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유럽이라는 곳

영국의 '아동복지 논쟁'

딸기21 2010. 10. 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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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가 아동 복지예산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캐머런은 지난 5월 노동당 12년 정권을 몰아내고 총리직에 올랐는데, 선거 전부터 이전의 보수당과는 다른 ‘온정적 보수주의’, ‘따뜻한 보수주의’를 내세워 인기를 모았지요. 캐머런은 대처리즘과 선을 그으면서 복지에 신경을 쓰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결국 이런 조치를 결정했습니다.

문제가 된 것은 고액 납세자 120만명의 자녀에 대해서 아동복지 혜택을 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4일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이 방안이 공개됐고, 캐머런의 최측근인 조지 어즈번 재무장관이 총리의 승인을 받아 5일 이 사실을 공식 발표를 했습니다.
이 조치에 따르면 부부 중 어느 한쪽이라도 수입이 연간 4만3875파운드(약 7800만원) 이상인 가정의 자녀에게는 2013년부터 육아수당이 더이상 지급되지 않습니다. 혜택에서 빠지는 가정들의 경우, 아이가 한 명 있었던 집은 연간 1055파운드(180만원), 셋인 집은 2500파운드(445만원) 수당을 놓치게 되는 거죠. 육아수당이 제외되는 가정은 전체 가구의 15%에 이릅니다.

얼핏 보면 타당해 보이죠. 우리나라 ‘무상급식’ 논란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돈 있는 애들은 혜택 주지 말자는.
일간 선 여론조사에 따르면 80% 이상이 고소득층 복지삭감에 찬성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반론도 적지 않습니다.



A handout photograph shows Britain‘s Prime Minister David Cameron (R)
appearing on the BBC’s the Andrew Marr Show, in Birmingham on September 3, 2010. (REUTERS)



결국은 아이들에게 가는 혜택에 차등을 주는 문제이고 또 여기 영향을 받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수당 안에서도 반론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보수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이 문제는 보수 우파들이 중시하는 ‘가족의 가치’와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캐머런은 5일 유권자들에게 사과를 하면서, 총선 공약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캐머런의 변명은 “노동당 정부가 재정을 거덜냈기 때문에 복지에 더이상 돈을 쏟아붓기 힘들다”는 겁니다.
캐머런은 ITV뉴스에 출연해 “우리도 예산을 다 삭감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물려받을 상황이 어떤 건지를 (집권 전에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산을 줄이는 게 우리 공약은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물론 나도 이 점에 대해서는 몹시 미안하다(Of course I am sorry about that)”고 말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거... 마음 편히 생각하라고 안 해서 다행입니다만. -_-

영국 재정적자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이러냐고요.

심각한 건 사실입니다.
영국의 2010-2011 회계연도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12.6%에 이릅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유럽의 금융허브인 영국은 특히 타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른바 ‘영미식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으로 세계경제 특히 미국경제에 심하게 연동돼 있던 탓이 컸겠죠.

정부가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재정지출을 늘린데다 세금 수입은 줄어들어서, 2008년 GDP 대비 5.1%였던 부채가 1년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정부부채 또한 2008년엔 GDP 대비 52.2%였는데 올해엔 80%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정부는 재정적자를 2015년까지 4.7%로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IMF와 유럽연합은 “계획이 여전히 미흡하다”면서 더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는 방법이 결국은 복지예산을 줄이는 것으로 나타나니까 국민적인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죠.



Britain‘s Prime Minister David Cameron holds his child Florence
while meeting his wife Samantha at Birmingham Moor Station in Birmingham October 5, 2010. (REUTERS)

(캐머런의 첫 아들 이반은 불치병을 앓다가 지난해 2월 숨졌죠. 이반 때문에 국립의료서비스의 혜택을 많이 입었기 때문에 캐머런은 의료보험에 대해서는 아주 우호적입니다. 캐머런 부부는 이반 말고도 딸 낸시(6), 아들 아서(4)를 두고 있었는데, 지난 8월에 부인 서맨사가 네째 딸 플로렌스를 낳았습니다.
아동복지예산을 줄이면서 캐머런은 “내 딸에 대해서는 정부로부터의 혜택을 포기하겠다”고 했답니다.)


복지 문제에서 캐머런 정부가 ‘기혼자 우대’를 추진하고 있는 것도 논란거리입니다.

캐머런은 이미 선거 캠페인 때에 “결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들만 복지혜택을 더 주겠다”고 말해 논란을 빚었습니다.
<해리 포터>의 작가인 조앤 롤링이 공이번 일에서도 그렇고, 복지 얘기를 늘 하지만 원칙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번에는 특히 중산층 가정 복지혜택을 줄이는 것 뿐만 아니고, 캐머런의 지론인 ‘결혼부부 혜택’을 늘리겠다고 말해 논란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결혼을 장려하기 위해서, 법적으로 혼인을 한 부부에게 세금 우대를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결혼 장려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거죠.

영국의 결혼 비율이 낮기는 낮은 모양입니다. 이혼율은 유럽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인구 1000명당 이혼비율 1위가 미국인데 4.95명이고, 영국은 3.08명으로 세계 4위. (2위는 푸에르토리코, 3위는 러시아입니다 http://www.nationmaster.com/graph/peo_div_rat-people-divorce-rate)

이혼보다도, 결혼하는 사람 숫자가 대폭 줄었다고 합니다. 1995년 1년간 32만 쌍이 결혼했는데 이는 1970년의 거의 절반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성인 여성 중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하는 비율이 대략 25%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비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혼인신고 여부를 놓고 경제적 차별을 하는 것에는 비판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혼인자 우대 세제는 2015년 도입될 예정인데, 아동복지 예산도 재정적자를 이유로 깎으면서 혼인자 세금을 줄여주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거죠. 고소득 기혼자들이 이번엔 혼인자 우대로 세금혜택 대상이 되니까요.

가디언에 따르면 고액 납세 혼인자들이 우대를 받으면 세수 10억 파운드가 줄어드는 효과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복지예산 줄여서 모은 나랏돈을 거의 그대로 까먹는 셈이 된다는 겁니다. 결혼 장려하려고 아이들 복지를 깎는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복지란 참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예산, 재정, 경제, 정치적 이해관계 같은 것들이 다 끼어드니...
그래도 저런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게 부럽습니다.
우리도 지방선거 전에 복지를 화두로 정책논쟁을 아주 잠시 하는 것 같더니, 어느 새 또 싹 사라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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