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아시아의 어제와 오늘

코라손의 아들, 필리핀 대통령 되다

딸기21 2010. 5. 11. 21:34
728x90
필리핀 대선에서 민주화의 상징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 베니뇨 노이노이 아키노 상원의원(50·자유당)이 사실상 당선됐다. 개표가 80% 가까이 진행된 11일 아키노 의원이 4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을 거의 확정지었다. 과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독재정권에 맞서다 암살당한 베니뇨 니노이 아키노 전 상원의원과 코라손 전 대통령의 아들인 아키노는 세계 최초로 ‘모자(母子)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경제정의·부패척결 최우선 과제

아키노 바람이 일어난 이번 선거에서는 전체 등록 유권자 5000만명의 75% 가까이가 투표해 어느 때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심지어 아키노 본인도 투표소 앞에서 4시간이나 기다려 투표를 했다고 마닐라포스트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아키노는 3분의2 이상 개표가 진행돼 당선이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도 “부모님께 배운 가장 소중한 교훈은 겸손”이라면서 선거관리위원회의 확정발표 이후로 승리선언을 미뤘다. 하지만 당원들 앞에서 연설하면서 “어깨에 올려진 국가적인 기대감의 무게를 느끼고 있다”며 “오늘 우리를 괴롭히는 분열을 극복해나가자”고 말해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차기 필리핀 대통령에 사실상 당선이 확정된 베니뇨 ‘노이노이’ 아키노 상원의원이 11일 북부 탈락 지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 지지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로이터


2001년 부패혐의로 쫓겨난 조셉 에스트라다 전대통령(73)이 2위를 차지했으나 ‘필리핀의 아들’임을 내세운 아키노보다 450만표나 뒤졌다. 총 9명의 후보들 중 4명의 후보들은 모두 아키노의 승리를 인정하고 축하를 보냈다.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 측도 성명을 내고 “순조로운 권력 이양을 돕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아키노는 지난해 9월 코라손이 타계하기 전까지만 해도 대선 후보 물망에 오르지 못했다. 당초 자유당에서는 초대 대통령 마누엘 로하스의 손자인 마누엘 마르 로하스가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코라손 추모 바람이 일자 로하스가 부통령 후보로 물러앉고 아키노가 나서게 됐다.

이번에도 ‘족벌 정치’

아키노 승리의 1등 공신은 역설적이지만 아로요 현 대통령이다. 아키노는 12년전 정계에 입문했지만 이렇다할 경력은 없었다. 그러나 아로요 정권의 부패와 실정을 집중 공격하며 ‘깨끗하고 정직한 이미지’로 승부, 돌풍을 일으켰다. 아로요 대통령은 남편 등 측근의 부패 때문에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국의 대 테러전에 편승, 이슬람 테러집단을 잡는다며 1992년 철수한 미군을 다시 수빅만 기지로 불러들였다. 경제는 추락했고, 지방에선 유혈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이번 대선에 집권 여당연합 라카스-캄피-CMD의 후보로 나선 길베르토 테오도르(45) 전 국방장관은 지지율이 10%에도 못 미쳤다.

 아키노는 부패 척결과 빈부격차 해소를 최대 공약으로 내세웠다. 부자들의 세금 회피와 공무원들의 횡령을 집중 공격했고, 빈민들을 위한 기초교육 확대를 내세웠다. 아키노 당선이 유력시되자 11일 마닐라증시에선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아키노의 정치적 경험이 일천하고 능력도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키노는 “모든 사람이 같은 선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 자신 특권층 출신이라는 한계도 있다.

1992~98년 집권한 피델 라모스와 2001년 아로요에 밀려 쫓겨난 에스트라다를 뺀 역대 필리핀 대통령은 모두 대지주 가문 출신이었다. 스페인·미국 식민통치 세력과 결탁해 국가를 주무른 족벌들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번에도 족벌 정치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됐다. 아키노 가문은 상원의원을 여럿 배출한 정치명문이고, 코라손 집안도 대지주다.

아로요는 현직 대통령이면서도 비판을 무릅쓰고 하원의원 선거에 나와 당선됐다. 권력을 순순히 내놓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남편과 장남, 형제자매 등 일가족 4명도 출마했다.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와 그 아들·딸은 각각 하원·상원·주지사 선거에 출마해 모두 당선이 유력시된다. 이멜다는 92년 대선에도 출마한 적 있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과 뉴욕타임스 등은 “셀레브리티(유명인사)들의 선거” “왕조 선거”라고 비꼬았다.

정치 내공이 부족한 아키노가 옛 정권 인사들과 어떻게 싸워갈지가 관심거리다. 이번 선거를 둘러싼 폭력으로 지금까지 전국에서 90명 이상이 숨졌다. 극심한 갈등과 유혈분쟁을 해소하는 것도 중대 과제다. 정·부통령을 따로 뽑는 선거제도 때문에 부통령에는 아키노와 손잡은 로하스 대신 에스트라다와 제휴한 헤호마르 비나이가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728x90