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크리스마스 섬의 비극

딸기21 2010. 12. 15.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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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북서쪽에 크리스마스 섬이라는 섬이 있습니다. 


호주 시간으로 15일 오전 6시쯤, 호주로 들어가려던 난민들을 태운 배가 크리스마스 섬 앞바다에서 절벽에 부딪쳐 침몰했습니다. 배에는 난민이 70명에서 100명 가량 타고 있었는데 배가 부서지면서 파도에 휩쓸려 최소 50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습니다. 


시드니모닝헤럴드와 호주 SKY TV 등에는 바닷물에 휩쓸려가면서 구조해달라고 절규하는 난민들의 모습이 실렸습니다. 구조된 사람은 이날 오후 현재 30여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실종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 섬의 플라잉피시코브 해안 앞에서 난민을 태운 밀입국 선박이 높이 8m의 절벽에 부딪쳐 침몰했다고 합니다.


Rescuers are seen on the rocky shore on Christmas Island, where a refugee boat sank, in this handout December 15, 2010. /로이터



▶ BBC 기사와 동영상: Australia asylum shipwreck ‘drowns dozens’

목격자들에 따르면 파손된 선박의 잔해가 사고지점에서 1km정도 떨어진 곳까지 넓게 퍼졌다고 하고요. 파도가 굉장히 셌던 모양입니다. 구조요원들은 “서너살 아이들이 부서진 배를 붙잡고 울부짖었다”면서 “아이들이 수영을 할 줄 몰라 주민들이 구명튜브를 던져줬는데도 잡지 못해 물에 휩쓸려갔다”고 전했습니다. 

파도가 워낙 세서, 현장에 도착한 해군과 경찰과 세관 직원들이 구명조끼를 던져줬는데도 난민들이 잡지 못해 그대로 희생됐다고 합니다.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주로 이란·이라크 출신으로 알려졌습니다. 섬 자치단체의 카마르 이스마일 시장은 “구조된 이들 대부분이 중동 출신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배가 밀입국자들을 몰래 실어나르는 불법적인 밀입국선이기 때문에 난민선에 정확하게 얼마나 타고 있었는지, 다들 어디 국적이며 이름과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이런 것들은 아직 알 수도 없고 조사를 해봐도 정확하게 알 수 있을지 미지수입니다. 

크리스마스 섬은 인도네시아 남쪽으로 350㎞ 떨어진 호주령의 섬입니다. 이름이 예쁘지요? 그런데 이 섬은 사실 슬픈 섬입니다. 열대우림과 해안,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뤄진 면적 135㎢의 작은 섬인데요. 섬의 대부분 지역은 국립공원이고 북동부 끝자락에 주민 1400명이 거주하는 정착지구가 있습니다. 

이 섬은 17세기 중반 영국 동인도회사 함대에 점령돼 영국령이 되었다가 1957년 영연방 호주에 양도됐습니다. 1643년 동인도회사 함장이 크리스마스 전야에 이 섬에 도착했다 해서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A boat full of asylum seekers is smashed by violent seas off Australia‘s Christmas Island, as shown in this Channel 7 TV framegrab of a photo released by The West Australian on December 15. /AFP



지난해 10월 인도네시아 부근 바다에서 아프란, 스리랑카 난민들을 태운 밀입국선이 난파 위기를 맞아서 호주 해상당국에 구조를 요청했습니다. 호주 정부는 해군을 보내 구해주긴 했지만, 구출 지점이 인도네시아 해역이라면서 인도네시아 쪽으로 책임을 미뤘습니다. 난민들은 호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죠. 

케빈 러드 당시 호주 총리는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긴급 정상회담을 해서 인도네시아가 난민을 수용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먼 길을 항해해온 난민들은 인도네시아 빈탄 섬의 보호소로 옮겨졌습니다 호주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난민 수용소 운영 비용을 자기네들이 내주는 대신 난민들이 호주로 들어오지는 못하게 막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난민들이 빈탄에 가지 않겠다고 하고, 빈탄 섬 정부 측도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그 때 호주 정부가 묘안이라며 내놓은 것이, 크리스마스 섬으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호주령이지만 호주보다는 인도네시아와 가까운 외딴 섬에 난민들을 몰아넣는다는 거였죠. 

이 섬의 수용소는, 누가 봐도 교도소입니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의 거센 비판이 일었습니다. 호주 인권위원회조차도 수용시설이 교도소와 같다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BBC 그래픽



호주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들어서만 밀입국 난민선 126척이 호주로 왔고 2971명이 크리스마스 섬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야당 측은 수용된 사람 수가 그 두배에 가까운 5400명에 이른다고 주장합니다. 

일각에선 호주의 난민 정책에 백호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다고 지적합니다. 애버리지니(원주민)을 격리시키고 박해하던 때의 인식 그대로 아니냐는 거죠.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호주가 난민들의 인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호주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비롯해 여러 전쟁에 군대를 파병해놓고 있습니다. 

백호주의 역사까지 거슬러갈 필요도 없이, 호주는 국제사회에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나라라는 거지요. BBC방송 등은 난민선 난파 사태를 인터넷판 톱 등으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는 휴가중이었는데 조속히 업무에 복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구출된 이들은 일단은 크리스마스 섬 수용소로 가겠죠. 거기서 호주 정부가 난민 심사를 할 텐데, 지금까지 전례로 봤을 때 호주 본국으로 받아들여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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