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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종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가 말하는 빈곤과의 싸움

딸기21 2007. 3. 3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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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의 종말 The End of Poverty: 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Time (2005) 

 제프리 삭스 (지은이) | 김현구 (옮긴이)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06-07-05

 



현존하는 인물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학교 최우등 졸업, 하버드대학교 최연소 정교수, 현재 프린스턴대학교 지구연구소 소장. 볼리비아 정부 자문위원,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자문위원을 지냈지만 미국과 IMF와 세계은행을 누구보다 비판하는 사람.

“절대 빈곤은 없앨 수 있다, 그것이 부국의 책무이며 우리 시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라고 외치는 사람.책 표지 앞날개에 제프리 삭스의 프로필과 흑백 사진이 나와 있다. 책의 편집이 깔끔한 것에 비해 사진의 질은 좋지 않지만 너무나 마음에 드는 얼굴.

곧 있으면 할아버지 급이 될 제프리 삭스의 얼굴은 참 좋다. 잘생겨서가 아니다. ‘진심’과 ‘진지함’이 얼굴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조지 소로스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이 있을 수 있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서 진심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었다. 그래서 ‘진심은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소로스는 내 마음을 움직였으니까.

삭스의 글은, 움직이던 내 마음을 한 곳으로 향하게 한다. 절대빈곤은 끝내야 한다고, 그것은 21세기 첨단의 시대, 번영의 시대, 세계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나의 의무라고. 잊지 않으려 마음먹었지만 자꾸만 마음에서 지워져가는 시에라리온과 가나의 그 아이들을 생각해야만 한다고, 절대빈곤을 벗어나 선진국을 향해 일로매진하는 동아시아 한 나라에 살고 있지만 적어도 한때는 우리도 타인의 원조를 받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금 내가 먹고 마시고 쓰는 것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일 수 있음을 늘 깨닫고 있어야 한다고.

얇진 않은데 너무 술술 읽혔다. 이 책은 제프리 삭스라는 상아탑의 경제학자가 어떻게 개발도상국의 빈곤 문제에 눈 뜨게 되고 상아탑에서 뛰쳐 나와 빈곤과의 싸움에 나서게 됐는지를 보여준다. 볼리비아 인플레이션 잡기, 폴란드와 러시아의 경제 시스템 바꾸기, 방글라데시와 말라위와 케냐 같은 가난한 나라들의 고통과 싸움 등등 삭스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공부하고 실천했던 것들이 이 책 안에 들어있다. 어찌 보면 자서전 같기도 한 이 책은, 지구촌을 돌아다니며 빈곤과 싸워온 한 학자/운동가/행정가의 인생이 그대로 들어있어 재미가 있고 감동도 있다. 경제적인 측면을 아주 쉽게 설명하는 것은 학자로서 선생으로서 그가 갖고 있는 재주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경험을 살려 구체적인 시간, 장소, 사람들, 프로그램들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제프리 삭스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틀 안에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그는 이것이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계획이고 이뤄야만 할 임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비현실적인 몽상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일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가 덜 좌파적이라고, 자본주의를 용납한다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어떤 논리를 내세우든, 살 수 있는데 단돈 몇 푼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살려야 한다. 에이즈 환자를 벌레 보듯 하는 사람들에겐 “그 병은 이제는 약만 있으면 충분히 지탱할 수 있는, 만성 간염 같은 질병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어야만 한다. “아프리카가 가난한 것은 사람들이 게으르고 유전적으로 모자라서가 아니라 기후가 혹독하고 환경 지리조건이 다른 지역보다 안 좋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나라들의 정부가 끔찍할 만큼 썩어서 원조 받은 돈을 뒷주머니로 챙기는 것이 아니라 부자 나라들이 기부한다 말만 해놓고 돈을 안 줘서 원조자금이 모자라는 겁니다”라고 진실을 알려야 한다.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도와야 한다. 내 주머니에서 단돈 만원 꺼내지 않으면서 “미국이 나빠” “원조같은 것으로 빈곤을 구제할 수 있겠어” 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다소는 양심 없는 짓이라고 본다. 돕지 않으면서 "굶는 이들을 구하긴 힘들어"라고 말하는 것, 해보지도 않고 패배주의를 말하는 것은 '현실적'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당장 우리는 50, 60년 전 어느 나라 착한 사람들의 원조 덕분에 이 정도 살만한 형편이 되지 않았는가. 미국의 흑인들은 버스 좌석에도 마음대로 못 앉게 만들었던 인종차별의 장벽을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삭스는 경제학 책을 벗어나 발로 뛰며 얻은 통찰력으로 기부원조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편견을 깬다. 오늘날 빈곤의 원인은 부국들에 의한 착취, 빈곤국 정부들의 부패, 국제기구의 비효율성, 빈곤한 사람들의 게으름과 문화적 한계 같은 것들 중 어느 하나 때문이 아니라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되어, 그리고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지리·환경·생태적 요인들이 합쳐져서 일어난 것이다.

삭스는 사례별로 빈곤의 원인을 의사처럼 ‘감별진단’한 뒤, 빈곤 국가와 지역에 대한 감별진단의 테크닉을 일반화시킨 이론으로 정리해낸다. 그리고 절대 빈곤과 싸우기 위한 스케줄, 프로그램, 할 일들을 구분해서 조목조목 정리해 읽는 이들을 설득한다. 원조가 펌프의 마중물이 되어 빈국들을 ‘빈곤의 함정(원시적인 수준의 자본축적조차도 가로막아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함정)’에서 끌어내 ‘번영의 사다리’에 한 계단이라도 올라설 힘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제발전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인류는 진보해왔다고, 계몽주의자의 신념을 다해 인간의 이성과 모럴에 호소한다.

진심은 항상 마음을 움직인다. 인류는 그런 진심의 승리를 과거에도 여러 차례 보아 왔다. 언젠가는 삭스와 같은 이들의 진심이 세상을 움직여 절대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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