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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의 원전들

딸기21 2011. 3. 1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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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호쿠 지진으로 인한 원전 사고가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로 갈 것인가. 현재 진행되는 상황으로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에 이어 역사상 손꼽을 정도의 대규모 원전사고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냉각수 부족, 노심 용해, 수소 폭발, 화재로 인한 건물 붕괴, 사용후 연료 유출, 해수 오염 등 ‘원전 사고와 오염의 종합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5단계 안전장치 모두 위험

원자핵이 분열할 때 나온 중성자는 다시 주변 원자핵에 흡수돼 다시 원자핵을 분열시키는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그런데 중성자가 너무 빨리 움직이면 그대로 원자핵에 흡수돼 에너지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중성자의 속도를 줄이는 감속제가 필요하다. 원자로는 감속제의 종류에 따라 경수로(물), 중수로(중수), 흑연로 등으로 나뉜다. 후쿠시마 1원전의 원자로 6기와 2원전의 4기는 모두 경수로다.

보통 경수로에는 5개의 안전장치를 둔다. 첫째, 핵 연료인 이산화우라늄 분말을 고온으로 구워 원통형으로 만든 뒤 핵분열에서 나오는 물질을 가둬두는 ‘팔레트’가 있다. 이 상태를 ‘연료봉’이라 생각하면 된다. 두번째, 연료봉을 피복관으로 감싼다. 세번째, 수백개의 피복관을 고온·고압에도 견디는 철제 용기에 담는다. 

네번째, 원자로 자체를 두꺼운 철판으로 감싸서 방사성 물질은 물론이고 물과 공기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격납용기’다. 후쿠시마 1원전 원자로 2기는 15일 폭발로 격납용기가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격납용기 전체를 두꺼운 콘크리트 돔으로 구성된 원자로 건물로 감싼다.


 


후쿠시마 1원전 1호기와 3호기는 폭발로 건물이 손상됐다. 2호기는 15일 폭발로 격납용기가 부서진 것으로 알려졌다. 노심까지 손상된 것으로 우려된다. 4호기는 15일 오전 일어난 폭발과 화재로 사용 후 핵연료가 담겨 있던 건물 일부가 무너지면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피복관이 녹으면서 냉각수와 만나면 수소가 생기는데, 응축된 수소가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후쿠시마 1원전에 있는 원자로 6기 중 1·2·6기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3·5기는 도시바, 4기는 히타치사가 제작했다. 3기는 우라늄에 플루토늄 혼합연료(MOX)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모두 저농축우라늄(LEU)을 연료로 쓴다. 

이 원자로들은 1971~79년 가동되기 시작했다. 특히 1기는 이미 수명을 다해 이번 지진이 아니었어도 올 상반기에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었다. 이들 원자로들은 경수를 감속제 겸 냉각제로 이용하면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려 발전하는 비등수형 원자로다.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2016년과 2017년 개량형 비등수형 원자로 2기를 추가로 가동할 계획이었다.

 
후쿠시마 2원전은 1981~86년 만들어진 비등수형 원자로 4기로 구성돼 있다. 이 원전에서는 89년 이미 한 차례 냉각수 유출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이번 지진 때에는 4기 모두 자동으로 가동중단됐다. 그러나 다음날인 12일 한때 1·2·4기 내부 온도가 올라가 반경 3㎞ 이내 주민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졌다. 


체르노빌 재연될까

체르노빌의 악몽이 전세계인들에게 각인돼 있어 원전 사고로 인한 대형참사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 원전에서 사람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싱가포르대학 벤자민 소바쿨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99건의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그 중 57건이 86년의 체르노빌 참사 이후에 일어났다. 전체 사고 중 3분의2에 이르는 56건은 미국에서 발생했다.

사고의 대부분은 실험용 원자로에서 핵분열 임계상태에 이르거나 제어장치 오작동이 일어난 경우다. 이번처럼 폭발·냉각수 유출·노심 용해 등이 일어난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은 체르노빌이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프리프야트에 위치한 소련 체르노빌 원전에서 증기폭발과 함께 원자로가 녹아내리면서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자체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56명이 숨졌고, 이후 치명적인 암 등으로 4000여명이 사망했다. 방사성 낙진이 현재의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러시아 일대에 퍼지면서 20여년간 영향을 미쳤다. 35만명이 고향을 떠났고, 지금도 일부 지역은 사람이 거주하지 못하는 땅으로 남아 있다. 방사성 물질로 인체에 피해를 입은 사람이 40만~50만명으로 추정된다.

또 하나의 참사는 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미들타운에서 일어난 스리마일 원전사고다. 냉각수가 유출되고 노심 일부가 녹으면서 방사성 물질이 새어나왔다. 직접적인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후 30여년간 미국에서는 핵발전소 신규 건설이 모두 중단됐다. 75년 동독 그라이프슈발트 원전사고는 전기 오작동으로 일어났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냉각수 펌프가 고장났다. 

일본에서는 99년 9월 이바라키현 도카이무라 핵연료 변환공장에서 큰 사고가 일어났다. 핵연료를 제조하던 직원들이 실수로 우라늄 용액을 과다투입해 14명이 방사성 물질에 노출됐고 2명이 숨졌다. 2004년에는 일본 후쿠이현 니하마 원전에서 증기폭발이 일어나 5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쳤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체르노빌처럼 확대될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4일 후쿠시마 방사성 물질 누출량이 일반인들의 건강에 미치는 위험도는 최소 수준이라고 밝혔다. 아직까지 후쿠시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국제핵사고등급(INES)의 7단계 중 4단계(지역적 영향을 미치는 사고)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격납용기 압력이 높아져서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거나 사용후 핵연료 등 방사성 물질이 장기간 유출될 경우 5단계(광범한 영향을 미치는 사고), 6단계(심각한 사고), 7단계(중대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3개의 체르노빌 사태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도쿄전력 측은 바닷물을 계속 집어넣어 연료봉을 식히면서 방사성 물질이 섞인 수증기를 밖으로 빼내고 있다. 그런데 이 작업에는 몇달이 걸리며, 그 기간 방사성 물질이 계속 새나갈 수밖에 없다. 현재 원자로 내부 압력이 높아진 상태여서 바닷물을 넣기도 쉽지 않다. 요미우리신문 등은 15일 후쿠시마 1원전 2호기에 바닷물을 냉각수로 투입하는 작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며 “내부 압력이 높아져 폭발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원자로에 넣었다가 빼내는 바닷물에는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 바닷물 자체가 ‘방사성 폐기물’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자칫 대규모 해양오염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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