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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작으면서 크고 넓은 책

딸기21 2007. 10. 1.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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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經濟成長がなければ私たちは豊かになれないのだろうか

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은이) | 최성현 | 김종철 (옮긴이) | 녹색평론사 | 2011-04-05



책은 재생지로 된 작고 두껍지 않은 책인데 내용은 크고 넓다. 


제목이 너무나 직설적이어서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책은 미국 출신 사회운동가 겸 저술가 더글러스 러미스가 일본에 살면서 일본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하게 살아보자, 하고 지적하고 제안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일본어 문체로 돼 있어서 거기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다소 생소한 말투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지적하는 내용과 제안도 일본적이지만, 우리 또한 새겨들어야만 하는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아니, 사실은 “개같이 벌으렸다, 돈만 벌어라” 하는 식의 사고방식은 일본보다 우리가 훨씬 심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본주의 성장지상주의에 빠져 일로매진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은 물론 미국도 제치고 1등할 것 같다. 그러니까 ‘20대 80’ 중 잘나가는 20 말고 못난이 80이라도 그럭저럭 먹고살 여지가 있는 일본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들어야 할 내용이다.


“그것은 좋은 이상일지는 모르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돈을 벌어야 한다”라든가, “싫어도 직업이기 때문에 별 도리가 없다” 등등, 이와 같은 상투적은 말들은 소득으로 이어지는 것만이 현실성이 있다는 경제발전론의 발상이다. 나는 이러한 발상에 대하여 의문을 던지기 위해서 이 제목을 선택하였다. 경제발전론=소득배증론(所得倍增論)이 사회의 상식이 되어있는 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그밖의 다른 테마에 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의학용어를 빌려 말하면, 경제발전론은 현대사회 속의 사고장해(思考障害)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사람의 사고력을 억압하는 힘을 갖고 있다. (7쪽) 


러미스가 사람들의 경계와 각성을 끌어내고자 애쓰는 부분은, “경제의 파이를 키우자”라는 성장 일변도의 생각에 관한 것이다. 파이를 키우자, 그러니까 파이가 커질 때까지는 파업도 말고 인권 환경 여성 인권 노동 복지 문화 이런 거 떠들지 말고, 배 채울 때까지 일단 기다려라, 그런 논리 말이다. 성장이 되면 우리는 저절로 인권 환경 여성 노동 복지 우선국가가 될까? 성장이 안 되면 ‘배부른 자들이나 하는 소리’는 신경 써서는 안 될 일인가? 어쩌면 우리는 다종다양한 목소리와 가치관을 ‘배부른 자들의 소리’로 치부해온 탓에 여지껏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언제나 배가 고프고 옆구리가 결리고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고 그런 것이 아니었던가? 


원론적으로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게 다 배부른 소리야”라는 말로 맞받아쳐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을 순환논법에 빠지게 만들고, 어떤 사람들은 “말은 맞지만 어떻게 할수 있나”고 체념한다. 러미스는 그런 식의 논리구조에 ‘타이타닉 현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였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을 타이타닉호처럼 ‘전진하지 않으면 가라앉는 체제’로 보고 있다고, 오늘날의 현실주의는 ‘멈추거나 늦추면 가라앉고야 만다는 논리에 입각한 타이타닉 현실주의’(17쪽)라고.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저자의 주장은 생각을 바꾸자는 것, 그리고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다. ‘발전’(development)은 어원으로 따져보면 가려진 것, 감춰진 것을 풀어 꺼낸다는 것인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쪽(저개발 세계)을 까뒤집어 속도전으로 뛰어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북쪽(개발된 세계)을 다시 좀 오므리고 늦춰서 가치관 바로잡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껏 사람들이 일 중독과 소비 중독, 두 가지 중독에 빠져 있는데 인간을 다시 보통 인간으로 돌아오게 해서 값이 매겨져 있지 않은 즐거움, 사고파는 일과 관계없는 즐거움을 되찾게 만드는 일(107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대항발전’이라 이름붙였다. 좀 추상적이고 몽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맞아 맞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 세상이 숨통이 트이고, 사고파는 일과 관계없는 즐거움이 많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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