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얘기 저런 얘기/공은 둥글대두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월드컵 B조

딸기21 2010. 6. 8.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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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일 한국-그리스, 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경기를 시작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B조의 경기가 시작된다. 우승을 바라보는 자타공인 축구강국 아르헨티나는 전력 못잖게 훌리건들의 광적인 난동도 세계최강급이다. 악명 높은 아르헨티나 훌리건들은 대거 남아공으로 향하고 있다. 이들 뒤에는 아르헨티나 정치권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목이 쏠리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종교·부족에 따라 갈라져 있지만 4년에 한번씩 월드컵 때에는 일치단결하는 축구 매니아 국가로 유명하다. 최근 유럽발 경제위기의 진원지였던 그리스는 유로2004 우승국으로서 당시의 영광을 재현해보려 애쓰고 있지만, 재정난 때문에 축구 지원이 줄어들어 애를 먹고 있다. 알고 보면 더욱 재미있는 B조 국가들의 ‘월드컵 사회학’을 들여다본다.



축구 실력도 최강, 훌리건도 최강 아르헨티나



남아공 경찰(서 있는 사람)이 7일 프레토리아의 한 학교 옥외천막에서 아르헨티나 축구팬들에게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AP

아르헨티나 훌리건들이 대거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향하고 있다. 이미 서른명이 넘는 아르헨티나의 광적인 축구팬들이 대표팀 캠프가 있는 남아공의 프레토리아에 진을 쳤다. 우승을 바라보는 아르헨티나인만큼 이번 월드컵에 대한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은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바라스 브라바스(barras bravas)’라 불리는 훌리건들 뒤에 정부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문제로까지 이어지는 분위기다.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지난달 30일 요하네스버그의 올리버탐보 국제공항을 통해 남아공에 들어갔고, 같은 비행기를 타고 바라스 브라바스 30여명도 함께 입국했다. 그 중 10여명은 바로 공항에 억류됐다. 앞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남아공 측에 바라스 브라바스 700여명의 명단을 통보했으나, 남아공 측은 악명 높은 이들이 어떻게 비자를 받아, 무슨 돈으로 요하네스버그에 올 수 있었는지 의문을 표하고 있다.

브라질과 쌍벽을 이루는 축구강국 아르헨티나의 프로리그는 유럽 어느나라 못잖은 수준을 자랑하며, 유럽축구의 인재풀이기도 하다. 동시에 광적인 팬덤으로도 유명하다.
양대 축인 보카후니오르스와 리베르플라테의 경기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레알마드리드-바르셀로나 경기처럼 ‘엘 클라시코(클래식 더비)’라 불리며 팬들을 끌어모으지만, 폭력사태가 속출하곤 한다. 폭죽 응원은 애교 수준이고 화염병이 날아다녀 경기가 중단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최근 몇주 사이에만 리그 경기에서 폭력사태로 5명이 숨졌다. 특히 차카리타 클럽 팬들이 가장 폭력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일부 팬클럽들은 싸움에 대비, ‘무장분과’까지 운영하고 있다.
 
이번 ‘선발대’를 남아공에 보낸 아르헨티나팬연합(HUA)은 대표적인 광팬 조직으로, 1000여명의 회원을 이번주 중 남아공에 파견할 예정이다. 남아공행 비용에 대한 의혹이 일자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으로 세계 축구계의 거물인 훌리오 그론도나 아르헨티나축구연맹(AFA) 회장은 “우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연관설을 부인했다.
일부 언론들은 대표팀 감독인 디에고 마라도나와 HUA를 의심한다. 2008년말 마라도나가 감독이 됐을 때부터 팀 매니저 카를로스 빌라르도와 HUA가 밀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보카후니오르스 팬 출신인 HUA의 라몬 오르티즈는 “AFA 돈은 받지 않았으며 우리는 마라도나, 빌라르도와 직접 거래한다”고 주장했다. 마라도나는 프레토리아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그런 자들과는 아무 관계 없다”고 부인했다.

‘광팬 조직’들은 정치에도 개입한다. HUA의 마르셀로 마요 회장은 집권여당과 밀접한 관계다. HUA는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현대통령의 남편이자 전임(2003~2007년) 대통령이었던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의 친위부대나 다름없다. HUA는 경기장에서도 “키르치네르를 2011년 재선시키자”는 구호를 외치고 깃발을 흔든다고 IPS통신은 전했다.
훌리건 선발대의 리더 중 한 명인 아리엘 풀리에세는 누에바시카고 클럽 팬 출신으로, 리오넬 메시가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뛸 때 보디가드를 했었다. 풀리에세는 2007년 티그레팀 팬 사망사건을 일으킨 난동과 관련돼있다는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적 있다. 풀리에세는 ‘직업 훌리건’으로 살면서 선거 때면 정치판에 끼어들어 정치활동을 하기도 한다.
경제정책 실패로 궁지에 몰린 페르난데스와 키르치네르 측은 월드컵이 분위기를 띄워주기만 바라고 있다. 반면 야당 의원들은 “누가 국민세금으로 바라스 브라바스들을 파견했느냐”면서 “남아공에서 그들이 사고를 치면 플로렌시오 란다초 내무장관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공격했다. 바라스 브라바스들의 난동과 경기장 폭력에 반대하는 ‘살베모스 알 풋볼(Salvemos al Futbol·축구를 살리자)’ 같은 단체들은 HUA 지도부가 마약거래, 폭력조직과 결탁돼 있다고 주장했다.

구정은 기자 ttalgi21@kyunghyang.com



'IMF조'의 막둥이 그리스, "어겐 유로 2004!"


