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세계화의 윤리

딸기21 2007. 3. 3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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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윤리 One World: The Ethics of Globalization (2002) 

피터 싱어 (지은이) | 김희정 (옮긴이) | 아카넷 | 2003-12-30



국제뉴스를 다루다 보면 생기는 의문들이 있다. 인권, 윤리와 관련해 가장 큰 난제는 ‘개입’에 관한 것. 개입은 언제, 얼마만큼 필요하며 그 필요성은 누가 판단하는가. 


두 번째, 지구 반대편 가난한 아이보다는 내 이웃을 도와야한다는 주장에 대해 세계화의 윤리는 어떤 답변을 내줄 수 있는가. 보편적 인권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 지구화된 시대에 ‘책임’은 어떻게 규정되고 지켜져야 하는가. 국제관계에서 윤리란 현실적, 실리적으로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되며, 특히 세계화 시대의 국제관계에서는 그 모든 맥락이 과거와 비교해 어떻게 달라지는가. 


저자는 호주 출신으로 미국 영국 호주 등 여러 곳에서 강단에 섰던 사람이다. 이 책은 세계화 시대의 윤리라는 것에 대해 몇가지 실마리를 제공하는데, 깊이가 있으면서도 핵심을 딱딱 짚어놨기 때문에 아주 유용하고 재미도 있었다. 


이런 작업은 아직 초창기 단계인지라 좀더 정교해지고 또 현실적인 맥락에서 토론이 진행될 필요가 있지만 어쨌든 철학 사회학 윤리학 등등을 종합해 이론적인 작업의 기초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도 있고 이것저것 생각하는데 도움도 많이 됐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강대국들의 횡포를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미국의 힘’을 과대평가한다거나 다국적 기업들 혹은 ‘자본의 힘’을 과대평가해서 패배적인(그래서 결과적으로는 기회주의적인) 결론을 내놓아서는 안된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저러는데 힘없는 나라들이 무슨 방법이 있겠어?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건, 어차피 결과가 빤해서야, 개인의 힘으로 할 수 있는게 별로 없잖아, 그러면서 사실은 ‘강대국/대기업/미국인/무책임한 소비자/에너지 낭비꾼’의 대열에 편승하는 행위 말이다. 


환경 문제만 해도, 미국이 버티고는 있지만, 유엔이 무력하다고 하지만, 분명 어떤 형태로든 ‘탄소 관리를 위한 글로벌 체제’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그 체제를 어떻게 해서 더 친환경적이고 더 근본적인 것으로 만드는가 하는 점이지, “미국이 반대하는데 교토의정서가 무슨 의미가 있어” 이런 차원은 아니라는 점.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패배주의를 이야기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저자는 국제기구/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변화의 조짐이나 윤리의 위력에 대해서도 평가를 놓치지 않는다. 


번역이 별로이긴 하지만, 참 ‘안 팔릴’ 책이긴 하지만, 볼 사람 만이라도 좀 봤으면 싶은 책. 



▶ 당신이 뉴욕에 있는 당신의 아파트에서 겨드랑이 땀냄새를 없애려고 프레온 가스가 함유된 땀 냄새 제거용 스프레이를 사용한다면, 몇 년 후에 피부암을 일으켜 칠레의 푼타아레나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망하게 할 수도 있다. 또 당신이 모는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방글라데시에 치명적인 홍수를 일으키는 인과 고리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새로운 상황을 고려하기 위해 우리의 윤리를 어떤 식으로 조정할 수 있겠는가? (45쪽)


▶ (빈부격차 혹은 세계화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평가와 관련) 불평등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복지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중요하다. 사회 구성원 모두의 복지 증진을 똑같이 고려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회 구성원 중에서 가장 못 사는 사람들의 복지 증진에 모종의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논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식으로 결정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복지이지, 잘사는 사람들과 못사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얼마나 큰지가 아니다. 

