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과학, 수학, 의학 등등

통섭- 지식의 대통합

딸기21 2005. 4. 28. 14:39
728x90

통섭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1998) 

에드워드 윌슨 (지은이) | 최재천 | 장대익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올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일찍이 유엔이 `물리의 해'로 정했고, 세계적으로 대대적 기념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올해 과학사에서 기억해야할 것이 또하나 있다. 바로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올해로 출간 30주년을 맞았다는 점이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양식도 생물학적, 유전적 진화과정을 통해 해명될 수 있다는 사회생물학은 윌슨의 저서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대표적인 ‘사회생물학자’로는 윌슨 자신과 함께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조지 윌리엄스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생물학은 영장류와 개미 등 `사회성 동물'에 대한 연구에 바탕을 두고 출발했지만 인간에게까지 생물학 규칙의 적용범위를 넓혔으며 궁극적으로 사회과학과의 접목을 추진했다. 국내에서는 윌슨의 제자로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를 사회생물학자로 꼽을 수 있다.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 지위에서 `동물의 일종'으로 끌어내려 진정한 이해를 도왔다는 찬사와 함께, 인간 본성을 유전자로 설명하는 환원주의라는 공격도 받았다. 윌슨과 같이 하버드대 교수로 있던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이 바로 윌슨-도킨스 진영에 맞서 맹렬한 싸움을 벌였던 인물들이다. 인간의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인간의 의식을 비롯해 문화적 차원의 모든 것이 `분자 수준'에서 결정된다고 할 수 있는가. 이는 생물학자들의 논쟁을 넘어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하다. 


`통섭(統攝)'은 `사회생물학' 이후 윌슨의 학문적 업적을 총괄하는 저술이다. 500쪽이 넘는 분량의 이 책에서 저자는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을 넘나들며 방대한 학식을 드러내 보인다. 이 저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통섭'이라는 말이다. 영어로는 Consilience, 저자의 설명으로는 19세기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에게서 가져온 개념이다. 라틴어 어원으로는 `함께 넘나듦'이라는 의미이지만 저자는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이론들을 연결, 지식을 통합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 저자 스스로는 이 consilience라는 단어가 흔히 쓰이는 단어가 아닌 덕에 의미가 여러갈래로 흩어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굳이 이 단어를 택했다 하고, 역자인 최재천 교수는 같은 이유로 `통섭'이라는 역시 생소한 한자어를 택했다고 밝힌다. 


책의 주제는 지식이 갖고 있는 `본유의 통일성'이다. 서구 학문의 근본 정신은 세계가 몇몇 자연법칙들로 설명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었고, 계몽사상과 서구의 근대는 그런 정신에서 나왔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되면서 전문지식은 점점 파편화되고 학자들은 자기 방에 틀어박혔다. 학문 분과들 사이의 벽을 깨는 것, 즉 지식의 `대통합'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윌슨은 `통섭'을 제안한다. 분자 수준의 미시구조에서 범우주적인 통찰, 그리고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인식까지, 이리저리 가로지르고 가지를 뻗어나가는 통섭의 방식을 통해 `하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에서 윌슨은 뇌과학의 최근 성과와 진화론의 여러 가설, 예술과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사례들을 들며 자신의 논지를 펼쳐 보인다. 단순한 학제간 연구를 넘어서는 ‘진리를 향한 총체적 방법론’을 제안하고 있지만 이 책을 읽는다 해서 그 방법론이 손에 잡히진 않는다. 오히려 책은 윌슨이 30년간 벌여온 `신비주의자들과의 싸움'을 총결산하며 자신의 입장을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더 주목할만하다. 한 구절로 책을 정리하면 '환원주의 비판에 대한 재비판'이라 할 수 있다. 


<총, 균, 쇠>로 퓰리처상을 받은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이 책을 "금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가 쓴 아름다운 책"이라 격찬했다는데, 문장은 매끄럽지만 내용은 도발적이다. 


“객관적 진리는 있다. 다만 그 진리를 찾는 과정 혹은 결과가 전체주의의 권능으로 귀결되지는 않을지를 우려할 뿐이다.” 


“우리는 알아야 하며 알게 될 것이다.” 


과연 윌슨은 계몽주의의 후계자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하고, 다문화주의와 상대주의를 논박한다. 그는 "인간은 (세상을 구성하는) 근본 입자를 찾으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면서 환원주의를 `인간의 본능'으로 격상시킨다. 


"뇌의 작동 메커니즘을 잘 알게 되면 인간 뇌들이 모여 만들어낸 세상도 더 잘 알게 될 수 있다. 그런데 환원주의가 왜 나쁜가." 


윌슨이 누차 강조하는 것은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이다. 인류의 유전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는 함께 진행되어왔다는 이 공진화 이론은 이미 학계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윌슨의 전작 에세이집 `본성을 찾아서'(한국어판 제목은 `우리는 지금도 야생을 산다') 등을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윌슨은 대표적인 환원주의자답게 문화의 기본 진화 단위로 ‘모방자’를 거론하는데, 도킨스의 밈(meme. 유전자 즉 gene에 상응하는 문화적 진화 단위)보다 발전시켰다고는 하지만 윌슨의 모방자와 ‘밈’ 간에 큰 차이는 (적어도 이 책에선) 눈에 띄지 않는다. 


학문간 벽을 깨고 자연과학의 성과를 인문학과 사회과학 쪽에서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 `통섭적 방법'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진리를 알 수 있으며 알아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가치관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어느 정도 유효할까는 논외로 하더라도, 문제는 윌슨이 주장하는 방식은 여전히 `환원주의적 통섭'이라는 것이다. 그는 "철학은 이제 과학이 되어라"라고 선언하고, "사회과학자들은 생물학 공포증에 걸려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당장 뇌와 마음의 문제만 해도, 진짜 `뇌 전문가들'이라는 뇌과학자들조차도 윌슨처럼 환원주의를 신봉하지는 않는다. 


스스로 `통섭적 방법'을 시범으로 보이기 위해 과학의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어,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알고 읽으면 물론 더 재미있겠지만 생물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한가지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훌륭한 번역이다.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는 없고, 누구나 에드워드 윌슨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최교수의 옮긴이 서문은 꼭 읽어보시길. `옮긴이 서문이란 무릇 이래야 한다'를 보여주는 유려한 문장에 깊은 이해와 고민이 담겨 있어 그 자체로도 훌륭한 하나의 에세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