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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쓴 스페인어 사전의 서문

딸기21 2003. 6. 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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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쓴 스페인어 사전의 서문입니다.
모처에 실린 것을, 너무 아름다워서 퍼왔습니다. 길지만 찬찬히 읽어보세요. :)



서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내가 다섯 살 때 육군 중령이었던 할아버지는 아라까따를 지나고 있던 서커스로 나를 데려가 동물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가장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몸이 뒤틀리고 쓸쓸해 보이던, 무서운 엄마 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말이었다. “그건 까멜요(낙타)야.” 할아버지가 말했다. 곁을 지나가던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죄송합니다, 대령님.” 그는 말했다. “그건 드로메다리오(낙타)입니다.” 손주 앞에서 지적을 당한 할아버지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지금 나는 짐작할 수 있지만, 할아버지는 위엄있는 질문으로 이를 이겨냈다. 

“차이가 뭐요?” 
“모릅니다.” 그는 말했다. “그렇지만 이건 드로메다리오입니다.” 

할아버지는 유식하지도 않았고 유식해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열 네 살 때 수업을 빠져나와서 카리브 해 연안에 셀 수 없이 많았던 시민전쟁 중 하나에 총을 쏘러 갔고, 그 뒤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생 동안 자신의 그런 약점을 느끼고 있었고, 이를 보충하고도 남는 날카롭고 재빠른 이해력을 지니고 있었다. 

서커스에 갔던 날 오후에 할아버지는 맥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와 나를 사무실로 데려갔다. 할아버지의 소박한 사무실에는 커튼이 달린 책상, 선풍기, 거대한 책 딱 한 권이 꽂힌 책꽂이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린애처럼 열심히 그 책을 뒤졌고, 설명을 곱씹어 보고 그림을 비교했으며, 그 때부터 할아버지와 나는 드로메다리오와 까멜요의 차이가 무엇인지 영원히 깨닫게 되었다. (역주: 드로메다리오-단봉낙타, 까멜요-쌍봉낙타) 결국 할아버지는 내 무릎에 책을 올려놓고는 말했다. 

“이 책은 뭐든지 다 알고, 게다가 절대로 틀리지 않는 유일한 책이란다.” 

그것은 국어사전이었다. 언제 어디서 나온 책인지는 신만이 아시리라. 아주 낡아 금방이라도 제본이 풀릴 듯했다. 책등에는 어깨에 우주의 천장을 올려 놓고 있는 아틀라스의 거상이 그려져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했다. “이 그림은 사전이 세계를 지탱하고 있다는 뜻이야.” 나는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지만, 첩첩이 쌓인 근 이천 페이지의 책장과 예쁜 그림들을 보고 할아버지가 얼마나 맞는 말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성당에서 나는 미사책의 크기에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사전은 더 컸다. 그것은 마치 처음으로 전세계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말이 몇 개나 들어 있을까?” 나는 물었다. 
“다 있지.” 할아버지가 말했다. 

사실 그 때 나에게는 말이 필요 없었다. 나를 놀라게 하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네 살 때 나는 마술사 리샤르딘을 그렸다. 우리는 그 전날 밤에 극장에서 그가 자기 부인의 머리를 잘랐다가 다시 붙이는 것을 보았었다. 톱으로 목을 자르는 생생한 모습에서 시작하여 피투성이 머리를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결국은 머리가 다시 제 자리에 붙은 부인이 박수에 감사하면서 끝났다. 만화는 예전에 발명되어 있었지만, 나는 나중에 일요일 신문의 칼라 보충면에서 처음 만화를 보았다. 그 뒤로는 글을 몰랐기 때문에 대화 없이 그림으로만 된 만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전을 처음 본 날 밤에 말에 대한 큰 호기심이 내 안에서 깨어났고, 그래서 나는 나이보다 일찍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가로서의 내 운명에 초석이 된 책과 나의 첫 만남은 이러했다. 

