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로 가는 게릴라들

레바논 2차 총선에서 남부지역 의석을 석권한 `정당' 헤즈볼라, 역시 정당으로 변신 중인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무장단체 하마스, 올가을 이집트 대선 정국을 주도하는 무슬림형제단, 가을 총선을 앞두고 다시 꿈틀거리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몰락해버린 이란의 이슬람 무자헤딘. 이슬람 무장단체들이 변화를 맞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압박과 민주화 바람 속, 무장단체들의 변신이 눈에 띈다.

 

헤즈볼라 ‘압승’

지난 5일(이하 현지시간) 실시된 레바논 남부 총선에선 이슬람 시아파 조직 헤즈볼라와 아말의 연합체로 구성된 `저항, 해방 그리고 발전'이 23개 의석을 모두 휩쓰는 대승을 거뒀다. 4차례에 걸쳐 치러지는 레바논 총선은 지역별, 종파별 의석 나눠먹기가 될 것으로 이미 예상돼왔다. 지난달 29일 베이루트 투표에 이어 이날 남레바논 총선은 그같은 예측을 그대로 증명해 보였다.
헤즈볼라(Hezbollah)란 아랍어로 `신(神)의 당(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두번째 침공했던 1982년 만들어진 조직으로, 이슬람무장단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잘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과 서방에 맞서 레바논 내에서 무장투쟁을 벌였고 서방 인질들을 억류해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한때는 7개 산하조직에 무장대원 5000여명을 거느린 것으로 알려졌으나, 무장병력 규모는 현재는 많이 줄어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남레바논 일대를 장악하고 있으며 레바논 인구의 40% 가량을 차지하는 시아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헤즈볼라 지도자인 셰이크 나빌 카우크는 "이번 남부지역 투표 결과는 우리 국민의 반미 무장투쟁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해의 유엔 결의안을 비롯해, 자신들의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서방의 ‘지시’를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부를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헤즈볼라에 대한 지지는 낮다. 또 이른바 `백향목 혁명' 이후 레바논의 민주화와 자유화를 요구해온 미국과 유럽국들의 무장해제 압력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무장력에 기반한 영향력을 온전히 유지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당 겸 구호기관'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와 함께 팔레스타인의 `테러조직'으로 지목돼온 하마스의 변신은 눈부시다. 하마스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구호활동과 빈민아동교육 등 공익부문을 강화, 풀뿌리 조직으로 자리를 잡았다. 마흐무드 압바스 새 수반(대통령) 체제가 출범한 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최대 정치조직 파타와 경쟁하는 대중적 정당으로의 변신을 꾀해왔다. 최근에는 처음으로 정치위원회에 여성위원을 임명, 면모를 일신하기도 했다. 하마스는 이미 2차례 지방선거에서 약진, 압바스 수반의 파타당을 위협하는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압바스 대통령은 지난 4일 "선거법을 개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다음달 17일로 예정돼 있던 총선을 미룰 것임을 분명히 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총선이 11월까지 미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압바스 정부가 총선을 연기하기로 한 것은 하마스를 견제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파타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마스는 아랍어로 '열정'을 뜻한다. 1987년 설립됐으며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오슬로 평화협정 조인에 반대해 격렬한 자살테러 공격을 펼쳐 유명해졌다.

'카이로의 봄' 주역인 무슬림형제단

오는 9월 실시될 이집트 대선정국의 핵은 무슬림형제단이다.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의 원조 격인 이 단체는 8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한다.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암살, 1996년 룩소르 관광객 폭탄테러 등으로 널리 알려진 무슬림형제단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독재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무바라크 정부는 무슬림형제단을 정당으로 인정치 않고 있지만 이집트의 최대 정치조직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밖에 아프간 탈레반도 9월 총선을 앞두고 다시 남부 칸다하르 일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이라크 등지에서 활동하며 이란 시아파 근본주의 정권에 맞서 공격을 벌였던 이슬람 무자헤딘은 자신들을 지원해주던 사담 후세인 정권과 함께 동반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