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나의 미카엘

딸기21 2004. 4. 26.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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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My Michael 

아모스 오즈 (지은이) | 최창모 (옮긴이) | 민음사 | 1998-09-30


책을 읽으면서 마구마구 흔들려버릴 때가 있다. 책 속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혹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머리 속에 뒤죽박죽 되면서 이것이 소설속의 이야기인지 혹은 나의 이야기인지, 현재의 이야기인지 과거의 경계선이 모호해져버리는 듯한 느낌. 


이것은 ‘공감’과는 좀 다른 경험인데, 소설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끄덕 하게 되는 것에서 그치지를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과 나를 동일시하는 단계를 넘어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어버리는 그런 상태. 기분이 좋다 나쁘다 어느쪽인지조차 알수 없게 되어버리는 상태, 이성도 감성도 엉망으로 엉켜버리는 그런 상태. 그래, 이건 블랙홀이다. 


‘나의 미카엘’. 이 제목은 아주 단순하게 들리는가 하면, 또 몹시 심오하고 어지럽게 들리기도 한다. 이 제목은 몹시도 흡인력이 있었고, 나는 블랙홀에 빠지듯 이 소설에 빠져서 한동안 어둠 속을 방황했다. 물론 나의 방황은 어디까지나 ‘마음 속의’ 것이었기에 일상은 일상대로 진행되어 나갔고, 둘 사이의 괴리감은 나의 일상에 아무런 장애를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대해서 생각할라치면 나는 항상 어떤 부유감, 암흑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미카엘. 타인의 존재를 송두리째 가져버리고자 하는 욕망, 그 사람의 존재는 물론이고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까지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 피터 폴 & 메리의 노래 중에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이라는 곡이 있다. 우리나라에선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라는 노래로 번안해 불렀었다. 김광석의 곡은 세상에 대한 삐딱한 시선을 경쾌한 곡조로 표현한 것이었지만 원곡은 슬픈 노래다. 


저 노래의 한 구절. ‘I gave her my heart but she wanted my soul’. 신파조로 표현하면 ‘정 주고 마음 주고 사랑도 줬지만’이 되겠다. 바로 저 상태, 마음을 주었는데 영혼까지 달라 하는, 그런 것이 소설의 주인공 한나의 상태다. 


아모스 오즈,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작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피스 나우(Peace Now)’를 만든 사람, 팔레스타인 탄압을 중단하라는 모든 종류의 서명에 꼬박꼬박 이름을 올리는 지식인.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오즈의 그런 명성은 잠시 잊어야 한다. 책의 배경은 예루살렘이지만 사실 지리적 배경은 어느 곳이어도 상관 없다. 게다가 책의 줄거리를 요약할 수도 없다. 오즈의 탁월한 감각이 돋보이는 이 미묘한 소설은 ‘스토리’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책이기 때문이다. 

 

건국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이스라엘, 한나는 미카엘을 만나 사랑하게 되고 두 사람은 결혼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살아간다’. 미카엘은 공부를 하고 한나는 살림을 한다. 한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공허감에 방황하고, 미카엘을 달달 볶는다. 이것이 이 책의 ‘요약된 줄거리’의 전부일 것이다. 


극적인 요소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두 사람의 사랑은 항상 드라마틱한 요소를 안고 있다. 한나의 격정, 한나의 사랑, 미카엘의 평온함, 미카엘의 사랑. 어쩌면 두 사람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합된 두 사람의 인생을 힘겹게 ‘살아낸다’. 나의 마음과 머리는 방황했고, 나의 일상은 일상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누가 자기의 마음 속에 한나와 미카엘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은 한나와 미카엘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고, 어떤 종류이든 격정을 거부한채(혹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자기최면을 걸어버린채로) 살아가는 나, 일상을 어떻게든 붙들어매어보려는 나, 하지만 마음 한귀퉁이의 공허한 공간을 발견할 때 사정없이 흔들려버리는 나를 직시하게 되는 것이다. 

 

한나와 미카엘이 ‘현대인의 갈등과 공허감을 상징한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중세인에게, 혹은 고대인에게 저런 공허감이 없었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오만일 터이니까. 오즈의 이 책은 칼날처럼 마음을 후벼팠고, 나는 책장을 덮으면서 생채기난 마음도 함께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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