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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축구, 그 빛과 그림자

딸기21 2003. 8. 2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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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그 빛과 그림자 El Football A Sol Y Sombra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 유왕무 (옮긴이) | 예림기획 




예정된 전략, 효과적인 전술로 우리 전투 함대는 방심한 적군을 놀라게 하면서 진군을 시작하였다. 완전 초토화 공격이었다. 포병은 포탄을 받아들었다. 숙련된 솜씨로 발사 위치에 올려놓은 다음, 마지막 한 방을 준비했다. 결국 대포 한방으로 지옥문을 지키는 머리 셋 달린 개를 처치하면서 공격을 마무리지었다.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요새의 문지기는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사형집행인은 환호하는 관중들 앞에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전쟁의 언어)

우크라이나의 한 기념비는 1942년의 디나모 키에프 선수들을 추모하고 있다. 독일 점령시에 그들은 홈 구장에서 히틀러의 대표팀을 격파하는 미친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경고를 받았었다: 만약 너희들이 이기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들은 공포와 허기에 떨면서 져줄 것을 약속하고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은 당당해지고 싶은 열망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열한명의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 벼랑 위에서 유니폼을 입은 채로 사형당했다.

스페인전쟁 당시, 두 개의 팀은 민주주의 저항의 상징이었다. 프랑코 장군이 히틀러, 무솔리니와 팔짱을 끼고 스페인 공화국을 공격할 때 바스크 대표팀은 유럽을 순회하고 있었고, 바르셀로나 클럽은 미국과 멕시코에서 경기를 했다. 바스크 정부는 에우스카디 팀을 프랑스와 다른 나라로 파견해 현사태를 알리고 재원을 마련하라는 임무를 맡긴 것이다. 동시에 바르셀로나 클럽은 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1937년이 흘러갔고, 마침내 바르셀로나 클럽의 사장은 프랑코의 총탄에 쓰러지고 말았다. 양팀은 축구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벼랑에 몰린 민주주의의 화신이 됐다. 

레알 마드리드, 이 팀은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항상 사람들의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곤 했다. 프랑코의 독재체제는 난공불락의 훌륭한 대사관을 발견한 것이다. 라디오를 통해 전해지는 골 소식은 국가인 '태양을 향하여'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승리의 나팔소리였다. 프랑코 독재가 아직 만연해 있을 때 레알 마드리드의 사장 산띠아고 베르나베우는 클럽의 사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는 국가에 봉사하고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국민들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1958년,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알제리는 축구대표팀을 조직함으로써 처음으로 조국의 색채가 담긴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알제리는 식민국가의 힘에 봉쇄당했기 때문에 오직 모로코하고만 경기를 할 수 있었다. 모로코는 비슷한 죄목으로 FIFA와 관계를 끊은 상태였다. FIFA는 알제리 대표팀에게 모든 문호를 닫아버렸다. 프랑스 축구계는 선수들의 시민권을 박탈할 것을 법령으로 명하여, 죄값을 치르게 했다. 결국 그들은 다시는 프로선수로 활동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알제리가 독립을 쟁취하고 나니 프랑스 축구는 자국 관중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선수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었다.  (깃발이 된 축구공)

38년 월드컵 때였다.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브라질이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식으로 운명을 걸고 한판 승부를 벌였다.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삐올라가 마치 총이라도 맞은 듯 갑자기 푹 쓰러졌다. 유일하게 살아있는 그의 손가락 하나만이 브라질 수비스 도밍구스 지 귀아를 가리키고 있었다. 스위스 주심은 전적으로 그를 믿고 휘슬을 불었다: 페널티. 브라질 선수들이 하늘에 대고 울부짖는 사이 삐올라는 먼지를 훌훌 털면서 일어났고, 조세뻬 메아자는 공을 사형 집행 지점에 올려놓았다.

메아자는 팀의 멋쟁이였다. 작은 키에 사람을 홀딱 반하게 만들 정도로 얼굴에 화색이 도는 우아한 페널티 포병 사수는, 마치 마지막 클라이막스의 투우사처럼 고개를 번쩍 치켜들어 골키퍼를 유인했다. 그의 발은 유연성이 있고, 손처럼 재주가 있고 영리해서 절대로 혼동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브라질 골키퍼 또한 페널티킥의 명 수문장이었고 본인도 그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마침내 메아자는 공을 차려고 달려갔고, 막 공을 차려는 순간 그만 바지가 흘러내리고 말았다. 관중은 망연자실 넋을 잃었고 주심은 휘슬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러나 메아자는 주춤거리거나 멈추지 않고, 한 손으로 바지를 움켜쥐고서 웃음으로 완전히 무장해제된 골키퍼를 일거에 격침시켰다. 그것이 바로 이탈리아를 결승에 올린 골이었다.  (메아자의 골)

