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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귄터 쿠네르트, '가정배달'

딸기21 2005. 1. 8.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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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들어선 길에서 Auf Abwegen und Andere Verirrungen
귄터 쿠네르트 (지은이) | 권세훈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1. 

거리 풍경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다. 아마도 평소보다 더 많은 짐차들이 도시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완벽한 교통 경찰관들에게나 눈에 띄었을 뿐이다. 고요한 새벽녘과 마찬가지로 매일 저녁 어둠이 깔리고 나면 그때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던 이 수많은 짐차들이 갑자기 이집 저집 앞에 멈춰서서는 상자나 궤짝 혹은 나무로 된 입방체를 내려놓은 다음 운전기사와 조수들이 그것을 들고 익숙한 솜씨로 급히 현관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어쨌든 처음에는 주목을 끌지 못했다.
가끔 그들은 그것을 질질 끌고 가는가 하면 심지어는 한 주택 건물에 열 개 이상을 나르기도 했다. 그래서 매우 늦거나 이른 시각에 길을 지나던 사람들은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으며 어떤 목적으로 운반되는지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느날 아침 이러한 사건을 놀라서 바라보던 사람들 중에는 프리드리히 W 슈말도 끼여 있었다. 그는 밤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로 그 차량을 보았다. 차에서 내려진 긴 상자들은 그가 사는 주택 안으로 운반되고 있었다.
계단에서 그는 배달인들로부터 짐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헐떡거리며 가쁜 숨을 그의 얼굴에 내뿜었으며 고통에서 오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을 뿐이다.
자신의 집 아래층인 이층에서 슈말은 열려진 문 뒤에 이미 많은 상자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더구나 그는 옆을 지나치면서 집주인의 얼굴에서 모호한 인상을 받았다. 땀에 젖은 그 얼굴은 희멀겋고 커다란 거품과 비슷했으며 새까만 두 개의 단추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포로 경직된 동공이었다.

2.

밝은 대낮에 슈말이 빵을 사러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 수위 마누라가 앞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길을 막았다. 그녀는 물이 묻은 두 손을 앞치마에 닦으면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느냐고 속삭이듯 물었다. 슈말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녀가 겁에 질려 거의 그의 귀에 갖다 댄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헬름브레흐트 씨가 시체들을 받았대요. 그것도 12개씩이나."
이 말을 통해 상자들이 불러일으킨 믿기 어려운 추측이 순식간에 증명되었다. 그러나 어째서 헬름브레흐트 씨가 세심하게 포장된 시체들을 집으로 배달시켰는지 슈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에 대해서도 수위 마누라가 설명해주었다. 
"배달시킨 게 아니에요. 그는 시체들을 받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가 직접 살해한 사람들이거든요. 내가 알아요!"
그녀는 다시 서둘러 무릎을 꿇고 머리를 펠트로 만든 걸레위로 숙인 채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슈말은 몇 번 더 물어보다가 어깨를 으쓱하고는 배고픔에 쫓겨 계단을 내려갔다.

3.

빵집에서는 제빵기술자의 부인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평소에 그가 음탕한 눈빛으로 훑어보던 그녀의 풍만한 육체는 오늘은 팽팽함이 사라지고 아픈 듯한 인상을 주었다. 이전에 생기가 넘치던 눈은 울어서 충혈되어 있었다. 조심스럽지 못한 그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그녀는 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의 남편이 간밤에 심한 발작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심근경색이었다. 그 원인으로 그녀는 더듬거리며 어떤 노파를 지목했다. "내 남편이 그 사람을 차로 치었어요. 벌써 오래 전의 일이란 말이예요!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어요. 도로가 비에 젖어 미끄러웠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지금 그들이 우리에게 그 시체를 가져왔지 뭐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전에 없이 날카로워졌다.
"묘지가 넘치기 때문이래요. 연금 생활자였던 엘자 니더 마이어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라는 거지요. 이것은 관공서에서 처리하는 방식과 똑같은 효력이 있어요. 여기에 화물 운송장이 있어요." 그녀는 흐느끼면서 종이를 흔들어보였다.
프리드리히 W 슈말은 당황하여 수많은 빵들의 부풀어오르고 입술처럼 금이 간 부 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에게 그 어떤 위로와 동정의 말도 일러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의 마음 밑바닥(가장 깊은 곳)에서는 야비한 만족감이 활개를 쳤다. 빵집 주인은 천벌을 받은 거야! 슈말은 하마터면 웃을 뻔했다. 말을 참느라고 그의 목구멍에서는 딸꾹질이 튀어나오려고 했다. 식량을 이용하여 이득을 챙기는 그는 천벌을 받은 거야!
그는 서둘러 상점에서 나왔다. 잰걸음으로 그는 길을 되돌아갔다. 자신이 사는 거리로 꺾어들면서 그는 부릉거리며 출발하고 있는 파란색의 냉동 챠랑을 바라보았다. 
슈말은 조용히 발걸음을 멈추었다. 차가 그의 곁을 지나갔다. 어둠침침한 운전석은 밖에서 잘 알아볼 수 없었다. 뇌졸중에 걸린 듯한 뺨, 부자연스럽게 반짝이는 눈, 재미 삼아 아치 모양을 만든 입가에 물고 피우는 궐련 꽁초 등이 보였다. 그러한 희미한 움직임은 옆을 지나쳐 사라져갔다.

