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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가 말하는 사담, 그리고 이라크

딸기21 2010. 8. 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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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에는 나도 사담도 깜짝 놀랐다. 그 이듬해 말이 되자 미국이 우리를 침략해올 것이 분명해졌다. 하지만 사담에게 충성을 바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 북부 카디미야 교도소에서 타리크 아지즈를 단독 인터뷰했다. 아지즈는 이라크 특별전범재판소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7년4개월 째 복역 중이다. 

아지즈는 바그다드가 함락된 직후인 2003년 4월 24일 미군에 체포된 뒤 처음으로 미디어와 만났다. 그는 1990년 쿠웨이트 침공과 이듬해의 걸프전, 7년 전 이라크 침공 당시 사담의 모습 등 비화들을 털어놨다. 아지즈는 옥중에서도 트레이드마크 격인 시가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고 한다. 가디언이 5일자 인터넷판에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The old days … Tariq Aziz with Saddam Hussein. ‘I will not speak against Saddam until I am a free man,’ said Aziz. ‘When I can write the truth I can even speak against my best friend’ Photograph: ISF


아지즈는 이라크와 미국의 관계를 갈라놓은 쿠웨이트 침공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나는 쿠웨이트 공격에 반대했다”며 “사담에게 쿠웨이트를 공격하면 미국과의 전쟁으로 이어질 텐데 그것은 우리가 감당할 일이 아니라고 말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라크 최고 권력기구였던 혁명수호위원회의 다른 멤버들은 공격에 찬성했고, 그래서 대세를 따랐다는 것이다. 

9·11 테러 뒤에는 전쟁을 피하려 사담도 애썼다고 털어놨다. “9·11 테러가 일어났을 때 나도 사담도 크게 놀랐다. 하지만 그 때만해도 18개월 뒤 곧바로 우리가 공격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아지즈는 9·11 뒤 사담의 지시를 받아 램지 클라크 당시 미 법무장관 앞으로 테러를 규탄하는 편지를 보냈다고 했다. 일종의 화해제스처였다. 그러나 2001년 10월 아프간 공습을 시작한 미국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WMD)’라는 있지도 않은 가공물을 들먹이며 이라크를 ‘다음 타깃’으로 공공연히 지목하고 있었다. 사담은 WMD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 않으면서도, 외부에서 그렇게 받아들여지도록 방치했다. 아지즈에 따르면 그것은 미국이 아니라 이라크 최대의 적인 이란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끔찍한 판단착오였다. 

“2002년 말이 되자, 미국이 어떻게든 침공해올 것이라는 걸 사담도 알게 됐다.” 바그다드는 개전 한달만에 함락됐고, 사담은 북부로 피신했다가 붙잡혀 2006년말 처형당했다.


걸프전 때 외무장관을 지낸 아지즈는 늘 시가를 피우며 유창한 영어에 세련된 서구식 매너로 서방 외교관들과 미디어들을 상대, ‘이라크의 얼굴’로 불렸다. 이후 부총리로 승진해 사담이 물러날 때까지 권력서열 2위였던 아지즈는 지금은 감옥을 ‘내 집’이라 부르는 처지다. 그러나 그는 “나는 민간인이든 군인이든 종교인이든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며 “사담에게 충성한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아랍민족주의자라는 자긍심을 여전히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지즈는 옥중에서 TV를 통해 자기 나라가 어떻게 파괴되고 재건돼가는지를 보고 있다. 그는 “사담은 30년간 이라크를 건설했는데 지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며, 아프고 배고픈 사람은 더 늘었고 날마다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 전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달말로 예정된 미군 철수를 계획대로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이달 말이면 종료된다. 아지즈는 “미군이 이대로 떠나는 것은 늑대들에 이라크를 넘겨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우리는 미국과 영국에 희생됐다. 실수를 했다면 이라크를 죽음에 맡겨두지 말고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Tariq Aziz, Saddam's Hussein's deputy: 'We are all victims of America and Britain. They killed our country in many ways.' Photograph: Martin Chulov for the Guardian


그는 “감옥에서 풀려날 때까지는 사담에 대한 어떤 비난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끝까지 충성심을 과시했다. 또 “사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팩트(fact)를 바꾸지 않았다”면서 “그가 조국에 헌신했음을 역사가 보여줄 것”이라 말했다. 

아지즈는 바그다드가 함락되자 바그다드 교외 만수르의 한 가옥에서 사담을 만나 “당신을 대통령으로서 지지한다”고 말하고 작별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아지즈는 미군에 투항했다. “순교자가 되고 싶었지만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투항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의 가족들은 미군 협조로 모두 요르단 암만으로 이동, 지금도 암만에 머물고 있다.


아지즈는 사담에게 끝까지 충성했음을 강조했지만 2002년부터 1년여 동안 명목상 ‘오른팔’이던 그는 공식석상에서 사라졌었다. 전쟁 직전 바그다드에서는 아지즈 투병설, 숙청설이 나돌았다. 투항한 아지즈는 재판에서 사형을 면했다. 바트당 정권시절의 각종 학살 명령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있지만, 투항 뒤 미 정보당국 조사에 전면 협력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아지즈는 올초 미군에서 이라크정부로 신병이 인계됐다. 이라크 정계에서는 아지즈 석방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누리 알 말리키 현 총리에 맞서 사실상의 승리를 거둔 이야드 알라위 전총리는 “아지즈는 내 친구이고 좋은 사람”이라며 석방론에 힘을 보탰다. 


바트당 정권 실세들은 아지즈를 제외하면 대부분 처형됐다. 쿠르드족을 화학무기로 대량학살, ‘케미컬 알리’라 불렸던 알리 하산 알 마지드는 지난 2월 사형당했다. 사담의 두 아들 우다이와 쿠사이는 은신 도중 미군의 공격을 받고 2003년 7월 숨졌다. 91년부터 12년간 부통령을 지낸 타하 야신 라마단은 쿠르드족에 붙잡혀 미군에 넘겨진 뒤 2007년 3월 처형됐다. 

바트당 잔당과 수니파 저항세력을 이끌고 반미 무장투쟁을 벌여온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 전 혁명평의회 부의장은 아직 체포되지 않았으며, 한때 사망설이 돌았으나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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