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체르노빌, '돈 먹는 하마'

딸기21 2011. 4. 20.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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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있으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 25주년이 되죠. 그런데 그 뒤처리 때문에 지금도 국제사회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1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미국 등 50여개국이 참석한 가운데 체르노빌 원조공여국 회의가 열렸습니다. 원조공여국 회의라는 건 쉽게 말하면 '기부 회의'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놓고 그동안 몇차례에 걸쳐 각국이 공여국회의를 한 바 있죠. 아이티 지진 뒤에도 공여국회의가 열렸고요.
어떤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할때, 유엔이 각국에 기부를 호소하죠. 그러면 돈을 낼 의사가 있는 나라들이 모여서 얼마를 낼지를 논의합니다. 이번 회의는 옛소련 체르노빌, 현재의 우크라이나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원전사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돈을 모으려는 자리였습니다.

Chernobyl donors conference falls short of goal /AP


1986년 폭발사고가 난 체르노빌 원전, 공식 명칭은 당시는 레닌 원자력발전소였죠. 그 원전 4호기 원자로는 지금 방사성물질이 새나오는 걸 막기 위해 콘크리트를 덮어놓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콘크리트 방호벽이 세워진지 25년이 지나면서 금이 갔고, 무너질 위험이 있답니다.

그래서 이미 2007년부터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원자로 콘크리트 더미를 철제 보호막으로 한번 더 덮는 재공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당국이 발표한 그래픽을 보니 원통을 눕혀서 반으로 자른 형태의 둥근 지붕을 만들어서, 이걸로 원자로를 통채로 덮게끔 돼 있더군요.

이것이 사고가 나서 노심이 녹아내리고 폭발한 체르노빌 원전 4호기의 공중촬영 사진입니다. /위키피디아

 공중에서 바라본 노심 부분. /위키피디아


콘크리트로 얼기설기 덮어놓은 원자로 건물. /위키피디아
 
좀더 가까이에서 본 모습. /위키피디아

거대한 철제 아치 지붕은 폭이 190미터에 길이는 200미터 정도가 될 것이고 프랑스의 노바르카 사에서 제작을 맡았습니다. 2005년에 공사가 시작돼 2015년 완공할 계획인데요. 철제 지붕 뿐 아니라, 원전사고 후 폐기된 1, 2, 3호기 원자로에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시설을 짓는 공사도 함께 한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돈이 무려 16억유로에 이른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크라이나는 그 아치를 만들 돈이 없습니다.
체르노빌 사고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숨졌죠. 하지만 인명피해 외에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주변국들이 지금까지 짊어지고 있는 경제적인 부담도 엄청납니다. 우크라이나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이 3063억달러(약 400조원)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해마다 체르노빌과 관련된 피해복구 예산으로 정부지출의 5~7%를 쓰고 있습니다. 엄청난 부담인 거죠.
옆에 있는 벨라루스도 사고 당시 큰 피해를 입은 바 있습니다. 1991년 독립 당시 벨라루스 예산의 22.3%가 체르노빌 뒤처리에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이 2002년에는 6.1%로 줄었다지만, 벨라루스같은 작은 나라에는 엄청난 부담입니다. 우크라이나는 옛소련권에서 독립한 나라들 중에선 경제력이 있는 편이지만 1인당 GDP가 구매력기준 6700달러에 불과합니다. 

지금 체르노빌 일대 상황은 어떨까요?
체르노빌 원전이 있던 곳은 우크라이나의 프리피아트 Prypiat라는 도시입니다. 이 도시의 사진들을 찾아봤는데요. 멀리서 찍은 사진들엔 소련 시절 지어진 아파트들이 쭉 늘어서있는 게 보입니다. 그렇게만 보면 유럽의 여느 도시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집들, 지금까지도 다 버려진 채랍니다. 철거도 안 하고 ‘죽음의 도시’로 남아있는 거죠.

죽음의 도시가 되어버린 프리피아트. /위키피디아

 겉으론 멀쩡해보이는 건물들이 25년째 방치돼 있습니다. /위키피디아

얼마 전 경향신문 이지선 기자가 유럽 그린피스 활동가들과 같이 체르노빌에 다녀왔습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방사성물질이 30㎞ 밖에서도 나왔다고 일본 정부 대책이 미진하다고들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체르노빌에서는 사고 뒤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300㎞ 떨어진 곳서도 피폭은 ‘일상화’ 돼있답니다. 방사능 계측기를 갖다대면 아직도 신호가 울린다니, 생태계에 쌓인 피해 규모는... 얼마나 될까요?


이번 공여국회의에서 각국은 우크라이나에 일단 5억5000만유로, 우리 돈으로 약 8560억원에 이르는 재정지원을 해주기로 했습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그 중 5분의1인 1억1000만유로를 내기로 했고, 프랑스와 독일, 영국이 그와 비슷한 1억2000만 유로를 내놓기로 약속했습니다. \
사고의 책임이 있는 러시아는 이미 체르노빌 재공사 시작된 뒤에 지금까지 2000만유로를 낸 바 있는데, 추가로 4500만유로를 더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약속된 총액도 당초 모으기로 한 7억4000만유로에는 못 미칩니다. 
일본이 그동안 체르노빌에 7200만유로를 낸 최대 기부자였는데 후쿠시마 처리 때문에 이번엔 빠졌습니다. 그래서 목표액을 채우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재정난에 처한 아일랜드, 스페인, 캐나다 같은 나라들도 이번엔 지원 약속을 하지 않았고요.


 

 우크라이나가 만들고 있는 아치형 지붕의 가상도. /BBC 등


필요한 예산 16억 유로 중에서 지금까지 30개 나라로부터 8억6400만유로를 기부받았고 아직도 7억4000만 유로가 모자라서 이번 회의를 한 건데 그 액수를 못 채웠으니 다시 또 돈을 구할 방법을 강구하겠죠.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번 회의 개막 연설에서 “체르노빌 재앙으로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떨쳐버릴 수 없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서 국제사회에 다시한번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정작 우크라이나는 도움은 받되 핵발전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네요. 이번 공여국회의에 뒤이어 핵안전 정상회의도 개최됐는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강화하고 모든 핵발전 국가들이 IAEA에 가입해 원전 안전기준을 검토하라 요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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