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인샤알라, 중동이슬람

[이라크]알 마쇼우크의 '사랑의 성'

딸기21 2002. 10. 1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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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멜과 타리크와 나는 티그리스 강변을 따라 알 마쇼우크로 향했다. 
바그다드의 티그리스는 마치 서울의 한강변처럼 양 옆으로 제방을 쌓아 보는 재미가 없는데, 사마라 부근의 티그리스는 초지 사이를 자연 그대로 흐르고 있어 아주 멋졌다. 수천년전 세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을 낳았던 바로 그 강. 물 위로 새들이 많이 날았다.

알 마쇼우크는 뜻풀이를 하면 <사랑의 성(城)>이다. 오래전에 사막의 왕이 베두인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왕비가 될 아가씨는 황량한 초원에 살게된 것을 몹시 슬퍼했단다. 왕은 왕비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성을 새로 짓고, 티그리스 강을 건너는 다리를 놓아 왕비가 친정 식구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알 마쇼우크에서 티그리스 강까지는 너무 멀어보였는데, 옛날에는 강이 바로 앞으로 흘렀다는 설명을 들으니 수긍이 갔다.

알 마쇼우크는 역시 사담 집권 이후에 복원한 건물인데 옛 건물의 잔재도 남아 있었다. 자리를 뜨는 차에 입구의 관리인이 방명록에 서명을 해달라고 했다. 이역만리 떨어진 알 마쇼우크의 성터에서 나는 이라크인들의 행복을 빌었다.

타리크가 길거리 가게에서 수박모양의 멜론, 앞서 한번 설명했던 <밧데이흐>를 사다가 내게 주었다. 땀투성이 흙투성이가 된 손으로 껍질을 붙들고 먹었는데 손에서는 짠물이 흘렀다. 

바그다드로 돌아가는 길에 먼지바람이 심상찮더니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다. 나중에 서울에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이라크에서 무섭지는 않았느냐"고 많이 물었는데, 딱 한번 무서웠을 때가 있었다면 이 때였다. 진한 먼지바람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니까 봉고차 유리창 밑의 도로가 아예 사라져버렸다. 무서운 바람이었다. 
시속 140km로 달리던 자동차가 급정거했고, 순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모래바람은 이라크에 겨울을 불러온다. 이 날부터 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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