월드컵이 한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수 있을까.
6월 12일 밤 한국과 B조 첫 경기를 펼치는 그리스는 바람 앞에 꺼져가는 촛불신세다. 나라가 빚더미에 앉아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할 처지다. 그래서 1994년 미국대회 이후 16년만에 월드컵무대에 다시 등장한 그리스의 행보에 세계인이 주목한다.
그리스 국민들은 축구에 관한한 황홀한 기억을 갖고 있다. 6년 전 그리스는 포르투갈에서 열린 2004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4)의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리스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를 일궈내자 수도 아테네 등지에서는 시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스 국민들이 지난 5일 수도 아테네에서 정부의 긴축정책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2010년 월드컵을 앞둔 지난달 초, 그리스인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이번 구호는 월드컵이 아닌 “긴축정책 반대”였다. 그리스는 2008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을 가장 심하게 받은 나라다. 올해와 내년에 각각 -4%, -2.6%의 경제성장률이 예상된다. 최근에는 유럽발 경제위기의 시발점이라는 오명을 안았고, IMF와 EU로부터 11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게 됐다. 공교롭게도 그리스와 함께 월드컵 예선 B조에 속한 한국,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는 모두 IMF 구제금융을 받았거나 받을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아르헨티나는 2000년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갔다가 6년만에 졸업했다. 나이지리아는 1986년, 한국은 98년 구제금융을 받았다.

곧 구제금융을 받을 예정인 그리스는 혹독한 긴축정책에 들어가야 하는 처지다. 그리스의 축구 역시 ‘예산 삭감’의 대상이다. 그리스의 축구 클럽들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된다. 국영 카지노그룹인 OPAP가 그동안 자국리그에 연간 약 4000만유로를 지원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OPAP의 민영화가 거론됐고 축구 클럽들의 돈줄도 끊겼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했다.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와 농구인데, 이 두 종목 프로팀들의 부채가 총 2억2200만유로에 이른다. 경기 침체는 축구팬들의 열기도 식혀버렸다. 이번 시즌 축구 관중은 전 시즌보다 1.06%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이전 두 시즌에는 증가율이 각각 17.2%, 33.52%였다.
 
역설적이지만, 유로2004의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는 기대감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이탈리아는 2006년 독일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사상 최대의 승부조작 스캔들에 난타당했지만 절치부심해 월드컵 우승을 거머쥐었다.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아르센 웽거 감독은 BBC 인터뷰에서 “경제 위기는 월드컵에서 그리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면서 “그리스가 이탈리아를 따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4년에 한번씩 단결하는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축구팬들이 지난 6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외곽 마쿨롱 스타디움에서 북한과의 평가전을 보며 환호하고 있다. /AP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으로서 경제의 중심일 뿐 아니라 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월레 소잉카를 비롯해 수많은 작가들이 영어로 문학작품을 발표해 ‘흑인 영문학’의 메카로 꼽힌다. 최근 몇년간은 영화·영상미디어 산업이 급성장해 할리우드(미국)-발리우드(인도)의 계보를 잇는 ‘날리우드(Nollywood)’ 붐이 일기도 했다. 서아프리카 특유의 리듬감 있는 음악, 화려한 전통의상도 자랑거리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나라 사람들을 열광케 하는 것은 ‘수퍼이글스(국가대표 축구팀의 애칭)’다. 나이지리아인들의 축구사랑은 ‘컬트(종교적 숭배)’ 수준이라고들 말한다. 1960년 영국 식민통치에서 독립했지만 축구에서는 여전히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가 이 나라를 지배한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아스날, 리버풀, 첼시 등 EPL의 어느 클럽을 응원하느냐가 나이지리아인들에게는 종족·종파·지역갈등 만큼이나 중요한 갈등요인이 되곤 한다.

나이지리아의 직선 대통령이었던 우마루 무사 야라두아가 지난해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심장병 수술을 받은 뒤 공식석상에서 사라졌다. 그의 생사를 둘러싼 온갖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국민들의 관심은 야라두아의 건강보다는 1월 앙골라에서 벌어지는 아프리카네이션스컵이었다.
두문불출하던 야라두아는 1월초 영국 BBC방송과 병상에서 전화인터뷰를 하면서 국민여론을 의식한 듯 “수퍼이글스는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결국 대통령의 마지막 대국민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야라두아는 지난달 초 사망했고, 굿럭 조너선 부통령이 뒤를 이었다.

인구 1억5000만명의 나이지리아는 북부의 하우사-풀라니족, 남동부의 이그보족, 남서부의 요루바족 등 수십~수백개의 종족으로 나뉘어 있다. 남부 니제르강 삼각주 유전지대에는 이조족을 비롯한 또다른 계통의 종족들이 거주한다. 종교적으로도 북쪽의 무슬림과 중부, 남부의 기독교도로 나뉘어 있다. 지금까지 이 나라의 권력은 북부 무슬림 호족들이 장악해왔다.
종교·종족·지역 갈등이 극심해 올들어서만 여러 차례 유혈사태가 일어나 수백명이 숨졌다. 하지만 최소한 4년에 한번씩은 온국민이 하나가 된다. 월드컵 때만은 수퍼이글스를 중심으로 단결하기 때문이다. 특히 권력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집권한 남부 출신의 조너선은 이번 월드컵에서 ‘독수리’들이 훨훨 날아주길 누구보다 고대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현지 언론인 솔라 오둔파는 얼마전 영국 BBC방송에 현지의 축구열기를 전하면서 “이 나라에선 축구가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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