어떤 음악의 거장의 말에 따르면, 매일매일 피아노 연습을 시키는 것은 비인간적인 일이고, 집에 피아노를 놓아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한다. 내가 국어사전을 만난 것이 이런 식이었다. 나에게 이 책은 절대로 공부할 때 쓰는 것, 부담스럽고 박식한 것이 아니라 평생 갖고 노는 장난감이었다. 특히나 한번은 ‘노랑’이라는 단어를 찾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말은 이렇게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레몬의 색’. 나는 안개에 휘말렸다. 남미에서 레몬은 초록색이기 때문이다. 가르시아 로르까의 <집시 민요집>에서 잊지 못할 다음 구절을 읽었을 때 혼란은 더욱 커졌다. ‘길 한가운데서 둥근 레몬을 잘라 물속으로 던지면서 갔다, 물이 금으로 변할 때까지’. 세월이 흐르고 한림원 사전이 -아직 레몬을 언급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런 뜻을 덧대어 수정했다. ‘금의 색깔.’ 스물 몇 살이 되어 유럽에 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곳에서, 실제로 레몬이 노랗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이미 옛날 사전들과 요즘 사전들을 뒤져 가며 태양 광선의 세 번째 빛깔을 인양해 내는 매혹적인 작업을 마친 참이었다. ‘라로스 사전’과 ‘복스 사전’은 –1780년에 나온 한림원 사전과 마찬가지로- 역시 레몬과 금을 언급하고 있었고, ‘마리아 몰리네르 사전’만이 1976년에 노랑은 레몬 전체가 아니라 그 껍질만의 색임을 정확히 암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몰리네르 부인도 ‘모범 사전’의 시적 정취를 무시했다. 이 책은 1726년에 한림원에서 초판이 발행되었고, 서정적이고 소박하게 노랑색을 묘사하고 있었다. ‘이 색은 강렬할 때는 금을, 완화되면 금작화를 모방한다.’ 그러나 물론 이 모든 사전을 다 합쳐도, 1611년에 세바스띠안 데 꼬바루비아스 경이 쓴 가장 오래된 사전의 발목에도 이르지 못한다. 이 책은 노랑색을 정의하기 위해 정확성과 영감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사전보다도 멀리 나아갔다. ‘색깔들 중에 가장 불행한 색, 죽음과 긴 중병의 색깔이기에. 또한 사랑에 빠진 이들의 색.’ 

이렇게 무분별한 조사를 통해 나는, 무거운 의미를 나르는 이 사전들이 글을 잘 쓰기 위해 가장 중요한 말의 한 차원을 붙들려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말의 주관적 의미이다. 아무도 이것을 5세 이하의 아이들이나 100세 이하의 작가들만큼 잘 알지 못한다. 맛과 소리와 냄새가 가장 쉬운 예이다. 아주 여러 해 전에 나는 한밤중에 뜰에 묶인 새끼양 때문에 잠을 깼다. 새끼양은 잔인할 정도로 규칙적인 쇠소리로 울고 있었다. 내 동생들 중 하나가 그 탄식이 지닌 균형에 매료되어 어둠 속에서 말했다. “꼭 등대 같아.” 오래된 약초로 끓인 탕약의 맛은 뚜렷이 성 금요일 행렬의 맛이었다. 예전에 쿠바에서 ‘쿠바 리브레’를 대신할 목적으로 만든 탄산음료를 체 게바라가 시음했을 때, 그는 티브이 카메라 앞에서 망설임 없이 말했다. “바퀴벌레 맛입니다.” 나중에 사석에서 한 말은 더욱 명백했다. “똥 맛이야.” 우리는 얼마나 많이 창문 맛 커피, 궤짝 맛 빵, 옷깃 맛 쌀, 재봉틀 맛 국을 먹었던가? 한 친구는 식당에서 셰리주로 요리한 굉장한 콩팥 요리를 맛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자 맛이 나.” 타는 듯한 여름 로마에서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모차르트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었었다. 

이런 종류의 연상은 좋은 소설가와 그렇지 않은 소설가 사이의 차이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말과 모든 구절에서, 대답 하나에 대한 단순한 강조 안에는 작가만이 알고 있는 은밀한 의도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읽는 시간과 장소, 누가 그것을 읽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임에 틀림없다. 모든 작가는 자신에게 가능한 만큼 글을 쓰기에, 이 우연으로 가득찬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작가가 가진 도구를 잘 다루는 것뿐이 아니다. 또 다른 큰 어려움은,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발명된 유일한 방법인 한 글자 뒤에 다른 글자를 붙인다는 방법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집어넣는가이다. 

