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와리스 디리, 사막의 꽃

딸기21 2006. 6. 29.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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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Desert Flower (1998)
와리스 디리 (지은이) | 이다희 (옮긴이) | 섬앤섬 | 2005-07-30




재미있었다. 슬프고, 가슴 아프고, 두렵고, 즐겁고, 신나는 이야기. 소말리아 유목민 소녀가 늙은이와의 결혼이 싫어서 움막집을 나와 맨발로 사막을 건넌다. 모래먼지가 날리는 길을 상처투성이 발로 걸어서 모가디슈로, 런던으로. 소녀는 ‘우연히도’ 모델이 되고 유명해지고 돈을 번다. 


왕자님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신데렐라 스토리다. 우연? 와리스 디리는 자신의 행운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고 있다. ‘우연히도’ 모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소말리아의 사막에서 런던까지는 멀고 먼 길이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 남다른 인생을 살고픈 욕망, 싸울 줄 아는 용기와 담대함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아마도 험난한 사막의 삶이 그의 유전자에 새겨놓은 덕목일 것이다. 


‘아프리카 사막 유목민 소녀가 세계적인 슈퍼모델, 유엔 인권대사가 되기까지의 삶과 꿈’을 담은 자서전이다. 표지의 문구에는 ‘삶과 꿈’이라는 말이 커다란 이탤릭체로 쓰여져 있다. 여기 적힌 내용은 삶이고 꿈이다. 더 나은 생을 살고자 하는 꿈, 고통 받는 다른 여성들에게도 더 나은 삶을 주고자 하는 꿈. 와리스 디리의 용기는 사막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는 데에서 끝나지 않았다. 런던의 맥도널드 바닥에서 피가 고인 배를 쥐어짜며 걸레질을 할 때, ‘마리 끌레르’ 기자 앞에서 어릴 적 상처를 끄집어냈을 때, 유엔인권대사가 되어 인습과 싸우기로 했을 때에 오히려 빛을 발한 것이 와리스 디리의 용기다. 진정한 삶과 꿈. 


책은 유목민 소녀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아름답게 그리지 않는다. 책의 전반부는 사막의 힘겨운 삶, 특히 여성의 삶을 묘사하는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며칠씩 물을 찾아다녀야 하는 사막의 삶, 염소를 끌고 초원을 헤매는 어린아이의 고역, 물을 담기 위해 단단한 바구니를 짜는 여인의 노동 같은 것들. 그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와리스 디리는 고통과 환희를 기억에서 끄집어낸다.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 일을 하다보면 크고 둥근 사막의 하늘이 어두워지고 밝은 별이 떠오른다. 양을 우리에 몰아넣을 시간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이 별을 사랑의 별(비너스)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감추는 별이라고 부른다.” 


양을 감추는 별 밑에서 맨발로 뛰놀며 자란 아이는 뉴욕의 아파트에 사는 모델이 되어서도 그 사막의 촉감, 비오기 전의 냄새를 잊지 못한다. “나는 아프리카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는 말은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아프리카가 자신의 생명력의 근원이라고 그녀는 거듭 말한다. 사실인 것 같다.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재미있다. ‘동물의 왕국’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프리카에는 동물들도 살고 사람들도 사는데, 우리는 아프리카가 동물의 왕국인 줄만 안다. 그럼 거기 사는 사람들은? 동물들은 아프리카에도 살고, 다른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산다. 다른 곳에는 인간만 있고, 아프리카에는 동물만 있다. 희한한 영역구분. 그래서 아프리카 사람들을 만나 ‘동물의 왕국’ 이야기를 하면 미안해진다. 


소말리아, 아프리카의 뿔.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아니고 보츠와나도 아니고, 와리스 디리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 얼마나 가난하고 비참한 땅인가. 처참한 내전과 기근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나라. 내전, 가뭄, 폭격, 블랙호크다운, 알카에다. 


그 땅에 팔다리가 긴 모델같은 부족들이 살고 있다. 와리스 디리처럼 남자건 여자건 키가 180cm 이상은 되고 쭉쭉 뻗은 몸매에 그림같은 콧날, 반질반질한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학자들이 ‘elongated’ 라고 부른다는, 그 부족 말이다. 소말리아 출신들이 그래서 서구의 모델로 각광받는다는 것도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그리고 곧 내 살이, 내 성기가 잘려나가는 것을 느꼈다. 무딘 칼날에 쓱싹쓱싹 살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느낌을 말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누군가가 허벅지의 살이나 팔을 자르는 느낌과 비슷하다. 잘려나가는 부분이 온 몸을 통틀어 가장 민감한 부분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정신을 차렸을 때는 다 끝난 줄 알았지만 가장 끔찍한 부분이 남아 있었다. 안대가 벗겨지자 죽음의 여인 옆에 쌓인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들이 보였다. 가시로 살에 구멍을 여러 개 뚫은 다음 그 구멍을 희고 질긴 실로 엮어 꿰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내 다리는 움직이지 않도록 발목에서 골반까지 천으로 꽁꽁 묶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바위 쪽을 보았다. 마치 바위 위에서 가축을 도살한 것처럼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다. 잘려나간 내 살, 내 성기가 바위 위에서 가만히 햇빛을 받으며 말라가고 있었다.” 


이 책의 목적은 분명하다. 신데렐라 스토리 뒤에 숨겨진 저 엽기적인 여성에 대한 폭력의 실태를 고발하는 것이 검은 신데렐라의 의도다. 할례에 대해서는 여러번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책에서와 같은 적나라한 묘사는 처음이었다. 언론에서 할례를 다룰 때에는 끔찍한 부분을 모두 빼고 그냥 ‘할례’라고만 쓴다. 그것도 무슨 의식이라고, ‘례’라는 말이 들어간 저 용어에서는 본질적인 끔찍함이 사라져버린다. 겨우 다섯 살 어린 나이에 ‘바위 위에서 햇빛에 타들어가는 살덩이’를 봐야 했던 와리스 디리는 인생을 죄어오는 그 고통을 잊지 않는다. 소변을 볼 때에 10분씩 걸리고, 생리혈이 빠져나오지 못한채 복부에 고여 통증으로 마룻바닥을 기어다니게 만드는 그 고통. 


겨우 대여섯살 된 아프리카의 여자아이들이 깨끗한 흰 옷에 꽃장식을 달고 지나가는 걸 본 일 있다. 할례를 받으러 가는 거라고 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알겠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분이 남았습니다. 지구를 창조하신 알라 신입니다. 생명이란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때로는 잔잔하고 때로는 요동치던 그 수많은 강을 건널 힘과 용기를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알라 신은 아름다움과 사랑이 가득한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낙원 같은 우리의 별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길 진심으로 빕니다.” 


신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숱한 범죄에도 이렇게 외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신앙심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녀의 삶과 꿈에는 마음이 움직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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