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인도주의의 꽃, 국경 없는 의사회

딸기21 2007. 12. 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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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의 꽃, 국경 없는 의사회. TOUCHED BY FIRE
엘리어트 레이턴 지음. 그렉 로크 사진. 박은영 옮김. 우물이 있는 집.

 

 
국경없는 의사회(MSF)에 대한 책을 읽은 김에 한권 더 펼쳤는데, 중간중간 유럽식 통찰력(사실 이 책의 두 저자는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캐나다 출신들이다)을 보여주는 인상 깊은 구절들이 있긴 하지만 재미는 떨어졌다.

르완다 인종학살이 일어나고 1년 반 정도 지난 1996년에 아프리카를 찾아가 MSF의 활동을 직접 보고 쓴 책이라는데 내용은 거의 르완다에 국한돼 있다. 르완다의 당시 상황을 열심히 전달하려 한 것은 좋았고, 감동적인 혹은 눈시울 시큰하게 만드는 부분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MSF의 안팎을 생생히 들여다보고 썼다 하기에는 너무 피상적이다. MSF의 누구누구는 이러저러하게 말했다, 이러저러하게 행동했다는 이야기를 반복해 밀도가 너무 떨어진다. 후반부에서 MSF의 고민을 많이 조명하려 애쓰긴 했지만 지지부진하다.

어설픈 르포 기자들 기사 쓰듯, ‘자기 얘기’가 얼토당토않게 들어가 있어 황당하기까지 하다. 르완다의 어느 마을에서 만난 MSF 의사가 불친절했다, MSF의 어떤 사람은 회의를 하면서 시끄럽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뭐 그런 것들. 특히나 맨 마지막 부분. 저자가 집으로 돌아와 ‘마음의 상처’를 상담하려고 캐나다 MSF 상담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퉁명스럽게 끊어버려 고립감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책을 맺는데, 좀 어이가 없었다.

번역도 그렇다. 다른 건 말고, 존 버거를 존 베르거라고 썼다든가 미군이 2차 대전 뒤 깃발 꽂았던 일본 이오지마를 ‘이워 지마’라 해놓고 버젓이 괄호 열고 나이지리아 지명이라고 해설해놓은 것은 어이가 없다. 책 편집도 마찬가지. 책은 분명 캐나다의 글쟁이와 사진쟁이가 짝을 이뤄 만든 것인데 하얀 모조지 같은 지면에 흐릿한 흑백사진들로 구색 갖추려는 흔적만 냈다. 그래도 이런 책은 많이 나올수록 좋으니 참아주자. 

 

지그문트 바우먼은 대량학살이 전형적인 현대적 형태의 ‘사회공학’임을 갈파했다. 즉 ‘이성적으로, 행정적으로 조직된 권력’이 개입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바우먼에 따르면 현대의 대량학살은 특정 목적을 지닌 집단살상이다. “상대를 제거하는 것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고” 단지 “더 나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를 향한 큰 비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이 큰 비전 속에서 ‘완전한 사회’가 가능하며, 이는 투치족이나 집시, 자본주의자, 공산주의자, 동성애자, 유대인 등 치유 불가능한 방해 요소들을 제거하는 일이 전제되어야 한다. (29~30쪽)

 

 

전쟁은 원시사회의 발명품이 아니며, 대량학살이 아프리카 탈선의 산물은 더더욱 아니다. 대량학살은 유사 이래 늘 있어왔지만, 현대에 국한한다면 대량학살은 정치적인 동기로 유발되며, 특정 종족을 몰살시키는 형태는 다분히 유럽이 만들어낸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이 발명은 현대성의 핵심이다. 정치적인 전략으로서의 대량학살은 집단의 복종을 공고히 하고 지배계급 엘리트들의 편협한 야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대중을 흥분시켜 관심을 지배층의 결함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돌리고, 희생자의 부와 지위를 훔치며, 살아남은 이들을 억압하여 복종하게 만드는데 무방비의 소수를 상대로 한 대량 약탈과 학살보다 더 쉬운 방법이 현대 국가에게 있을까?

