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메리카vs아메리카

600km 걸어간 원주민들

딸기21 2011. 10. 2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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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개발에 항의하는 볼리비아 원주민 약 2000명이 걸어서 19일 수도 라파스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8월에 고향에서 나와 두 달 만에 라파스에 입성한 건데요.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환영해줬다고 합니다.
총 600km의 기나긴 여정이었습니다. 이 거리를 모두 행군한 사람은 1500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중간에 합류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라파스 시내에서는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지지자들이 모여들어서 시위대 규모가 수만명으로 불어났다고 합니다. 거리에서 볼리비아 국기와 손수건을 흔들며 박수를 치고, 축제분위기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사는 곳은 아마존 분지의 원주민 보호구역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3개 부족 총 5만명이 그 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부근에 있는 이시보로 국립공원과 대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를 지을 계획을 세웠습니다.
원주민들은 그렇게 되면 자기네들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외부인들이 들어올 것이며, 결국은 개발바람에 밀려서 살 곳을 잃게 될 거라고 반발했습니다. 환경단체들도 아마존 파괴에 반대했습니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도 이들의 요구를 일부 받아들여서, 일단은 도로공사 계획을 중단시켰습니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아예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랄레스 대통령도 원주민 출신입니다.
 
원래 이름은 후안 에보 모랄레스 아이마(Juan Evo Morales Ayma. 52)인데 볼리비아인들 사이에선 애칭으로 '에보'라고만 불린다죠. 볼리비아의 80대 대통령이자, 사상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입니다. 오로노키 지역 이사야위라는 지역의 원주민 노동자계급 출신이라고 합니다.
2006년 취임했을 때 원주민 출신이라는 점,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에 이은 좌파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죠. 안데스 산악지대 코카 재배 농민들을 옹호해 눈길을 끌기도 했고요. 취임 뒤에 토지개혁을 하고 핵심 산업부문을 국유화하는 등의 조치로 미국의 눈총을 받았습니다.

모랄레스 집권 뒤 원주민들의 기쁨이 컸던 것은 말할 나위 없죠. 국민 전반의 지지도도 높습니다. 2005년말 대선 때 지지율이 53.7%였는데 2009년 말 대선에서는 63%라는 더 높은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한껏 기대를 했던 원주민들은 모랄레스의 개혁이 아직도 미흡하고 원주민들을 충분히 배려해주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다보니 이번 원주민 행진이 마치 모랄레스에 대한 중간평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시위대가 출발한 뒤에 경찰이 강경진압을 하려다가 물의를 빚었습니다.
행진을 시작한 사람들은 볼리비아에서도 드물게 전통적인 생활을 고수하는 소수 부족들입니다. 그들 중 일부가 활과 화살을 들고 있었는데, 무기가 아니라 전통에 따라 상징적으로 들고 다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진압에 나서 폭력을 쓰고, 아이들에게 최루탄을 쏘고, 여성들의 입을 막는다며 테이프를 붙이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다가 국민들의 공분을 샀고 전국적인 관심사가 된 것입니다.

라파스에 입성한 원주민들은 대통령궁을 향해 가고 있는데, 경찰은 강제해산하지 않겠다며 도심 광장에서 대통령궁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주고 폭동진압병력을 철수시켰습니다. 정보장관은 “원주민들이 라파스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는 공식 논평을 냈습니다.
모랄레스는 원주민 대표들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했습니다. 여론을 의식해 뒤로 물러선 거죠.

볼리비아는 원주민 비율이 높습니다. 인구 1000만명 중 55%가 원주민이고, 혼혈인 메스티조까지 합하면 85%에 이릅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와 달리 원주민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던 건데요.

모랄레스에게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최대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전했습니다.

(후속 보도를 보니 도로 건설 문제를 주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약속한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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