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다시 한번, 한류에 대해.

딸기21 2004. 11. 1. 11:31
728x90
한국에 있을 때 중국이나 동남아의 '한류' 현상에 대한 기사를 보고듣고 읽으면서 나 또한 '매스컴에서 과장했겠거니' 했었다. 사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일본에서 한류가 대체 어느 정도나 붐을 일으키고 있길래...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힘들 것이다. 내가 자꾸 여러번 한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나 스스로 이곳에서 몹시 놀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일본 사람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속으로는 당연히 반갑고 기쁘다. 
얼마 전에 우리 신문 도쿄 특파원을 지냈던 선배가 일본에 온 김에 우리 집에 왔었다. 이 선배는 일본에 대해 나보다 100배 더 잘 알고 계신 분인데, 진짜 일본에서 한국문화 붐이 일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일면 타당하기도 하고, 또 일본 전체가 한류 붐에 덜덜거리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건 당연하다. 일본 1억2천만 인구가 모두 한국어를 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깐.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오로지 욘사마만 좋아하는 것은 또한 아니라는 사실이다. 특파원이라든가, '공식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본의 아줌마들과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양복입고 일하는 중년 아저씨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눈다면, 한류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대장금 붐이 일었을 때, 아저씨들까지 몽땅 대장금을 보고 관공서와 기업체에서 그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을테니까. 하지만 '붐'이라는 것은, 굳이 산술적으로 표현하면, 다섯 가족중에 한 사람만 열성 팬이 있어도 '붐'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일본에서 학교에도 안 다니고 일도 안 하고, '바깥 생활'이라고는 오로지 아줌마들(가끔은 할머니들)하고 수다떠는 일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의 '한류'가 크게 와닿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특파원을 지낸 선배의 '선입견'보다는 내 쪽이 한류의 실체에 더 접근해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코알라마을에 갔었다. 오늘은 첨보는 아줌마가 한명 왔는데, 역시나 한국드라마 광팬이다. 물론 코알라마을의 숱한 엄마들이 모두 한국드라마를 보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아직 어린 애들이 있는 탓에 한국드라마는 고사하고 일본 드라마도 보지 못한다고 실토한다. 반면 열성적인 한국드라마 팬들이 있다. 오늘 만난 아줌마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이 아줌마, 얼마나 대단하냐면--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더니 다짜고짜 '신승훈 좋아한다'고 하는 것 아닌가. 나도 아주 좋아한다고 얘기해줬다. 그리하야 우리는... 작금의 힙합 류를 비롯한 10대 뮤직과, 우리 또래의 발라드 취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어 드라마 얘기로 넘어갔다. 우리의 대화를 직접 읽어보시고, 한류의 수준을 가늠해보시라.

나: 일본에선 후유소나(겨울연가)가 인기가 많았지만.
아줌마: 같은 감독이 만든 가을동화하고 여름향기도 다 봤다.
나: 근데 최지우도 스타지만 발음이 안 좋아서.
다른 아줌마: 그래, 발음이 새더라.
아까 그 아줌마: 맞다, 혀가 짧은 것 같더라


오호... 최지우의 혀짧은 소리는 한국말 못하는 사람들도 구분해내는구나!

나: 1월부터 여기서도 방영해주는 드라마가 있다. '대장금'이라고...
광팬 아줌마: 아, 장금이. 위성에서 벌써 해주고 있다.
나: 거기 나오는 여자 탤런트...
광팬: 아, 이용에(이영애)
나: ^^;; 그래, 그 여자가 진짜 톱스타다.
광팬: 오호... 그러냐. 얼굴이 진짜 이쁘다.
나: 이영애가 처음 나왔을 때.. 산소같은 여자.. 어쩌구 저쩌구...
광팬: 최지우도 이쁜데.
나: 근데 최지우 나오는 드라마는 전부... 교통사고... 기억상실증..
광팬: 주인공이 병들거나... 출생의 비밀... ㅋㅋㅋ 
나: 그리고 주인공이 15분마다 한번씩
참견 아줌마: 울고 있지... ㅋㅋㅋ
광팬: 순정만화... ㅋㅋㅋ 근데 엄청 재밌다.
나: 나는 일본 드라마도 재밌던데...
아줌마들: (화들짝 놀라며) 정말? 정말?
나: 응... 기무라 타쿠야...
아줌마들: 아니, 세상에. 깔깔깔. 이치고상(나)은 일본드라마를 보는군! 
광팬: 난 욘사마는 별로이고 이병헌이 좋아.
나: 욘사마는 야사시이(부드러운) 쪽이고, 이병헌은 남자다운 쪽이지.
광팬: 그래서 이병헌이 좋아.
나: 요새 새로 하는 드라마가 있는데, '천국의 계단'이라고. 난 거기 나오는...
광팬: 권상우?
나: ^^;;; 맞다, 권상우. 난 권상우가 좋은데.
광팬: 권상우가 요새 이치방 닌키(인기 짱)이라며.


집에 돌아가면서 내가 꼼꼼이한테 
"꼼양아 저기 오빠 있다"
오빠네 엄마(광팬 아줌마): 아, 오빠. 무슨 말인지 안다. 집에 갈땐 '가자'라고 하지?
나: (허걱) 어떻게 그것까지?
아줌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ㅋㅋㅋ 내 친구는 아예 한글 배우고 있고, 한국말 노래 적어놓고 뜻도 모르면서 외우고 있다.

이 아줌마 뿐 아니라, 나랑 요즘 친하게 지내는 소라짱네 엄마의 남편, 즉 소라짱의 아빠도 한국말 배우고 있다고 하고, 한국드라마 광팬인 또다른 아줌마도 한국말 배우고 싶다고 갈쳐달라고 한다. 드라마 뿐이 아니라 음식도 한국식 매운 음식 대유행, 테레비에서는 배용준 최지우 판에다가(최지우 나오는 드라마 네개 동시상영! - 얼마전까지만해도 세 개였는데 또 늘었음) 테레비만 틀면 한국말이 나온다 -_- 안 잘생긴 류시원까지 보이질 않나 ㅠ.ㅠ

꼭 드라마만이 아니라, 드라마는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고, 일본에서 한국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퍼진 것은 확실하다.
728x90

'딸기가 보는 세상 > 이웃동네, 일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다시 배용준 때문에 난리  (0) 2004.11.27
일본은 있뜨라  (0) 2004.11.13
일본의 지진 복구  (0) 2004.10.31
한류는 계속됩니다  (0) 2004.10.24
도쿄에 온 이래, 머리 손질이라고는  (0) 2004.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