4. 

사람들이 이웃집 앞에 모여서 고개를 움츠린 채 어떤 창문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슈말은 그곳으로 40개이 상자가 운반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그의 집은 이구석 저구석 할 것 없이 꽉 차 있을거야."
또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저 위에는 더 이상 빈자리가 없어. 우체국장은 벌써 화장실에 앉아 있대." 어떤 나이 든 남자는 밑에 서 있는 사람들 중에서 슈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을 총으로 쏠 때 그는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그것도 손수 해치웠지. 그들은 전쟁에 신물이 났지만 우체국장은 딴판이었어. 당시에 그는 전혀 그러지 않았어......"
슈말이 앞에다 대고 조용히 물어보았다.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방은 어깨를 가벼게 들어올리고는 평상시의 목소리로 말했다.
"배달된 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아무도 정확히는 몰라요. 어제는 어떤 남자가 시체 조각들을 쓰레기통에 쑤셔박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어요. 문제가 된 것은 어떤 여자의 시체 조각들이었답니다. 그는 집이 탐나서 그녀와 결혼했었거든요."
"그가 그녀를 죽였다고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라요......" 나이 든 남자는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빠져나갔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른 사람들도 흩어졌다. 슈말은 집에 들어서면서 배달인들이 수신인의 책임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또한 시체를 넘겨받을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죄가 얼마나 커야 할까?
이제까지 알려지지 안은 종류로서 슈말의 기를 꺾는 정의의 형평성이 여기에 작용하고 있었다. 만약에 오류가 발생하여-정의는 항상 오류를 수반하기 때문에 이것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전혀 죄가 없는 사람이 잘못 전달된 화물을 받고 충격을 받아 죽기라도 한다면 누가 숨이 끊긴 그 육체를 받을 것인가?
마음이 편치 않은 상태에서 슈말은 소시지를 끼워넣은 빵을 집어삼켰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언짢은 생각에서 벗어나 약혼녀에게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녀의 상냥한 얼굴이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리웠다.

5. 

도중에 그는 그녀에게 줄 꽃을 샀다. 그녀가 사는 거리에 도착했을 때 서쪽 하늘에는 지붕의 실루엣 위로 자줏빛 석양이 남아 있었다. 거리는 벌써 시야를 먹어치우는 어둠 속에 높여 있었다. 슈말이 빠른 걸음으로 건물에 도착했을 때 그 앞에는 어떤 배달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유행에 맞는 양철로 된 상여가 몇 안 되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 섬뜩하게 번쩍였다.
프리드리히 W는 계단을 이미 반쯤 올라갔을 때 앞서가던 배달인들의 가쁜 숨소리를 들었다. 게다가 퀴퀴한 향내와 방부제와 그에게 커다란 불쾌감을 안겨준 성분이 뒤섞인 냄새가 풍겨왔다. 그래서 그는 종종걸음으로 가능한 한 빨리 옆을 지나쳐 올라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잽싸게 길을 막아서서 슈말은 그들과 상당히 작은 상자 뒤를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 계단씩.
마침내 그들은 그의 약혼녀 펠리치아 비르바르크가 사는 층에 도달했다. 프리드리히가 비르바르크 양 집의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문 쪽으로 밀고 들어가기 전에 그들 중의 한 남자가 선수를 쳤다.
프리드리히 W 슈말은 깜짝 놀랐다. 꺼림칙한 느낌이 들더니 갑작스러운 탈진처럼 온몸에 퍼져나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나며 발로 계단을 더듬었다. 두 걸음, 세 걸음 혹은 두 계단, 세 계단 밑으로.
그는 갑자기 열린 문 안쪽에 서 있던 펠리치아의 얼굴을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이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람들이 자기에게 무엇을 가져왔는지를 알아챈 그녀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그녀의 눈과 콧구멍 뿐만 아니라 꽉 다문 입은 수심이 가득했고 낡은 무성영화에서나 볼 수 있듯이 짙은 분장을 한 살아 있는 가면과 매우 비슷했다. 이처럼 현실에서 잘라낸 형상을 마음에 품고 그는 아무도 모르게 슬며시 계단을 내려갔다.