왜 르완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에메랄드그린의 색조로 감싼, 끝없이 늘어선 원뿔형의 구릉과 고요하고 푸른 호수들이 기막히게 아름다운 곳에서! 르완다는 ‘원래’ 가난한 곳도 아니었다. 세계에서 가장 면적이 작고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나라지만 비옥한 토양과 풍부한 강수량 덕분에 인재(人災)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근을 걱정할 일은 없는 곳이다. (36쪽)

 

 

르완다 사람인 관리인이 방명록을 적어달라고 했다. 망연자실해 있던 나는 “첫째가 응분의 조치, 그 다음이 화해”라는 말만을 떠올릴 뿐이었다. 나중에 차안에서 운전기사인 하산에게 내가 물었다.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투치족 사람들이 그렇듯이 사려 깊은 하산은 한참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힘들겠지요. 그러나 화해할 수 있습니다. 복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짐승이 아니고 사람이니까요.” 나는 그의 관대한 영혼 앞에서 비틀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 근처에서 있었던 학살에서 형제 둘을 잃은 사람이었다. (59쪽)
 

아마도 MSF 내에서 성인(聖人)의 후보자를 찾는다면 다른 곳과 하등 다를 바 없이 수도 적고,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될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들이 MSF에 동참하게 된 동기를 들어보면 천차만별일 뿐 아니라 지극히 세속적이기까지 하다. 취직이 안 돼서, 혹은 취업 대기중이었거나, 틀에 박힌 생활에 대한 저항으로, 모험과 좀더 의미 있는 일에 대한 갈망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몇몇은, 산업화되고 안보가 철저한 나라에서 권태로움을 느낀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입힌 새디즘적인 상처에 환자용 변기와 붕대를 제공하고 약을 조제하고 처방하는 삶을 그리워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고단한 임무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드물게는 매우 명료한 만족감이 이들을 이 일에 묶어두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70쪽)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꼬마들이 계속 내 주위를 뱅뱅 돌며 틈만 나면 내 손을 잡는 겁니다.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거죠. 아마 그게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79쪽)

 

현대사회의 불신은 너무 뿌리 깊어서,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다시 살아나 자신의 대의를 아프리카의 오지 병원으로 확산시키거나 테레사 수녀가 생애를 바쳐 캘커타의 빈민들에게 봉사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명성에 해를 입힐 산업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들은 곧장 문화 아이콘이 될 것이며, 동시에 이들에 대한 역습도 준비될 것이다. 그들의 수과 목적이 권위주의적이며 심지어 민족중심주의적이며 괴벽스럽다는, 그래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말이 어디선가 나올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가난한 아이들을 돌보는데 바친다면, 아니 그럴 기미만 비쳐도 그는 아이들을 학대하는 소아 성애자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정신이다. 노출되는 순간 변질되고 무력화된다. (231쪽)

 

MSF인이 된다는 것은 비인간화의 반대편으로 걸어가는 반(反) 소외의 경험이다. 멤버십은 그들을 자유롭게 하고, 행동할 기회를 잡았을 때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해방감은 자신들이 하는 일의 순수성에 대한 강한 확신, 이 단체와 그들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과 더불어 나온다. 굳건한 신념과 강한 만족감이야말로 그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지탱해주는 원천이다. 잔혹과 공포를 목격하는 것, 지독한 질병을 다루는 일, 심한 상처를 치료하는 일, 간이화장실을 설치하고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일은 모두가 그들이 진실과 직면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목적성과 도덕적 순결성을 가지고 행동하다보면 다른 딜레마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풀린다. (101쪽)

 

MSF인들은 일단 행동하고 나중에 질문하기 때문에 국제원조운동의 무모한 카우보이처럼 비쳐질 대가 있다. 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격렬함과 독신자나 가질 법한 외골수적인 태도는 많은 적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들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거나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고 판단하면 순식간에 결정을 바꾼다. 그건 유엔을 그처럼 총체적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관료들의 무감각증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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