... 따라서 세계 무역의 개시에 있어 더 중요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잘사는 사람들과 비교해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관점에서, 세계 무역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보다 세계의 못사는 사람들을 더 빈곤하게 만들었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121쪽)

... 경제적 세계화가 바람직한 것이라는 주장을 우리가 받아들이건 받아들이지 않건 세계화를 개선할, 아니 최소한 개악하지는 않을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 우리는 물을 수 있다. (129쪽)


▶ (독재국가에 대한 징벌적 개입과 관련) 미국의 민주주의는 명백히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를 합법적이라고 인정하는 것을 철회할 정도는 아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 개념을 요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합법적인 정부는 거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다음의 두 가지 형태의 정부를 구분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 그 하나는, 비록 민주적이지는 않지만, 국민의 외형적 묵인 하에 기본적인 국민의 자유에 심각한 제한을 가하지 않고 지배하는 것을 가능케 하는 전통적이고 오래된 통치권을 주장할 수 있는 정부이다. 다른 하나는, 무력으로 권력을 잡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억압적인 조치를 취하는 체제이다. 

무력으로 권력을 잡고 반대세력을 억압하여 그 권력을 유지하는 정부에만 초점을 맞출지라도, 민주적인 주권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세계의 업무를 처리하는 방법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139쪽) 


▶ (제3세계 독재정권과 결탁해 자원을 챙기는 행위와 관련) 최소한의 민주적인 주권 개념을 적용해 보면, 우세한 힘을 행사한다는 사실 이외에 주권에 대해 어떤 권한도 없는 사람들이 나라에서 훔친 장물을 누군가가 취득한다면, 그것은 마찬가지로 국제법 하에서 범죄가 될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원대한 견해이지만, 점점 더 인정을 받아가고 있다. (140쪽)


▶ (대량 학살을 막기 위한 제한적 개입의 필요성과 반인도범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보편적 사법권의 문제) 비록 가난을 극복하고 불의를 근절하고 교육을 증진시킴으로써 집단 살해를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량 학살을 방지하기 위해서 단지 이런 정책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그러면 이 이외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평화를 진작시키고 국가 간의 전쟁 위험을 감소시키기 위한 메커니즘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 국가 차원에서살인, 강간, 폭력이라는 개인 범죄에 대한 마지막 방어선이 법적 강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도 집단살해죄와 이에 버금가는 범죄에 대항하는 마지막 보루는 법적 강제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러한 여러 방안들이 실패한다면, 마지막으로 군사적 개입에 호소하는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이다. (153쪽)


▶ (인도주의적 개입을 위한 기준) “어떤 국가가 자국민에게 잔학 행위를 범하고 자국민들을 박해하여 기본권을 부정하고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준다면, 인도(주의)를 위해 개입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오펜하임) 

...마이클 월처는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개입의 예로서 당시 동파키스탄이었던 지금의 방글라데시에 대한 1971년 인도의 개입, 같은 해 캄보디아에 대한 베트남의 개입 등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국민이 ‘제국주의적인 도움 없이 내부에서 자국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월처처럼 ‘인류의 양심’이라는 기준에 호소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다름 아니라 이런 양심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서 인종 간의 섹스, 무신론, 혼욕 같은 것에 의해서도 충격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 유엔 사무총장인 아난은 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은, ‘대규모 사람들에게 죽음과 고통이 닥칠 때, 그리고 명목상 책임 있는 국가가 그것을 멈출 수 없거나 멈추려는 의향이 없을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 헌장은 ‘개별 인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써 그 의견을 뒷받침했다. 아난의 견해는 ‘인류의 양심에 충격을 주는 것’이라는 기준보다 더 구체화된 기준을 내세웠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다 정확히 하기 위해서는 ‘고통’이라는 언급이 보다 구체적인 피해를 나열하는 것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164쪽)


▶ 2002년에 캐나다 정부가 앞장서 설립한 ‘개입과 국가 주권에 대한 국제위원회(ICISS)’는 ‘보호 책임’이라는 보고서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군사적 조치의 기준을 단 두 가지로 줄였다. 

가. 집단살해의 의도가 있건 없건 고의적인 국가 행위, 태만이나 무능력 혹은 국가 해체 상황의 상징인 현재의 또는 예상되는 미래의 대규모 인명 손실. 

나. 학살, 강제추방, 테러나 강간행위 등에 의한 현재의 또는 예상되는 미래의 대규모 인종청소. 

