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여행을 떠나다

[2000 가을, 홍콩] 친절한 홍콩사람들

딸기21 2000. 10. 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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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비를 대신 내준 여행사 직원, 잔돈을 치러준 출근길 아가씨

다른 곳을 여행해보지는 못했지만,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홍콩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일 겁니다.
홍콩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 전철역에서 호텔까지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를 몰라 한참 헤맸습니다. 전철역 안 지도앞에서 지나가는 아가씨를 붙잡고 무작정 호텔 이름을 대면서 물어봤는데 이 아가씨가 마침 어느 여행사의 직원이었습니다. 버스 정류장까지 안내해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버스 기사에게 저의 목적지를 얘기해주더니 차비까지 대신 내주는 겁니다.
더 놀라운 일은 버스에서 내려서 일어났습니다. 운전기사의 지시(?)에 따라 버스에서 내리는데 어떤 멀쩡한 총각이 호텔까지 저를 데려다주는 겁니다. 좀전의 그 아가씨가 하는 말을 듣고 친절하게 안내해주기로 한 것인지, 어떤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호텔 문 앞까지 그 청년 덕분에 헤매지 않고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상당히 젊어보였던 모양이죠? 이 청년이 제가 혼자서 홍콩에 놀러왔다고 하니까, "Brave young Korean lady"라고 하는 겁니다. 아무리 봐도 그 청년은 저한테 'young'이라고 할만한 군번은 아닌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로 인해 홍콩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1000점'이 됐답니다. 또 아침식사를 했던 식당에서는 제가 잔돈을 못 찾고 멍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까 출근길인 듯이 보이는 어떤 아가씨가 50센트를 대신 내줬습니다. (갑자기 웬 '거지 여행' 분위기..)

☆ 지도를 그려준 부부와 트램에서 따라 내린 청년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밤에 트램을 타고 호텔에 돌아가다가 정류장을 지나쳤는데 한 젊은 부부가 지도까지 그려가며 트램 기사에게 이야기를 해준 덕분에 무사히 호텔에 올 수 있었구요. 그 다음날은 아예 트램 안에서 옆에 앉아있는 청년(실은 남자애)한테 미리부터 호텔 이름을 얘기하며 제가 내릴 정류장이 어디인지 물었습니다. 제대로 잘 내렸는데, 호텔이 어느 방향에 있는지를 잘 모르겠는 겁니다. 열심히 두리번거리는데, 누가 저를 탁 치더군요. 아까 그 청년이 제가 헤맬까봐 따라내린 겁니다! 이로써 또다시 +1000점! 

☆ 일본인 2세 전화교환원

센트럴의 국제금융센터(IFC)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분수 앞에 앉아 있던 한 아가씨가 저한테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습니다. 제가 일본인 관광객인 줄 알았나봐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서 둘이 한동안 신나게 떠들었습니다.
이 아가씨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전화교환원으로 일한다는데 홍콩에서 태어난 일본인 2세입니다. 그러니 국적은 어디까지나 중국인 거죠. 일본어 시험을 보러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서울을 방문한 얘기도 해주더군요. 이 아가씨가 홍콩에서 쇼핑을 하려면 어디를 가라는 둥 충고를 많이 해줬는데 제가 쇼핑을 안 다녔기 때문데 별 도움은 되지 못했습니다.

☆ 육교 위의 검은 여자들

홍콩에서 제가 가장 놀랐던 것 역시 IFC 앞에서였습니다.
센트럴이라고 하면 홍콩섬의 가장 중심부입니다. 고층건물들이 늘어서있는 최고의 번화가죠. 그런데 길다란 육교 위에 피부색이 가무잡잡하고 눈이 커다란 여자들 수백명이 앉아있는 거였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얇은 비닐조각이나 신문지 따위를 깔고 앉아서 먹고 마시고 수다떨고, 혹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남자는 안 보였습니다. 대체 뭐하는 거냐고 그 중 한 명에게 물었습니다. 알고보니 다들 필리핀에서 온 노동자들인데 주로 가정부 일을 하는 여자들이라고 합니다. 홍콩이란 도시가 워낙 좁은데다가 놀만한 곳도 없고 돈도 없다보니 휴일(마침 그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이 되면 삼삼오오 거리로 나와 육교 위에 진을 치고 시간을 보낸다는 설명입니다. 
페리를 타기 위해 부두에 내려가는데, 지하보도에도 필리핀 여자들 수백명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안돼 보이기도 하고, 이것이 세계화의 두 얼굴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 산책로에서 만난 동남아 남자

구룡반도의 Waterfront Promenade를 거닐고 있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얼핏 보기에, 동남아 노동자같았습니다. 그런데 같이 있던 백인 남자를 가리키면서 자기 사촌이라고 하더군요. 이들의 정체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굉장히 반가와하더군요. 한국에 가봤다나요. 둘다 굉장히 심심해하고 있던 차에, 저같은 귀엽고 이쁘고 참신한 사람을 만난게 기뻤나봅니다. 서울 얘기를 한참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영어를 못 하는데 제가 영어를 참 잘 하는게 신기하다고 하더군요. (실은 저 영어 하나도 못하는데...)
홍콩을 돌아다니며 느낀 건데, 정말 국제화돼있는 도시이다보니까 어느나라 사람들인지를 통 모르겠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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