6.

이 형상은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리움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래서 슈말은 밤 근무를 끝내고 펠리치아에게로 달려갔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를 맞이했다. 언제나처럼 쾌활하게 그녀는 그를 진심으로 껴안았으며 그의 모자를 거울이 달린 옷장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그에게로 다시 몸을 돌린 그녀는 멈칫하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어디가 아프냐고 걱정을 하며 그녀는 그를 거실로 데려갔다 그녀는 곧 차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슈말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볼멘 소리로 물었다.
"그것을 어디에 뒀어?"
"무엇을요? 어디라니요?" 그녀는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프리드리히는 펠리치아가 방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그녀의 몸을 꽉 붙잡았다.
"관 말이야. 그저께 도착한 작은 관!"
펠리치아의 얼굴은 흥분하여 벌겋게 상기되었다.
"부끄럽지도 않아요?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리고 그녀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슈말이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와 몸을 돌리려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좋아, 당신에게 아이가 있었군. 당신을 비난하지는 않겠어. 그러나 왜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나는 당신을 돕고 싶을 뿐이야. 당신은 하지만 괴로워했겠지......" 펠리치아는 그를 단숨에 밀쳐내고 당황하여 소리쳤다.
"연극은 집어치우기로 해요!" 프리드리히가 다시 아이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을 때 그녀는 반항적인 태도로 머리를 쳐들었다.
"당신이 정 알고 싶다면 말하겠어요. 내가 아이를 난로에 넣고 태워버렸어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벌써 오래된 일이에요. 내 집에 묘라도 만들어야겠어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그녀는 그에게로 다가가 품에 안기려고 했다. 하지만 슈말은 그녀를 밀어냈다.
그녀는 홍채가 희미하게 빛나는 눈으로 그를 밑에서 올려다보았으며 곧 끓는 물에 차를 타기 위해 부엌으로 갔다. 그녀가 조심성 없이 요란하게 그릇이 맞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동안 프리드리히는 소리 없이 집을 빠져나왔다. 그는 죄를 지은 사람들 뿐인 주변에서 죄가 없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7.

다시 하루가 지났을 때 대문 앞에 서 있는 짙은 녹색의 다목적 차량이 그의 눈에 띄었다. 그 차는 아무런 표지판도 달고 있지 않았다. 그 차량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는 건물 안으로 들어와 피곤에 지쳐 난간에 몸을 의지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가 자신의 집으로 통하는 층계참을 꺾어들었을 때 퉁명스럽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의 이름이 적힌 문패가 붙어 있는 문 앞에서 배달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가늘고 긴 상자가 놓여 있었다.
그들은 그의 발소리를 듣고는 그에게로 얼굴을 돌렸으며 무표정한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을 주목하는 시선 속으로 계속 올라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그는 자신의 집 문을 지나치려는 확고한 의도에서 발을 들어올렸다. 그는 우연히 들른 방문객인 척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하지만 여기에 처음 온 듯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그가 문을 막 지나치려고 했을 때 운전기사가 그를 불러세우고는 프리드리히 슈말이 어디에 사는지 아느냐고 물었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W는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름을 듣고 보니 매우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무죄를 확신했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두려워한 오류가 발생한 것이었다.
알지도 못하는 시체를 집 안에 들여놓고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그는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한 태도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때 배달인들 중의 한 사람이 상자의 머리 부분에서 뚜껑을 끌어당겼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겨 몸을 굽힌 슈말은 펠리치아 비르바르크가 못에 박힌 채 누워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영원과 같은 한 순간이 지난 후 그는 다시 몸을 펴고 열쇠를 꺼내서 문을 열고는 천천히 안으로 사라졌다. 배달인들은 말없이 상자를 들고 슈말을 따라갔다. 운전기사는 명단을 펼치고 만족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름 하나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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