... 한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ICISS의 첫번째 기준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대한 정의를 충분히 넘어서고 있다. 바로, 개입을 유발하는 ‘대규모 인명 손실’은 의도적인 인간행위의 결과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기아 사태 등) 


▶ (개입 기준의 평가와 유엔의 역할) 그 개입기준이 언제 충족되었는지를 누가 판정해야 하는가? 실제적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개입 기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다. 언제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 명시하는 권위 있는 절차를 납득할 만하게 발달시킬 수 있는 전지구적 단체는 현재 하나밖에 없다. (169쪽) 

... ICISS는 국가주권에는 국가가 자국민의 보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그 책임을 기꺼이 다하지 않거나 그럴 수 없을 때, 국제 사회, 보다 구체적으로는 안전보장이사회가 그 책임을 대신 지게 된다는 것이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헌장 제24조에 따라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일차적인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177쪽)


▶ (강대국이 저지르는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해선 왜 개입할 수 없는가) 개입을 위한 법적인 근거, 그리고 나아가 정당한 원인까지 있다고 해도, 모든 사항을 고려할 때 개입이 정당화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나토가 체첸 문제로 러시아에 개입하거나 티베트 문제로 중국에 개입해선 안되는 이유는, 전쟁을 일으킬 경우 일어날 인적 손실 때문이다. 이것을 이중잣대로 생각해선 안된다.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개입하는 데 들 비용이 얻게 될 이익보다 더 클 것 같을 때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182쪽)


▶ (문화적 상대주의와 문화제국주의 논란) 우리는 도덕상대주의를 거부해야 한다. 문화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주장을, 자기 문화의 경계를 뛰어넘는 도덕적 추론을 가능케 하는 윤리관의 견지에서 만들어낼 수 있다. 

... 때때로 사람들이 독특한 문화적 관행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들 전체의 이익이 아니라 단지 소수의 이익에만 봉사하기도 한다. 아니면 그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는 법 없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해를 끼치기까지 하는데도, 변화를 거부하는 종교적인 교리나 관행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계속 살아남기도 한다. (184쪽)


▶ (외국의 극빈층을 도와야 하는 이유) 국가에 대한 근대적인 생각이 상상의 공동체에 근거하고 있다면, 우리가 다른 공동체의 일부가 된다고 상상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일례로 세계화는 국경이 가지는 도덕적 중요성을 재고하게 만들고 있다. 

... 단일 사회 내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일이 전 세계인 모두 간의 현저한 경제적 불평등을 제거하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둘 중에 어느것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을 경우에만 발생한다. 때로는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다 할 수 있다. (224쪽)

... 그렇다면 얼마나 많이 기부해야 하는가? 내 재산이 모두 없어질 때까지 기부해야 하는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기부해야 하는지 알아볼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세계에서 빈곤을 제거하는 임무가 고소득 국가에 사는 9억명의 사람들 모두에게 공정하게 배분돼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그들 각자는 얼마를 기부해야 하는가? 

선진국 사람들 중 대략 6억명은 성인이다. 따라서 향후 15년 동안 매년 성인 1인당 약 100달러를 기부한다면 밀레니엄 정상회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선진국의 평균 임금인 연간 2만7500 달러를 버는 사람에게 매년 100달러는 1년 소득의 0.4% 이하도 안 되는 금액이다.


▶ (각국의 기부/원조 행태) 3대 기부국인 미국, 프랑스, 일본은 성장을 촉진하고 빈곤을 줄이는데 가장 효과적일 나라에 원조하지 않고 자국의 전략적 또는 문화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나라에 원조한다. 미국은 중동, 이스라엘, 이집트 같은 우방에 원조액 중 상당한 금액을 할애한다. 일본은 유엔 같은 국제적인 모임에서 일본에 동조하여 투표하는 국가들을 선호한다. 프랑스는 자국의 예전 식민지 국가들에 압도적으로 할애한다. 

북유럽 국가들은 이런 패턴과는 아주 다르게 원조한다. 즉 가난하기는 하지만 주어진 재원을 오용하지 않을 바람직한 정부가 있는 국가들에 원조한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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