘황금 해안’이 출현하고 있다.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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