시의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전은 물론 없지만 아마 존재해야만 할 것이다. 정녕 잊을 수 없는 마리아 몰리네르 부인은 이를 염두에 두고서 거의 전례 없는 일을 자기 자신에게 약속했다. 그녀는 스페인어 용법 사전을 혼자서, 자기 집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쓴 것이다. 도서관 사서 일,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진짜 일이라고 생각하던 양말 깁기가 끝나고 남는 시간에 그녀는 글을 썼다. 그녀가 정말로 원하던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날아가 버리기 시작하는 단어들을 붙잡는 것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무엇보다도 신문에서 보이는 단어들이 중요해요. 거기서 살아 있는 언어, 사용되고 있는 말, 현재에 발맞춰 만들어져야 하는 말들이 나오니까요.” 사실, 이 신화적인 사람이 착수한 일은 삶과의 경주이자 삶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는 영원히 계속되는 작업이다. 왜냐하면 말은 학교에서 학자들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거리에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전의 저자들은 말들을 거의 언제나 너무 늦게 채집해서 알파벳 순서에 맞춰 박제로 만들고, 이 순간 종종 말들은 그 말이 생겨났을 때와는 의미가 달라져 있다. 

실제로 모든 사전은 출판되기 이전에 이미 효력을 잃기 시작하고, 저자들의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망각을 향해 가는 그들의 작업 속에서 말들을 살려내지 못한다. 그러나 마리아 몰리네르는 최소한 이 작업이 용법 사전에 있어서만큼은, 아니면 사무실에 앉아 말들이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거리로 이들을 찾아나서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덜 실망스러운 것임을 보여주었다. 지금 막 내 손 안에 도착한, 아직도 소나무와 신선한 잉크 냄새가 나는 이 사전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리고 이 사전의 수명은 수많은 다른 사전들보다 조금 더 길어질 수도 있으리라. 다섯 살 이후의 아이들이 갖고 놀도록 만들어진, 또한 좋은 작가들이 -운이 좀 좋다면- 100살까지 갖고 놀 사전보다 쓸모있고 고귀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 제때 알려지기만 한다면 말이다.



선배, 멋있어요... 
요새 자꾸 네이버에만 의존하게 되는데....(퍼가요 ^^)



어, 이상하다...왜 내글이 지워졌지

  아아. 정말 좋은 글이에요. 여러가지 생각이 드네요.


글 참 좋지요? 아술리다, 너 혹시 저 사전은 없니? 
최근에 번역된 것 같던데.



'지금까지 글을 쓰기 위해 발명된 유일한 방법인 한 글자 뒤에 다른 글자를 붙인다는 방법 안에 얼마나 많은 마음을 집어넣는가이다' 히야!!! 
말을 이 정도로 놀잇감으로 삼을 수 있다니. 새삼 작가에 대한 아니 글을 쓰는 
다수에 대해 존경심이 생겨나네요. 멋집니다! 정말.



없어요 ^^ 
최근에 나온 사전이라고요? 아하, 그렇구나



모차르트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이라니. 으하하. 그 문단 읽다가 많이 웃었어요. 
지난 겨울 샌디에고 씨월드에서 돌고래 쇼를 봤는데, 
한 꼬마아이가 뽑혀서 앞에 나가 쇼를 함께 했거든요. 
그 때 그 꼬마아이가 돌고래를 만져보더니 <핫도그>같은 느낌이라고 해서 웃었는데...^^



와. 진짜! 핫도그 같은 느낌! 딱이다아아아!!!!


정말...만져보진 않았지만, 그럴 것 같아. 아이들의 그말, 
그게 맞는 거겠지^^ 
그런데, 재주 잘 부리는 그놈들, 원래 이름은 '병코돌고래'라지. 
앞으론 그놈들 항목에 '만져보면 핫도그 같은 느낌이 난다'고 해야겠다. 
핫도그는, '만져보면 뜨거운 개가 아니라 
차가운 돌고래 느낌'이라고 하고.



그런데 가르시아 마르께스의 저 글을 읽고, 궁금해져서 
'노랑'에 대해 찾아봤다. 그게 어떤 빛깔인지 아니? 
"유채꽃과 같은 빛깔"이래. 우리나라에서는 레몬이 아니라 유채꽃이군.


 
노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나하고는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음.. 외국 사람들이라 그런가 했더니 '유채꽃'운운하는 한국말 역시! 
근데 글은 정말 멋지군요. 마르께스가 아니라 투르니에 아저씨같은 느낌도 좀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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