친애하는 에두아르도:
과거 산 로렌소 구장 자리에 세워진 까르푸 수퍼마켓에 얼마전 간 일이 있었다네. 어릴 적 나의 영웅이었고 네 시즌 연속 산로렌소의 득점왕이었던 호세 산필리뽀와 함께 갔었지. 우리는 냄비와 치즈, 줄줄이 소시지로 둘러싸인 곤돌라 사이를 걸어갔다네. 그런데 계산대로 가까이 가자 산필리뽀는 갑자기 팔을 열어젖히면서 나에게 말했지. "바로 이 곳에서 치른 보까와의 경기가 생각나는군". 그는 통조림과 소고기, 야채를 가득 실은 수레를 잡고 있는 뚱뚱이 아줌마 앞으로 가로지르며 이렇게 말했네. "역사상 가장 빠른 골이었지".
그는 마치 코너킥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정신을 집중하고, 나에게 얘기했다네. "그 당시 막 데뷔한 5번 친구에게 말했지.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골 에어리어 쪽으로 내게 힘껏 공을 차게나, 괜찮을테니까 흥분하지 말고 차란 말이야.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았고, 깔데비야라는 그 친구는 너무 놀라 이렇게 생각했겠지. '만일 내가 그렇게 안 차면 어찌될까' 하고 말이야".
그리고 산필리뽀는 나에게 마요네스 통에 들어있던 밧데리를 가리켜 소리쳤지. "바로 여기로 공이 온거야!"
쇼핑 나온 사람들은 놀라서 당황하며 우리를 쳐다보았어. "공은 센터 뒤쪽에 떨어졌고 나는 앞으로 밀치고 뛰어들어갔는데 공이 나를 살짝 비껴 나서 저기쯤, 저기 보이지? 바로 저기 쌀이 있는 곳쯤에 굴러가고 있었지". 그는 나에게 진열대 밑을 가리키고는 푸른색 상의와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토끼처럼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네.
"나는 공을 힘차게 찼고, 그리고는, 뿜!" 그는 왼발 슛을 날렸지. 우리 모두는 30여년 전에 골문이 있었던 계산대 쪽을 보려고 몸을 돌렸고, 면도 종이와 라디오 밧데리가 있는 바로 그 곳, 저 위로 공이 골인되는 듯한 것을 느꼈다네. 산필리뽀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기뻐했지. 손님들과 계산대의 아가씨들도 손이 부르트도록 힘찬 박수를 보내주었다네. 나는 거의 눈물이 나올 뻔했지. '갓난아이' 산필리뽀는 1962년의 바로 그 골을 재연한 것이었다네.  (산필리뽀의 골)

60년대 말 시인 호르헤 엔리께 아도움이 오랜만에 에콰도르에 돌아왔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끼또(에콰도르 수도)의 관레에 따른 의식을 수행했다. 스타디움에 가서 아우까스 팀의 경기를 관전하는 것이다. 그 경기는 매우 중요한 것이었고, 스타디움은 초만원이었다. 
경기시작 전 그 전날 돌아가신 주심의 어머니에 대한 추모 묵념이 약 1분간 진행됐다. 모두 일어나 조용하고 경건하게 거행했다. 곧이어 진행자는 슬프고 외로운 상황에서 꿋꿋하게 임무를 완수하려는 주심의 모범적인 스포츠맨쉽을 찬양하는 연설을 낭독했다. 고개를 숙이고 필드 중앙에 서 있던 흑인은 관중들의 열렬한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아도움은 눈을 깜빡거리며 자기 팔을 꼬집어봤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지금 어느 나라에 있는 거지? 예전 같았으면 사람들은 주심을 단지 '개자식'이라 외치는 상대로만 여겼을텐데.
그리고 경기가 시작됐다. 15분이 지나자 스타디움이 터져나갔다. 아우까스의 골이었다. 그러나 주심은 오프사이드로 무효를 선언했다. 그러자 관중들은 으르렁거리며 울부짖었다
-에라, 이 에미없는 자식아!  (사랑하는, 그러나 불쌍한 나의 어머니)

1969년, 산또스 클럽이 바스꼬 다가마와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경기를 하고 있었다. 펠레는 사뿐사뿐하게 땅을 밟지도 않고서 상대편을 제치면서 번쩍 하는 사이에 필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어느 새 공을 가지고 아크 부분까지 들어왔는데,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넘어지고 말았다. 주심은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펠레는 공을 차는 것을 원하지 않았지만 10만여명의 관중들은 펠레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가 찰 것을 요구했다.
펠레는 마라카낭에서 많은 골을 넣었었다. 1961년 플루미넨세 클럽과의 경기에서 7명의 선수와 골키퍼까지 드리블로 제치면서 성공시킨 것과 같은 화려하고 멋진 골들도 이곳에서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페널티킥은 달랐다. 사람들은 어떤 신성함 같은 것을 느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떠들고 법석거리는 관중들도 일제히 침묵을 지켰다. 마치 누구의 명령에 따르기라도 하는 듯, 관중들의 외침이 일시에 뚝 그쳤다. 
아무도 얘기하지 않았고,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필드에도 마찬가지였다. 펠레와 골키퍼 안드라다는 단 둘이서, 서로를 응시하며 기다릴 뿐이었다. 펠레는 페널티킥의 하얀 지점에 있는 공 가까이 서 있었다. 안드라데는 열두 걸음 떨어진 저 앞 골포스트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복한 채 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골키퍼는 공을 건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펠레는 공을 네트에 박아넣고 말았다. 그것이 그의 천번째 골이었다. 프로축구 역사상 어떤 선수도 천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다. 
그제야 관중들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고, 어두운 밤을 밝히며 미칠 정도로 기쁨에 겨운 어린아이들처럼 펄쩍펄쩍 뛰었다.  (펠레의 골)



책장을 넘기면서 몇 번이나 숨이 막힐 뻔했다. 격정과 감동의 순간들, 땀과 눈물. 숨겨진 비정함을 차갑게 비꼬면서도 동시에 그 열광의 순간을 포착해낸다. 우루과이 출신의 대표적인 좌파 지식인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펼쳐놓는 이야기에는 축구, 월드컵, 선수들, 인간애와 역사까지 모든 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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