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번역이 나쁜 '좋은 책', <추악한 전쟁>

딸기21 2001. 10. 2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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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전쟁 Unholy Wars

존 K. 쿨리 (지은이) | 소병일 (옮긴이) | 이지북 | 2001-10-13

 

 

저널리스트 출신의 아프가니스탄 전문가 존 쿨리가 지난 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을 분석해놨다. '반소련'을 기치로 내세운 미국의 각종 '공작'과, 결국 그것을 씨앗으로 해서 자라난 이른바 '국제테러리즘 세력'의 역학관계를 아주 잘 그려낸 역작이다. 

자료도 풍부하고 생생하며 아주 재미있다. 표현이 간결하고, 읽기에도 쉽다. 사실 위주로 전달돼 내용이 쏙쏙 들어올 뿐더러, 시각도 비교적 공정하다. 미국 테러참사와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이렇게 잘 정리해놓은 책도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5천만의 교양도서로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문제는 번역이다. 최소한의 성의조차 보이지 않는 황당하고 거지같은 번역. 


고려대 철학과 박사과정에 있다는 소병일이라는 사람이 번역을 한 것으로 책 표지에는 나와 있는데, 대학원생들이나 학부생들에게 분량분량 나눠서 번역을 하청을 줬는지 모르겠지만 표기법이 몽땅 틀리고 일관성조차 없다. 챕터마다 같은 인명, 지명이 각기 다르게 표기돼 있는 것은 물론, 한 페이지 건너씩 다른 표기법이 등장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이 되려나.

 

예를 들면

 

부르하누딘 랍바니/라바니/로바이/라바이(독자들을 상대로 장난하나?)
아흐메드 샤흐 마수드/마소드/마소우드/마오우('마오우'...번역자는 눈알이 두개 맞나)
낭가하르/난가르하르
헤크마티아르/하크미야르(도저히 같은 이름이라고는 볼 수 없다)
도스툼/도스톰(차라리 이건 애교 수준)
나지불라/나지블라(같은 페이지에 서로 다른 이름으로)
라호르/라홀/라호레
카이버패스/카이바르 고개
마자르 이 샤리프/마자리 샤리프/마자르 이 샤르프/마자르 이 샤리크
랭글리/랑리(CIA 본부가 프랑스에 있나?)
바루치스탄/발루치스탄을 몽땅 혼용해놨다.

더 황당한 것은, 이미 국내 언론 등에 숱하게 인용돼 널리 알려진 지명조차 제멋대로 표기해놨다는 점이다. 사마르칸트는 어이없게도 사라르칸트/아마르칸트로 표기돼 있고, 키르기즈스탄은 키르지스탄, 체첸은 체첸야, 러시아의 신문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는 '콘소몰스카야 프라다'(무슨 명품 광고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로 표기돼 있다. 이란의 수도 Tehran은 테헤란도, 테란도 아닌 테흐란으로 써놨다.
출판사에서 최소한 교정작업 정도는 해줘야 되는 것 아닌가. 

영어를 그대로 직역해서 독자들의 우리말 감정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요즘 번역자들의 고질병이니 그렇다 치고, 이렇게 무성의하게 만들어진 책도 참 드물 것이다. 책장사는 제발 좀 양심적으로 했으면 한다. 아니면 아예 다른 장사를 하던가. 

번역자도 마찬가지다. 번역을 끝까지 할 자신이 없다면 포기하든가, 전문번역자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을 이슬람동포단으로 번역할 정도로 이슬람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어째서 이 책을 번역할 무모한 용기를 냈던 것인지.

제목에 대해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국내판 제목은 '추악한 전쟁'인데, 원제는 Unholy War다. 정확히 말하면, '성스럽지 않은 전쟁'이다. 성전, 즉 Jihad를 패러디해서, 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미국의 전쟁'을 설명하고 있다. '추악한 전쟁'은 그야말로 한국식으로, 우리나라의 출판사가(혹은 번역자가) 조금이라도 센세이셔널하게 보이기 위해 지어붙인 제목이다. '추악한 전쟁'은 Dirty War를 뜻하는 것으로, 개념 자체가 완전히 다른데 이런 식으로 갖다붙이다니. 나를 분노하게 만든 것 중의 하나다.

어쨌든, 책은 대단히 대단히 재미있다. 흥미진진 그 자체다. 진작에 이 책을 읽고 기사를 썼으면 좋았을 것을.

 


[딸기마을에 주시기가 올려놓은 서평] 결코 성스럽지 않은 전쟁

 

쿨리라는 미국 저널리스트(영국이던가?)가 쓴 '추악한 전쟁'이란 책을 방금 읽었다. 원제는 UNHOLY WAR 즉 성전을 뒤집어 제목으로 삼았다. 결코 재미있거나, 흥미진진하거나 분노로 손을 불끈 쥐게 하거나 하진 않지만, 전국민 필독도서 아니 지금 전세계 필독도서가 있다면 바로 이책이 될거다. 
아프간에서 벌어진 냉전시대의 괴물이 어떻게 추악한 테러리즘을 낳게 되었는지 지루하고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책을 읽다보면 정말 얽히고 설킨 분노와 폭력의 악순환이란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20세기가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폭력과 비이성의 시대였는지, 특히 미국 그리고 소련이 만들어낸 냉전이 얼마나 냄새나는 추악한 전쟁이었는지 알수 있다.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 지금 마치 악의 화신인양 표현되는 그들의 아버지가 사실은 프랑스의 첩보단체, 영국의 무기시장과 용병시장, 잇속챙기기 바쁜 파키스탄의 독재자, 이란의 어리석은 민족종교주의, 멍청한 소련의 냉전사고와 전술, 극악한 이스라엘의 폭력,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 CIA내부의 폭력 극우주의자들이란 사실을 이 책은 시시콜콜한 자료와 (정황)증거로 잘 보여주고 있다. 
비극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79년 소련은 점증해가는 아랍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아프간을 무력으로 점령한다. 이에 미국은 자신들의 베트남의 실패를 반복하고 있는 소련에 대해 쾌재를 부르며 자신들은 파키스탄을 통한 대리전(은밀한 무기 공급과 심리전)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무기들이 통제없이 뿌려지고, 아프간은 마약과 폭력의 끊임없는 나락으로 빠진다. 
비단 미국뿐 아니라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던 영국, 프랑스, 이란, 파키스탄, 이집트등등의 나라들이 잇속을 챙기기 위해 이런저런 폭력을 조장하게 되고, 수많은 더러운 눈먼 돈과 무기들이 이땅에 뿌려진다. 소련은 마침내 나락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프간을 버린다....남는 것은? 미국 CIA 교본에서 배운 가장 잔인한 살인기술과 가장 위협적인 폭발기술, 프랑스 첩보대로 부터 배운 더러운 심리전, 소련병사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장된 마약거래망, 전쟁용병을 모집하기 위해 조장되고 왜곡된 이슬람주의, 검은돈이 오고가는 금융망 그리고 무엇보다 남겨진 수많은 무기들.... 
아프간이 겪은 그리고 겪고 있는 정말로 추악한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탈레반과 빈 라덴이 나쁜놈들인가 아닌가, 혹은 미국의 공습은 필요악인가 아닌가하는 단순한 구분으로 현재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아프간과 이슬람 테러리즘은 1,2년 동안 생긴 문제가 아니다. 빈라덴으로 추측되는 쌍둥이 빌딩 피습은 극악한 테러임에 틀림없지만 결코 미국이 주장하는 복수의 '성전'을 정당화해주지 않음을 이책은 웅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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