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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오락하듯 전쟁'... 우려가 현실로

딸기21 2010. 5. 31.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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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사막의 군사기지에서 화면을 바라보며 전자오락을 하듯 버튼을 눌러 수천㎞ 떨어진 곳을 폭격한다. 미국이 걸프전 이래로 세계에 보여준 ‘첨단 전쟁’의 모습이자,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실상이다. 하지만 원격조종 공격이 늘면서 인명살상에 대한 군인들의 정서적 불감증이 심해지고 민간인 피해가 더욱 커진다는 지적이 많다. 미군이 29일 공개한 아프간 민간인 차량 오폭사건 조사보고서는 그런 우려가 현실이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2월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부근 크리치 공군기지의 공군 특수전사령부는 MQ-1 프레데터 무인정찰기를 원격조종해 아프간 중부 우루즈간주에서 ‘수상한 차량들’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알아냈다. 이 정보를 전달받은 아프간의 미군은 차량행렬을 폭격했다. 무장헬기로 공습하던 미군 파일럿은 육안으로 지상을 확인, 여성들과 아이들을 보고 공격을 멈췄지만 이미 23명이 숨진 뒤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뒤 아프간 주둔 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지휘를 맡은 스탠리 매크리스털 사령관은 아프간 민간인 피해를 줄여 신뢰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민심은 다시 이반됐다. 거센 반미시위가 일자 매크리스털 사령관은 미군에 자체조사를 지시했다. 그 결과 프레데터는 문제의 차량을 단 3시간 30분 동안 추적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짧은 시간에 죄 없는 23명의 생사가 결정된 것이었다. 보고서는 “당시의 정보는 부정확했고 전문적이지도 못했다(inaccurate and unprofessional)”고 지적했다. 하지만 네바다의 미군들도, 바그람의 미군들도 이 정보를 충실히 분석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AP통신은 매크리스털 사령관이 네바다 기지의 미군 등 책임자급 4명의 문책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군의 전쟁 수행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걸프전 이래로 미군은 ‘하이테크 전쟁’을 내세워 지상군 투입을 줄이고 공습을 늘렸다. 이른바 ‘외과수술 같은 정밀폭격’을 하면 민간인 희생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라크에서는 이런 작전이 통하는 듯했다. 남부 힐라 등지에서 치명적인 오폭이 있었지만 평평한 사막지대인 이라크에서는 민간인 공습피해를 당초 예상보다는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험준한 산악지대인 아프간은 전혀 사정이 달랐다. 잘못된 정보를 갖고 결혼 잔치에 미사일을 퍼붓거나 아이들이 탄 버스를 공습하는 일이 번번이 일어났다. 미군은 그렇게 해서 스스로 적을 양산했다.

특히 통제도 받지 않는 중앙정보국(CIA)의 무인공습에 대한 비판이 높다.
애당초 프레데터는 CIA의 요구를 바탕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MQ-1 프레데터는 지상관제스테이션(GCS)과 위성통신장비를 갖춘 무인기로, 원래는 정찰기 목적의 RQ시리즈로 개발됐다. 미 국방부와 CIA는 1980년대에 무인기 개발에 함께 나섰는데, 공군이 파괴력 강한 전폭기를 원했던 것과 달리 CIA는 작고 가벼운 정찰기를 선호했다.
CIA는 이스라엘 공군 무인정찰기를 설계한 아브라함 카렘의 리딩시스템스(Leading Systems Inc.)에서 그나트(Gnat)라는 이름의 무인정찰기 5대를 사들였다. 이를 개량해 만든 것이 프레데터의 원조였다. 1994년부터 미국의 방산업체 제너럴어타믹스가 펜타곤과 계약, 프레데터를 본격 생산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프레데터에 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게 되면서 정찰기에서 다목적 MQ시리즈로 편제가 바뀌었다. 현재 미 공군 공중전사령부(ACC)에서 네바다주 크리치 기지와 뉴멕시코주 홀로먼 기지, 플로리다주 에글린 기지에 프레데터 정찰기·전투기편대를 조종하고 있다. 공군 특수작전사령부(SOC)는 크리치 기지에서 별도로 특수작전편대를 운영한다. 이 밖에 텍사스·캘리포니아·노스다코타·애리조나주 방위군과 CIA가 각기 프레데터를 보유하고 있다.

2001년10월 아프간 공격 당시 미군은 프레데터 60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전 이전인 2000~2001년 겨울 이미 CIA의 대테러센터(CTC)는 프레데터에 미사일을 장착, 아프간-파키스탄 산악지대에 있는 오사마 빈라덴 은신 추정지역을 폭격하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CIA는 파키스탄 국경 너머로도 수시로 프레데터를 보내 공습을 하고 있다. 무인정찰·폭격이 계속되면서 오폭과 민간인 희생은 갈수록 커졌다.
유엔 특별보고관 필립 알스턴은 미군 자체조사와 별도로 CIA의 ‘독단적, 불법적 전투행위’에 대한 조사보고서를 다음달 3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알스턴의 보고서는 “군복을 입지 않고 통제도 받지 않는 CIA가 무인정찰기와 전투기로 아프간-파키스탄 국경에서 전투를 계속하는 것은 국제법상 불법”이라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전해졌다.
CIA는 “우리는 백악관과 의회로부터 통제받는 조직”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나 유엔은 CIA의 행위를 명백한 불법 전투행위로 보고있다. 미국은 아프간 공격을 시작한 이래 탈레반·알카에다 용의자들을 ‘불법 전투원’으로 규정하고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CIA의 무인공격 역시 불법전투가 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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