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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떠난뒤 중동은

딸기21 2010. 8. 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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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이달 말 이라크를 떠난다. 이라크 내 미군 주요 기지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착착 정리되고 있다. 시리아 접경지대 등 ‘요주의 지역’을 남기고 바그다드 시내의 캠프들은 진작에 폐쇄됐다. 한때 16만명에 이르던 미군들은 9월1일부터 5만명 선으로 줄어든다. 남는 병력 대부분은 재건 작업을 지원하고 치안을 돕는 역할을 주로 하게 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임무 종료’ 선언이 발표되고 ‘눈에 보이는 미군’의 존재가 줄어들고 나면 이라크엔, 중동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오바마 대통령은 철군을 강행하고 있지만,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은 23일 미군 전역병들을 상대로 연설하면서 이라크 상황에 대해 혼란스런 평가를 내비쳤다. ‘포스트워(post-war) 이라크’의 미래와 중동 정세의 향방에 대해 미국조차 혼란스러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힘의 공백’이다. 조지 H 부시의 1991년 걸프전이 단일 패권시대 미국의 힘을 과시한 사건이었다면, 그 아들 조지 W 부시의 아프가니스탄·이라크전쟁은 냉전시절 군사행동을 상상하지 못했던 지역에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미국의 절대권력을 과시한 행위였다. 하지만 이라크전이 끝나가는 지금 미국의 근육질이 부각됐던 곳에서 오히려 힘의 공백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라크를 20여년간 철권 통치한 사담 후세인은 10년간은 미국과 결탁하고 10년간은 미국과 싸우며 아랍권의 맹주 노릇을 했다. 이란과 대적하고 시리아·요르단·터키에 석유를 주어가며 거래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고, 걸프 국가들과 줄다리기를 했다. 미군이 이라크를 떠나면서 가장 크게 걱정해야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후세인의 빈 자리’다.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는 철군을 앞두고 “이라크의 이웃나라들이 영향력 경쟁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짐 싸는 미군. A U.S. soldier from the 1st Battalion, 116th Infantry Regiment, carries his bag to load into a vehicle 
as he prepares to leave Iraq for Kuwait, at Tallil Air Base near Nassiriya, August 15, 2010. | REUTERS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동쪽의 이란이다. 미국은 후세인을 몰아냄으로써 이란에 맞설 아랍의 방벽을 걷어버렸다. 이미 지난 몇년새 이란-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벨트’의 부상이 두드러졌다. 이란의 자원, 이란의 돈, 이슬람권 내에서는 여전히 열세인 시아파를 결집시키려는 이란의 욕망이 가져온 결과물이다.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영향력은 줄어든 반면 이란의 입김은 세졌다. 미국이 가장 우려했던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잠자고 있던 이란을 깨운 것은 미국이었고, 이란은 향후 중동 정세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시아파가 주류인 이라크 정부는 이란의 지나친 영향력을 경계하면서도 이란에 연고를 둔 자국 내 시아파 정치세력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이라크 남쪽의 사우디는 수니파의 맹주로서 이란 시아 세력의 팽창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북쪽의 터키는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의 분리 움직임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쪽의 시리아는 여전히 남아있는 반미 세력이자 중근동 정세의 지렛대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후세인의 바트당과 뿌리가 같다.

사방의 정세가 이토록 복잡한데 이라크 정부는 아직 굳건하지 못하다. 호시야르 제바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LA타임스 인터뷰에서 “이웃나라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영향력 싸움을 벌인다면 제로섬 게임이 될 것”이라며 “몹시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카네기중동센터의 정치분석가 폴 살렘은 DPA통신에 “이라크는 20년 동안 이란과 아랍 사이의 완충역을 해왔는데 이제는 사우디, 시리아, 이란, 터키 사이의 긴장을 부추기는 진앙지로 변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미 부통령은 지난달초 바그다드 방문 때 이라크 정부측에 “미국을 포함, 외부세력이 이라크의 운명을 결정하게 놔두지 말라”고 경고했다. 바이든이 나서서 ‘이라크의 자결권’을 촉구했다는 사실은 이라크를 둘러싼 역설적인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라시아 복판에 만들어진 힘의 공백 내지는 교란 상태를 미국이 철군 이후 어떻게 ‘관리’할 지는 미지수다. 여기에는 이슬람주의라는 또 하나의 문제가 숨어 있다. 냉전의 균형추가 깨진 뒤부터 이슬람권 전역에는 근본주의 흐름이 퍼졌다. 96년 아프간 탈레반의 집권은 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은 근본주의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벌였지만, 이슬람주의를 억압하면서 세속정권을 계속 유지해온 후세인은 오히려 미국에 의해 축출됐다. 그런데 미국은 두 차례 전쟁을 통해 이슬람권 반미·반서방 정서를 오히려 악화시켰다. 이슬람주의는 반미·반서방 감정과 동전의 양면이다. 이라크의 현 정부는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의 중간에 발을 걸치고 있다. 권력기반이 약한 이라크 정부가 이슬람 세력에 기대기 시작하면 종파분쟁과 극단주의 테러가 다시 기승을 부릴 수 있다. 후세인의 오른팔이던 타리크 아지즈 전 부총리가 얼마전 가디언과의 옥중 인터뷰에서 “지금 미군이 나가는 건 이라크를 늑대들에 넘기는 꼴”이라 맹비난 한 것은 또하나의 역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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